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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구와의 이별 - 김금례

▲ 김금례
너와 작별을 한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구나. 네가 떠나는 날은 나의 한쪽이 떨어져 나가듯 아팠다. 시간이 가면 잊어버릴 줄 알았는데 날이 가면 갈수록 너와 함께했던 시간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외출하고 집에 들어오면 두 발로 서서 반겨주고 대문이 열려 있어도 너는 나가지 않고 우리를 지켜준 일등공신 수문장이었지. 어느 가을인가는 뜰에 낙엽을 쓸다가 내가 잃어버린 묵주를 찾아 현관에 갖다 놓아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었지.

 

자녀들이 떠난 빈자리를 허허롭지 않게 채워주었던 너는 개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귀염둥이였지. 마지막까지도 우리 가족에게 충성을 다하고 순종하며 떠난 너의 모습에 나는 오늘도 잠 못 이루고 몸을 뒤척인다. 아파트로 이사를 하려고 했지만, 너와 살기는 이곳이 좋아 함께 살려고 리모델링까지 했는데 네가 없는 우리 집은 쓸쓸하기만 하구나. 백구는 막내아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구입해 가슴에 품고 들어왔다. 눈은 까맣고 귀가 늘어진 하얀 옷을 입은 귀여운 풍산개 족보였는데 털이 희어서 백구라 이름 지었다. 엄마와 떨어져 울만도 한데 아들과 함께 있으니 낮에는 방마다 다니며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런데 아들이 취직되어 서울로 떠나면서 집에 남겨두고 갔다.

 

백구는 투정하지 않으며 밥만 주면 충성을 다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분가한 아들딸 가족들이 오면 꼬리를 치고 반긴다. 손자들은 그런 백구가 좋아서 개 껌과 소시지를 가져다준다. 백구는 천성적으로 성격이 비둘기처럼 양순했다. 손자들이 목마를 타고 귀찮게 해도 다 받아주었다. 사람을 가려 짖으니 개답지 않다며 동네에서도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그런데 세월 이길 장사 없다더니 백구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14년의 노구로 누워 있는 때가 많았다. 내가 밖에서 들어와도 앉아서 꼬리만 흔든다. 모임 갔다가 남은 음식물을 가져다주면서 ‘백구야, 올해는 황금 개띠 해란다. 힘을 내라!’라고 하면 남편은 눈살을 찌푸린다. 그래도 평소 좋아했던 족발을 보면 일어나 맛있게 먹는다. ‘그렇게 맛있어?’ 나는 목덜미를 쓰다듬어주며 장수를 염원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힘이 부치는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고개를 숙이고 모퉁이에서 비스듬히 누워 불러도 움직이지 않았다. ‘갈 때가 왔구나!’ 운명을 직감하고 고기와 우유를 주어도 먹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보니 백구는 현관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아들이 흰 베에 싸서 가슴에 안고 화장터로 가는 모습을 보니 마치 친정어머니의 마지막 모습 같았다. ‘백구야! 다음에는 개로 태어나지 말고 사람으로 환생하렴.’

 

아침저녁으로 밥을 주었던 남편은 지금도 잊지 못하는지 큰아들이 백구 집을 치우려고 하자 아무 때나 밥 먹고 놀다 가게 그대로 두라고 했다. 백구야, 추운 겨울을 보내고 지금은 따뜻한 봄이 왔다. 앞뜰 감나무는 새잎을 품고, 모과나무와 동백나무는 꽃이 피고 새싹들이 나왔다. 하얀 꽃은 너의 분신처럼 우리 가슴속에 오래도록 피어 시들지 않을 것이다.

 

우리 부부도 노년의 삶을 살고 있다. 100세 시대라지만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 이제는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건강을 챙기며, 잃어버렸던 내 인생을 찾아 취미 생활을 하면서 검소하고 천박하지 않게 베풀며 사람답게 살다 가려고 한다. 백구보다 더 예쁜 개를 보내 줄 테니 슬퍼하지 말라고 막내아들한테서 전화가 왔지만,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아 우리 부부는 봄의 햇살을 받으며 쉬엄쉬엄 건지산에 올랐다.

 

△김금례 씨는 수필시대로 등단하여 한국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 전북수필문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행촌수필문학상을 수상했다. 수필집 <꿈의 날개를 달고>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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