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관이 혁신도시로 이전하면 인재가 지역으로 가지 않아 큰 위기를 맞을 거라고 목소리를 높인 이들이 많았다. 국민연금기금용본부의 경우 인재 확보가 어려워 투자 실적을 내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기사도 났었다. 그 유명한 워런 버핏의 회사인 버크셔해서웨이 본사는 수도 워싱턴이나 경제 중심인 월스트리트에 있지 않다.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 있다. 지방이전을 우려한 논리대로라면 워런 버핏의 회사는 진즉 망했어야 한다.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이 진행 중이다. 어느 기관이 어느 지역으로 갈지 초미의 관심사다. 지자체는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수도권에 남아있던 공공기관은 사정이 다르다. 이전되지 않고 서울에 남아있기를 바라면서 전전긍긍한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느긋한 공공기관이 있다. 국립예술단이다.
국립예술단도 지방이전하자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럴 때마다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지방이전하지 않는 이유를 들어보면, 국립이라고 하나 실제는 민간단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 있다. 한마디로 공공기관이 아니므로 이전할 필요가 없단다. 국립예술단의 역할은 예술의 수준을 높이는 데 있으므로 지역균형발전이 목적인 지방이전과 무관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유가 여럿이나, 왠지 명쾌하지 않다.
국립국어원은 수도인 서울에 있어야 한다, 말이 된다. 「표준어 규정」 제1장제1항에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해져 있으니까 말이다. 국립예술단이 꼭 서울에 있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대한민국 예술을 대표하니까 수도에 있어야 한다? 유럽 각국을 대표하는 예술단이 모두 수도에 있지 않다. 순수예술의 대중화를 위해 사람이 가장 많은 지역에 있어야 한다? 예술의 대중화가 무엇보다 시급한 국민은 서울 외 지역에 살고 있다. 지역으로 가면 우수한 단원을 선발하지 못한다? 인재는 여전히 공공기관을 제1의 취업대상지로 삼는다.
국립예술단이 서울, 그것도 강남에 몰려 있다는 사실도 심각한 문제이다. 예술의전당 사장조차 말한 바 있다. “강남부자를 위한 극장”이라고. 그 장소에 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 국립현대무용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서울예술단이 상주해 있다. 모두 문체부 소속 기관으로, 예술의전당에서 주로 공연한다. 그리고 관람객은 대부분 강남에 사는 이들이다.
국회 김승수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문체부 소속 8개 국립예술단이 2023년에 무대에 올린 공연 1,040회 중에서 서울에서 891회가 공연되었다고 한다. 비율로 보면 85.7%이다. 2021년에 75%, 2022년에 70%였으니 서울 집중화가 더 심해진 셈이다. 국립발레단 소개 글에 나와 있는 “국내 발레의 대중화라는 큰 의무를 위해”라는 문구처럼, 모든 국립예술단이 대중화를 외치는데 실제는 그 말이 무색하다.
공론화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국립예술단은 지방이전 대상이 아닌 이유라도 명쾌하게 들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지방시대’인데 여전히 예술 관람에 있어 지역은 변방이다. 표준어가 교양 있는 사람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듯 국립예술이 서울에서 창작되는 예술이면 몰라도, 국립예술단의 지방이전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좋겠다. 지자체는 프로스포츠단을 유치하는데 사활을 건다. 국립예술단이 내려온다고만 하면 프로스포츠단 이상의 유치 경쟁이 불을 뿜을 것이다. 주민의 열렬한 환영 역시 당연하다.
/장세길 전북연구원 사회문화연구부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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