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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 뽑기

▲ 박순희
지난여름은 36도의 불볕더위와 가뭄이 맹위를 떨쳤다. 농민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가슴을 태웠고 나도 아픔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다가 하필 손톱눈이 아파서 매일 소독하고 약도 먹었으나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병원에를 갔더니 의사가 확대경으로 보더니 3㎜ 정도의 가시를 뽑고 붕대에 반창고까지 붙여 주었다. 그러나 통증은 6일 동안 계속되었고 삼복더위에 샤워도 못 하고 음식도 만들 수 없었다.

 

고문 아닌 고문을 당한 꼴이어서 병원을 옮겨 덜 빠진 가시를 뽑고 또 싸매 놓았다. 확대경으로 보고도 가시를 뽑아내지 못한 의사를 찾아가서 항의하고픈 생각도 있었으나 그만두었다. 잘못 치료한 의사 덕택에 10일간 더위와 씨름하며 인내의 극기 훈련을 한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그리고 평소에는 별로 쓰지 않던 새끼손가락이 이렇게도 소중함을 깨달았다.

 

지난여름의 아픈 새끼손가락은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행복이란 순간이며 행복에는 지속성이 없어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다.”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과 행복은 지금 이 순간에 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우리에게는 몸을 찌르는 가시뿐만 아니라 마음을 찌르는 가시와 삶의 가시가 있다. 예를 들면 흡연의 가시는 성인뿐만 아니라, 중고생을 유혹한다. 20여 년 전, 필리핀 초등학교에서 ‘금연’을 교훈으로 정한 때가 있었다. 이 망국의 풍조가 우리나라로 건너왔다. 도시 초등학교 교장실에서 흡연학생과 필요한 학생들의 대화 창구를 운영하고 있다. 이 사업이 나비의 날갯짓 같은 작은 변화가 폭풍우와 같은 커다란 변화를 유발하는 나비효과로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언젠가 P중학교 옆을 지나는데, 학생들이 체육복을 입고 농구, 축구, 배드민턴 등 그룹별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5~6명의 아이들은 나무 그늘 아래서 예사롭게 흡연을 하고 있었다. 나는 못 볼 것을 본 충격 때문에 가슴이 뛰었다. 수업 시간에 저럴 수가? 우리나라의 미래와 그들의 부모와 학생들이 염려스러웠다. 학교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싶어 슬펐다.

 

순간 1980년도 초반 중학교 3학년 담임 시절 어느 제자의 얼굴이 눈앞을 스쳤다. 그 남자아이가 골초라는 소문을 귀띔으로 듣고 수시로 호주머니와 가방을 열어 보았는데 담배가 안 나와서 내심 기뻤다. 그런데 뒤에 알고 보니 뒷동산 소나무 가지에 숨겨 두고 즐기는 것이었다. 지금쯤 50대 중반은 되었을 텐데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고 싶다. 그 아이에게는 담임교사가 눈엣가시였을지도 모른다.

 

나이는 과거를 되돌아보게 한다. 한 명이라도 더 상급학교에 합격시키려는 욕심 때문에 밀고 끌기를 하다 보니, 미처 따라오지 못한 학생들은 아픔을 감내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닌데 그때 나는 좋은 교사가 아니라 가시 같은 교사가 아니었을까?

 

이제 나는 여생 상처를 싸매주는 붕대가 되고 싶다. 사람들은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며 산다. 부부와 부모, 자녀, 형제, 친척, 상사와 동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삶의 수레바퀴가 지구가 궤도를 따라 돌듯이 나도 지구를 감은 둥근 붕대처럼 살면 윤기 나는 삶이 될 것이다.

 

비움의 소통을 연습하련다. 봄에는 회사한 빛깔로 하늘거리던 꽃잎도 여름에는 생명의 창일함이 온 누리를 덮던 초록의 향연도, 꽃보다 더 고운 단풍도,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떠난다. 인생은 용서하며 용서받으며 살아간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휴지통이 하나씩 있다. 이 휴지통에 모든 탐욕을 비우고 베풀며 살고 싶다.

 

 

△박순희씨는 남원 출생으로 한국방송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한국문인’으로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 행촌수필문학회, 영호남수필문학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수필집 ‘꽃으로 말한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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