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를 다니던 6년 동안 가을 소풍은 항상 금당사와 마이산으로 갔다. 나는 어릴 적부터 고적과 역사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소풍을 가서도 마이산 탑들의 절경 그리고 역사 이야기에 빠져 가장 늦게 머물러서 붙여진 별명이 느림보 고적 박사였다.
진안에서 오랫동안 교장선생님으로 계셨던 이규형 외숙으로부터 마이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이산묘와 금당사 탑사 은수사를 거쳐 천왕문을 찾았던 추억이 남아 있다. 외숙께서는 내가 마이산에 대해서 물으면 이름의 유래와 탑의 전설 등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마이산은 삼국사기와 고려사에 서다산이라고 했으며 조선 태종이 남행했을 때 모양이 말 귀와 같다고 하여 마이산이라 칭했다고 전하기도 한다. 또 마이산은 용출산, 용출봉이라고 불렀고 마령 사람들은 속금산이라고 했다. 외숙께서 전해주신 마이산 전설 이야기에 의하면 전에는 부부산신이었다고 한다.
삼천일을 수도한 뒤 마침내 승천할 날이 닥치자 남산신은 사람들이 승천 장면을 보면 부정을 타니 한밤중에 떠나자고 했다. 그러나 여산신은 품 안에 곤히 자고 있는 아들을 보고 새벽에 떠나게 되었는데 마침 새벽에 물 길러 나왔던 아낙네가 산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놀라는 바람에 승천이 무산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화가 난 남산신은 여산신의 품에서 아기를 빼앗고 발로 차 지금 애기봉이 아빠봉 곁에 있고 엄마봉은 죄스러워 다소곳이 외면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게 되었다고 한다. 진안 쪽에서 보면 숫마이봉 옆에 아기봉이 붙어 있고 암마이봉은 오른쪽으로 다소곳이 고개 숙인 모습이다. 마이산은 계절 따라 이름도 각각인데 봄에는 돛대봉, 여름에는 용각봉, 가을에는 마이봉, 겨울에는 문필봉이라고 한다. 외숙께서는 탑사 이야기도 해 주셨는데 큰 탑은 예부터 있었으나 나머지는 탑사 주지였던 이갑용 처사가 쌓은 탑이라고 주장하지만 주탑인 천지탑과 일광탑, 월광탑, 약사탑 등 큰 탑은 예부터 있었고 한 줄로 쌓은 외줄탑 정도는 쌓았을 수도 있었다고 했다.
마이산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탑사 주변에 산비둘기들이 많이 날고 있다. 진안의 명산 마이산은 우리 진안 사람들의 품이다. 나는 지금도 고향 생각이 나면 마이산을 찾는다.
지금은 벚나무를 많이 심어 4월 하순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금당사, 담락당 시비를 지나 마이산과 신비한 돌탑을 찾으면 항상 마음이 포근하다.
△전종용 씨는 진안 출생으로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직했다. 지금은 한학에 심취하며 취미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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