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물끄러미 듣는다. 쏴- 쏴! 옹알거리는 여울물 소리. 조잘조잘 재잘재잘.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는 이야기인 듯, 옛날이야기인 듯, 물소리에서 숨은 이야기들이 기어 나온다.
‘오목교’라 이름 지은 다리를 처음 걸어본다. 전주한옥마을과 지금의 국립무형유산원 사이를 잇는 새 돌다리다. 국립무형유산원은 옛날 전주수목원 자리였다. 다리 가운데서 동쪽을 바라보면 승암산의 풍경이, 남쪽으로는 남고산성이, 서쪽으로는 남천교 위, <청연루> 의 날렵한 지붕이 완산 아래로, 마치 병풍 그림을 펼쳐놓은 듯 아름답다. 다리 밑으로 내려와서 예부터 있던 징검돌다리를 건넌다. 너럭바위 같은 징검돌을 하나하나 짚어본다. 물오리 몇 마리와 왜가리 한 마리도 산책을 나와 청량한 물 위에서 유유히 놀고 있다. 돌 틈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가 전주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처럼, 추억이 된 옛이야기를 속삭이는 것 같아서 한 바윗돌에 걸터앉아 새삼 그 이야기 소리를 노래처럼 새겨듣는다. 청연루>
경남 땅이 고향이던 내가 어쩌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전주에서 보낸 인연으로 전주 사람이 되기까지 반세기가 훨씬 넘었다. 지금은 상관에서 전주천의 발원지인 슬치 고개에서 내려오는 물길인 대흥천을 따라와 한벽교를 거의 매일 지난다, 한벽당 벼랑에서 청연(靑煙)을 이룬 물보라가 서쪽으로 흐르게 되니, 여기서부터 전주천이라 불린다. 아주 먼 옛날에는 대흥천 물길이 오목대를 휘돌아 금암동, 구 전주방송국 앞, 거북바위 앞으로 흘렀다 한다. 오목대와 거북바위에 배를 대었다고 하니, 상전벽해가 거꾸로 몇 번이나 뒤집어졌는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삼각산 얼음물이 녹으면 청계천 굽이진 냇가에는 여기저기 방망이 소리가 요란했다고 했지. 방망이 소리가 잦아들면서 한강의 기적은 지금의 서울을 이룩했다. 전주천 또한 마을을 품어 오늘의 전주 역사를 이루어왔지 싶다.
여고 시절 언니 따라 한벽당 아래의 빨래터에 온 적이 있었다. 광목천 홑청 같은 것을 빨면 삶아주는 직업도 있었다. 빨래를 자갈밭에 널어 말리던 풍경도 떠오른다. 그렇듯 전주 사람들도 전주천의 빨래터를 이용했다. 전주 십경의 하나였던 남천표모(南川漂母)는 온데간데없지만, 여전히 전주천은 전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전주에서 신혼살림을 차렸을 때, 내 생일 날 그이는 오모가리탕을 사준다고 나를 전주천으로 데리고 왔다. 옛날 빨래터의 흔적은 없어졌지만, 천변에 천막을 친 평상들이 즐비했다. 나는 그때 오모가리가 물고기 이름이 아닌, 오목한 뚝배기 이름인 것을 알았다. 전주 팔미 중의 하나라는 것도. 여름철에 내 생일이 있기에 시원한 나들이가 되었다. 지금은 오모가리탕 집이 많이 사라지고 한두 집이 명맥만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물고기를 잡을 수도 없다.
전주천을 정화한 뒤, 맑은 물에서만 사는 쉬리와 멸종 위기였던 야생동물인 수달까지 사는 깨끗한 하천이 되었다. 천변을 공원화하여 철마다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니 시민들의 운동 장소와 산책로가 되었다. 천변 길을 따라 내려가면 전주의 역사성을 지닌 남부시장과 장군봉의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지고, 삼천까지 올라가는 둘레길의 길목마다 전주 사람의 사연이 깃들어 있다. 전주 고도에 쌓인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주천의 물길 따라 흘러서 삼천을 만나고, 다시 고산천과 합류하고 흘러서 만경강을 이루어 새로운 역사의 바다로 흘러가리라.
△조윤수씨는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해 목포문학상과 행촌수필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전북문인협회 이사, 수필과비평작가회 부회장으로 있으며 <나의 차마고도> 등 3권의 수필집이 있다. 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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