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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중앙회 전북본부 이정환 총괄본부장 "청년들 농업 진출 위한 소득 3000만 원 기틀 마련"

"전북농협은 지난 60년을 넘어 앞으로도 우리 땅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농업인과 농촌의 믿음직한 동반자가 되겠습니다" 농협은행 전북본부장으로 1년 동안 활동하다가 올해 1월 1일 총괄본부장으로 영전한 이정환 본부장. 부안출신인 그는 전북농업의 발전을 위해 초심을 잃지 않고 한걸음 나아갈 때 마다 올바른 길로 가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면 현장에서 그 답을 찾고자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믿음직한 동반자, 전북농협’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북특별자치도와 함께 도내 농업·농촌과 농업인의 동반자가 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특히 농업에서 희망을 찾고 젊은이들이 농업에 더 많이 진출 할 수 있도록 농업소득 3000만원의 기틀 마련도 약속했다. 올해 전북 농축협이 탄탄한 수익을 바탕으로 농촌을 지키는 중심축이 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힌 이정환 총괄본부장을 만나 전북농협의 계획과 비전에 대해 들어봤다. -먼저,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전북농협 본부장으로 일하게 된 이정환입니다. 을사년에는 모두에게 희망이 있고, 발전이 있는 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전북농협도 어려운 시기에 지혜와 협력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삼는 힘찬 도약을 하는 해로 만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전북농협은 전북특별자치도와 도민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동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전북출신으로 고향 사랑이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전북발전을 위한 계획이 있다면 "저는 부안에서 태어나서 초·중·고를 나왔고 전북대학교를 졸업하고 전북농협에 입사했습니다. 그 만큼 전북특별자치도에 대한 애정이 남다릅니다. 제가 농협은행 본부에서 여신과 기업 관련 업무를 담당할 때 전북특별자치도의 기업들이 더욱 열심히 경제 활동을 할 수 있게 최대한 지원을 했습니다. 그게 고향이 제가 큰 일을 할 수 있게 도와 준 고향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전북특별자치도는 농생명사업의 수도입니다. 이는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고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북농협의 수장으로서 도내 농업인 등이 마음 놓고 농업경영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작은 일부터 차근히 준비하고 지원하고자 하는 것이 전북특별자치도의 발전이라는 생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할 생각입니다. -농업소득 3000만원 달성을 위해 농업 현장의 어려움을 직접 듣고 지원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데 구체적인 추진계획이 있다면 "지난 2023년 기준 농업소득은 약 1,110만원 정도였으며, 1994년에 약 1,032만원에서 30년 동안 8%에도 못 미치게 증가했습니다. 물가상승률을 대입하면 실질적으로는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사이 같은 기간 농업경영비는 502만원에서 2,677만원으로 430%가 넘게 증가했으니 대한민국 발전의 근간을 책임졌던 농업인의 어려움이 어떠할지 이 수치만 보더라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농협은 농업인의 본업인 농업소득 보다 농업외 소득이 더 많은 상황을 타개하고, 농업에서 희망을 찾고 젊은이들이 농업에 더 많이 진출 할 수 있도록 농업소득 3000만원의 기틀을 마련해 나가려고 합니다. 전북농협은 이를 위해 농가 수취가 제고, 경영비 절감, 생산성 향상이라는 세가지 분야에 중점을 두고 사업을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먼저, 수취가 제고를 위해서 전국 최초 도내 14시·군에 설립된 조공법인 활용을 통해 판매량 극대화와 농산물 제값받기에 매진해 나가겠습니다. 또한, 도내 54개 운영 중인 로컬푸드 직매장 내실화를 통해 소비자에게 믿음을 주고 탄소배출 감소에도 노력하는 한해로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농산물 부가가치 증대를 위해서 지속적인 상품개발을 지원하고 OEM가공사업 추진 농협도 적극 육성해 나가겠습니다. 다음으로 경영비 절감을 위해서는 농작업 대행과 공동방제를 적극 확대하여 작업량과 면적을 확대해 나가겠으며, 드문모심기와 직파재배를 지원하여 쌀 생산농가의 비용 감축에도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 스마트팜 확대를 지속해 나감과 동시에 농진청, 농업기술원 등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농업기술 도입에 매진하겠습니다. 더불어 청년농 육성과 신기술 보급을 위해 지자체-농축협-전북본부와의 삼각 지원체계 마련을 위해 협력해 나갈 예정입니다. 농업소득은 농업인의 가장 근본이 되는 소득원이지만 그간 소득증대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2025년을 계기로 농업소득 3천만원을 달성의 기반을 마련토록 전북농협이 최선을 다해 나가겠습니다" - 농도 전북의 위상에 걸맞은 2025년 새해 전북농협의 계획과 비전이 있다면. "전북농협은 2025년 슬로건으로‘믿음직한 동반자, 전북농협’을 선정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농업인과 함께 웃고, 성장하는 전북농협'을 만들기 위해 농가 수취가 제고, 경영비 절감, 생산성 향상이라는 세가지의 중점 과제를 설정하고 농업소득 3천만원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겠습니다. 또한, 농촌은 살기 힘들고 지루한 곳이라는 인식을 개선하는데 앞장서서 신규 복지사업을 발굴ㆍ확대하고 더 많이 웃는 농촌을 만들어 나갈 생각입니다. 다음으로 농축협의 성장을 지원하는 '농축협과 함께 뛰고, 도약하는 전북농협'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농촌지역에서 농축협의 역할은 단순히 금융과 농자재 지원이라는 개념을 넘어 식품 사막화를 막고, 인적 교류의 중심 센터로 자리매김 하는 등 경제ㆍ문화의 중심 역할의 수행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농축협은 농업인이 힘들 때 가장 먼저 의지 할 곳으로‘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올해는 전북의 농축협이 탄탄한 수익을 바탕으로 경제사업을 활성화 시켜, 농업인의 경영안정을 돕고 농촌지역을 지키는 중심축으로 자리매김 하도록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역사회와 협력하는 '지자체와 함께 보고, 협력하는 전북농협'을 만들겠습니다. 농업정책은 행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농협이 하는 일들은 지역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전북농협은 지자체와 협력을 공고히 해서 행정의 지원 역할을 강화하고, 지역 발전의 방향과 개선책을 찾아 정책에 적용 시키는 상호보완의 관계 발전에 주력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농업인과 농촌 그리고 전북특별자치도의 발전의 한 축으로 거듭나고자 합니다" -지난 해 전북농협은 아침 밥 먹기 운동 등을 통해 쌀소비촉진을 위한 다양한 캠페인을 실시했는데 올해는. 많은 분들이 한번 정도는 들어 보셨을 ‘아침밥 먹기’운동을 기억하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매년 떨어지고 있으며 잘못된 다이어트 정보로 인한 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높아지는 현실 속에서 농협은 건강한 식습관 형성으로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쌀 산업 유지를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한 해 동안 진행한 캠페인이 약 330여회, MOU는 55회, 판매는 수출을 포함하여 2천톤을 넘겨서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을 임직원들 스스로 실감했습니다. 쌀 산업은 대한민국 농업의 근간을 이루며, 식량안보는 물론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밑바탕으로 2025년에도 농협은 지속적으로 올바른 인식을 전파하고 소비촉진을 추진해 갈 예정입니다" -전북농협이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활동을 꾸준히 전개 해 왔는데 올해 계획은. "전북농협은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통해 도내 농업인 등이 좀 더 나은 삶을 영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시작한 청춘버스가 그 중 하나입니다. 청춘버스는 도내 농촌을 찾아 농협과 유관기관들이 함께 자발적 재능기부를 통해 의료검진, 피부미용, 청춘사진 촬영 등 제공하여 많은 농업인들의 호응을 받아 올해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자 계획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인 저출산 및 고령화로 인하여 급속도로 인구가 소멸되는 도내 농촌에 식품사막화가 가속되고 있어 찾아가는 이동 장터를 통해 올바른 먹거리를 제공 할 수 있게 계획 중 입니다. 또한 도내 많은 유관기관·지자체와 함께 일손 부족으로 농업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을 찾아 지속적인 일손돕기도 실시할 예정입니다. 이처럼 전북농협은 일회성 전시 행사가 아닌 도내 농업인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활동을 할 계획이니 많은 관심과 협조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도민들과 전북일보독자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가 부임한지 벌써 2달이 다 되어 갑니다. 처음 부임했을 때 도내 곳곳을 다니며 열심히 하겠다는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럴 때마다 많은 분들 60년 넘은 세월동안 농업인들의 곁을 든든히 지키고 있는 농협에 대한 칭찬과 개선점 등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들을 하나 하나 메모하여 올 한해 전북농협이 한걸음 나아갈 때마다 꺼내 보곤 합니다. 또한 한걸음 나아갈 때 마다 올바른 길로 가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현장에서 그 답을 찾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저희 전북농협은 지난 60년을 넘어 앞으로도 우리 땅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농업인과 농촌의 믿음직한 동반자가 되고자 노력 할 것입니다. 늦었지만 전북일보독자 여러분 모두가 새해에 이루고자 하시는 일 성취하시길 바라며 2025년‘믿음직한 동반자, 전북농협’에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이정환 총괄본부장은 1969년 생인 이정환 총괄 본부장은 부안고등학교와 전북대 정치외교학를 졸업하고 지난 1995년 농협에 입사했다. 이후 전주산업단지 지점장, 무주군 지부장, CIB심사부 부장 등을 거쳐 지난해 1월 1일 자로 농협은행 전북본부장에 임명돼 활동하다가 올해 1월 1일 NH농협 전북 총괄 본부장에 임명됐다. 전북지역에서 오랜세월 동안 활동한 경력이 있어 지역사정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있는데다 전북출신으로 고향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고 박진감 있는 추진력과 함께 친화력을 갖춘 덕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 기획
  • 이종호
  • 2025.02.16 18:17

[청년 이장이 떴다] 씻고, 무치고, 끓이고⋯수십 인분 정월대보름 밥상은?

평소 화정마을 경로당의 인사는 "성님, 어서 오셔요!"로 통합니다. 하지만 한 해의 첫 보름달이 뜨는 정월대보름을 맞이한 12일 인사는 다릅니다. 오늘의 인사는 "성님, 내 더위 사세요!"로 통일됐네요. 정월대보름에는 '더위팔기'를 합니다. 새벽에 아는 사람을 만나면 그 이름을 부르고 그 사람이 대답하면 "내 더쉬 사가라!" 또는 "내 더위 네 더위 맞더위!"라고 소리치는 방식이죠. 보통 해 뜨기 전에 하는 아침 인사지만 오후 2시가 돼야 만나는 화정마을 어르신들은 늦게나마 더위팔기를 해 봅니다. 정월대보름인 지난 12일 화정경로당에서 부녀회장이 나물을 씻는 등 바삐 움직이고 있다. 김지원 기자 아참, 오늘은 정월대보름을 맞이해 마을 주민들이 모여 저녁을 먹는 날입니다. 이장님이 영양 가득한 찰밥을 준비하고 부녀회장님이 9색 나물·고등어찌개·두부조림 등을 준비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탓에 저녁밥을 조금 일찍 먹고 헤어지기로 했습니다. 오후 1시부터 부녀회장님이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마을 주민 수십 명의 반찬을 만들어야 하니 정신없는 게 당연합니다. 차가운 물에 나물을 깨끗이 씻고, 고등어찌개 간 맞추고, 가스레인지 위에서 끓고 있는 두부조림 뒤집어 주고, 다시 나물 무치고⋯. 정말 쉴 새 없이 움직여 마을 주민 수십 명이 먹을 밥·반찬이 모두 완성됐습니다. 완성되기가 무섭게 곧바로 수십 명의 밥·반찬 덜기가 시작됐습니다. 상다리가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한 상 가득 정월대보름 밥상이 차려졌습니다. 여차저차 준비를 마치고 '청년 이장' 취재진들도 자리 잡고 앉아 봅니다.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있으니 진짜 가족이 된 듯합니다. 함께 모여 밥 먹고, 먹고 또 한 그릇 더 먹고, 한참을 이야기꽃을 피우다 헤어졌습니다. 우리는 오늘 또 공동체를 배웠습니다. 함께 하는 시간이 얼마나 즐거운지, 함께 먹는 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알게 됐죠.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 기획
  • 박현우
  • 2025.02.15 18:29

[청년 이장이 떴다] "필라테스가 뭐라고?"⋯시골마을 겨울잠 깨운 운동 교실

여느 농촌이 그렇듯 농번기가 오기 전까지는 한가로이 흘러갑니다. 화정마을 역시 매일 같은 하루가 반복되죠. 아침에는 따듯한 집에서 해가 뜨기를 기다리고 오후 2시가 되면 경로당으로 모입니다. 오늘(11일)은 화정마을에 반가운 손님이 왔습니다. 바로 인기 방송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유명세를 떨친 '청년 농부' 차정환(28) 씨와 필라테스 강사 백진선(39) 씨입니다. 둘은 지난 2023년부터 김제 어르신들께 필라테스를 알려 주는 '재능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김제에서 완주 화정마을까지 왕복 1시간 40분이 걸리지만 '청년 이장' 취재진의 부탁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오늘은 필라? 필라 뭐라고? 그거 한담서, 그래서 빨리 왔지!" 오율례(76) 할머니가 가장 먼저 도착했습니다. 맨 앞자리를 찜한 율례 할머니 뒤로 어르신들이 하나 둘 모입니다. 그렇게 모인 인원은 총 11명,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입니다. "어머님들, 필라테스라는 운동을 해 볼 거예요. 필라 아니고 필라테쑤 아니고 필라테스예요." 유쾌한 정환 선생님 말씀에 어르신들의 얼굴에도 금방 웃음꽃이 핍니다. 누워서 다리를 들어 올리고 손끝을 쭉쭉 늘려 보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움직임이지만 어르신들에게는 큰 도전입니다. 진선 선생님도 어르신들 사이사이를 다니며 자세를 바로잡아 줍니다. 뻣뻣하게 굳은 어르신들의 몸은 작은 동작 하나에도 다칠 수 있어 특별히 더 신경 쓰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하니께 엉덩이가 두근두근하는디? 아유, 선상님! 이게 맞는 거여요?" 최은주(80) 할머니가 빨개진 얼굴로 묻습니다. 경로당에 한바탕 웃음이 번집니다. 정환 선생님도 제대로 운동하고 있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굳어 있던 몸이 조금씩 풀리는지 여기저기서 곡소리(?)와 비슷한 감탄이 터져 나옵니다. "아고야! 나 죽네, 나 죽어. 어구 시원혀."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가고 정환·진선 선생님이 돌아갈 시간이 됐습니다. 다들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평소 어르신들밖에 없다 보니 찾아오는 사람이 오면 항상 헤어짐이 아쉽습니다. 어르신들은 두 선생님이 선물해 주고 가신 필라테스 공을 한참 만지작거리며 배운 동작을 다시 해 봅니다. 어쩌면 남은 겨울 동안은 화투패 대신 공을 들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읍내만 나가도 필라테스·헬스 등을 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읍내에 나가는 것도 일인 시골 마을은 간단한 체조 하나 배우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오늘 열린 운동 교실이 화정마을 어르신들에게 작은 활력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디지털뉴스부=문채연 기자

  • 기획
  • 문채연
  • 2025.02.15 07:44

[청년 이장이 떴다] "더 많은 마을에서 봉사하고 파"⋯'청년 농부'도 힘 보탰다

'청년 이장' 취재진에게 접수된 수많은 의뢰 중 하나는 '운동'이었습니다. 실제로 운동과 관련해 재능 기부를 하는 청년을 떠올리던 중 문득 텔레비전 속에서 본 차정환 씨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전화를 걸어 '청년 이장이 떴다' 기획 프로젝트를 소개한 후 조심스레 재능 기부를 부탁했습니다. 아무 대가 없는 부탁이었지만 고민도 없이 "좋다"고 웃었습니다. 그렇게 화정마을 어르신들과 차 씨의 만남이 성사됐습니다. 일과 중 가장 재미있는 시간은 '화투'뿐이었던 어르신들은 차 씨와 어느 때보다 즐거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고요한 화정마을에 긍정의 힘을 불어넣은 '긍정 농부' 차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김제에서 마을 어르신들께 필라테스를 알려 드린다고요? "2023년 12월부터 봉사를 시작했으니 벌써 1년이 넘었네요. 원래는 저희 할머니 운동 시키는 게 목적이었어요. 사실 운동이라는 건 혼자 하면 재미가 없죠. 마을 어르신들이 같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농사를 지으면서 봉사까지, 힘들 것 같은데요. "생각보다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즐겁습니다. 따뜻한 분위기가 되게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처음 만난 어르신들도 오래 본 사람처럼 대해 주시거든요. 이런 게 평소 살아가는 데 좋은 영향을 주더라고요. 그래서 농번기에도 빠지지 않고 봉사를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실 생각이신가요? "그럼요. 앞으로는 더 많은 마을에서 봉사하고 싶어요. 운동하고 싶은 어르신들이 되게 많거든요. 대신 그러려면 선생님들이 더 필요하겠죠. 그래서 저와 뜻이 맞는 선생님을 구하고 있습니다. 함께 하고 싶은 선생님들이 있다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화정마을 어르신들께 한 마디 해 주신다면요? "연세가 많으신 편이더라고요. 그래도 굉장히 유쾌한 모습을 보여 주시고 힘차게 함께 운동해 주셔서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떻게 보면 멀리서 온 외지인인데 정말 자식·손주처럼 친절히 대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디지털뉴스부=문채연 기자

  • 기획
  • 문채연
  • 2025.02.15 07:40

[청년 이장이 떴다] "죽기 전에 꼭"⋯75년 만에 날아온 '편지 한 장'

지난주 조재신(89) 할머니가 화정마을 경로당에서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청년 이장' 취재진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할머니는 "시방, 누가 우리 집으로 편지를 보냈어. 이장님들이 내 주소를 알려 준 겨?"라고 물었습니다. 깜짝 놀란 취재진은 "할머니 개인 정보인데 누구한테 알려 드려, 큰일 나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편지를 확인하러 함께 할머니 댁으로 이동했습니다. 할머니는 일기장 깊숙이 넣어 놓은 편지 봉투를 꺼내셨습니다. 색이 다 바랜 우표가 붙은 봉투 속에는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눌러쓴 글씨가 빼곡히 적힌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고산면 화정리 조재신 할머님께. 나는 비봉면 죽산마을에 살다가 전주로 이사 간 조재영입니다. 오늘 아침 전북일보 신문을 보고 본 서신을 드립니다." 누가 봐도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이 쓴 편지 같았습니다. 조 할머니는 "처음에 보낸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당게. 근데 시방, 나랑 같이 국민학교 다닌 양반이더라니께. 신문 보고 편지 썼디야. 우리 집도 모를 텐디 어떻게 알고 보냈는지 모르겄어"라고 말했습니다. "75년 전 비봉국민학교 제17회 졸업생이시면 반갑게 인사 올립니다. 졸업한 지 75년이 되었지요. 졸업 사진 보고 얼굴도 기억했습니다. 조 여사님 건강하시고 잘 계셔요!" 알고 보니 두 분은 열다섯 살 때 같은 반이었던 겁니다.(옛날에는 국민학교를 18살에 졸업하는 일도 있었죠.) 먹고 사느라 바빠 친구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 채 지냈는데 본보 신문(1월 20일·2월 3일 자 각 2면)을 보고 75년 만에 연락한 것입니다. 할머니도 편지를 읽고 너무나 반가워서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두 분은 한참을 통화하다가 약속했죠. 죽기 전에 꼭 만나자고요. 이후 취재진은 사무실로 돌아와 편지를 몇 번이고 읽어봤습니다. 75년 만에 닿은 연락이라⋯. 편지의 내막이 궁금해 바로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동창들이 다 죽은 줄 알았는데 친구를 보니까 반갑더라니까. 아버지·어머니 산소 갈 때 아들들이랑 가기로 했어요"라며 만남을 기약하셨습니다. 꼭 두 분이 만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 기획
  • 박현우
  • 2025.02.15 07:33

[청년 이장이 떴다] 그땐 그랬지⋯ 왕할머니에게 듣는 옛 정월대보름

올해 화정마을 정월대보름은 저녁 먹고 해산됐습니다. 옛날부터 이랬던 것은 아닙니다. 경로당이 없을 때부터 매년 대보름을 챙겨오던 화정마을이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풍습을 이어가기도 어려워졌습니다. 이웃집을 찾아가 쌀을 받으러 다니는가 하면, 같이 풍물놀이를 하기도 했죠. 이것도 마을 주민들이 젊었을 때나 가능했다는 게 주민들의 전언입니다. 이제는 말이 다릅니다. 모두 나이가 들면서 풍습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아졌죠. 대체 화정마을은 그동안 어떤 정월대보름을 보냈을까요? 화정마을 왕할머니인 90대 이장순(91)·이칠월(90)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옛날에는 정월대보름을 거창하게 지냈다고 들었는데요. "암, 화정마을은 해마다 밥도 같이 먹고 그랬지. 젊어서는 경로당이 없었어. 그래서 마을 아줌마들이 찰밥을 걷으러 다녔어. 가정집에 가서 골고루 얻어다가 같이 밥해서 먹고, 밤새도록 놀고, 술 마시고 그랬다니께. 심지어 돈도 걷었어. 마을 돌아가는 데 쓰기도 혔지." 막걸리까지 직접 만들어서 드셨다고요? "예전에는 막걸리가 통으로 있었어. 지금 보는 병이 아녀. 그것도 다 직접 빚었다니께. 옛날에는 소주·맥주가 귀혔지. 막걸리가 만들기 쉽고 많으니까 막걸리를 많이 먹었지." 화정마을도 당산제 지내고 그랬나요? "옛날에는 불교를 많이 믿어서 다 했어. 정월대보름이 오면 과일을 사고, 술도 사고, 다 준비해서 그냥 제사를 지내는 데가 있어. 저그 마을 입구에 돌 있고 끄트머리에 또 있고. 두 곳에서 다 혔지. 화재맥이라고 혀. 이걸 안 하면 불이 난다나 어쩐다나. 어떻게 안 하겄어. 꼭 가서 제사도 지내고, 절도 하고 그랬는디." 진짜 불이 난다고요? "한 20년 전에 불이 났었어. 해마다 허다가 한 해 건너뛴 적이 있었는디 모르겄어. 진짜 불이 났더라고. 정월대보름에 맞춰서 말이여. 고거 참 신기하더라고. 근디 지금 보면 그것도 아닌가 벼. 안 한 지 오랜디 아무 일도 없잖어. 그냥 단속 잘하는 게 답이었나 싶어. 알아도 혔지. 혹시 모르니께, 옛날부터 했고." 또 정월대보름에 했던 게 있나요? "쥐불놀이도 있쟈. 막 내두르고 그랬지. 우리 애들 클 적에만 해도 했는디. 지금은 쥐불놀이도 안 혀? 동네에 애들이 없는디 어쩌겄어. 뭐 하는 사람이 있겠어? 옛날에는 불도 나고 그랬는디. 그냥 그렇게 놀고 그랬어. 그게 다 재미고, 추억이고, 풍습이었지. 근데 지금은 뭐 하간? 이제 힘들어서 못 혀. 아, 풍물놀이도 했어. 다들 풍물을 할 줄 알았거든. 저기 골목 끝까지 풍물도 치고 쭈욱 서서 같이 춤추고 그랬는디 다 옛날 이야기 돼 부렸지."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 기획
  • 박현우
  • 2025.02.15 07:31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33) 1894년 이후 중범죄의 처벌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정배안〉 〈중범공초〉에 실린 관료층과 민중에 대한 차별

〈정배안〉는 1895년 3월경에 작성한 것으로 1885년부터 유배된 자의 죄목과 유배지 등이 기록된 책이다. 원 제목은 〈도유배안(島流配案)〉(1책)이며, 내지에는 ‘정배안’이라고 했고, 대조선국 법부 형사국의 인신이 찍혀있다. 조선정부는 새로운 재판소 제도가 시행하기 이전에 중범죄 죄인의 경우 유배형에 처하도록 하였다. 첫머리에는 평안도 용천부에 유배된 백은수(白殷洙)에 대한 기록이지만, 이는 1885년 을유년의 백성 침학죄로 유배된 것이기 때문에 농민전쟁과는 관련이 없다. 3번째 기록된 경상도 금산군에 유배된 이용태(李容泰)로부터 관련 사항이 등장한다. 그는 1894년 4월 21일 승정원의 전언에 의해 유배형에 처한 것으로 “고부 안핵사로 전내(傳內)의 명을 받아 안핵(按覈)하라는 법의(法意)가 있었지만, 하등 긴급하지 않고 아무런 사계(查啓)도 하지 않고 오히려 소요를 일으켰으며 이미 분함과 잘못을 많이 저질렀”다고 사유를 설명하고 있다. 다음으로 경상도 거제부에 안치된 김문현(金文鉉)의 경우, 5월 14일부터 승정원의 명에 의해 위리안치(圍籬安置)하여 가극(加棘-귀양간 사람의 집 둘레에 가시나무를 둘러서 왕래를 하지 못하게 함)의 벌을 받았다. 그는 전라감사로 있으면서 농민봉기를 막지 못하고 도리어 전주성을 버리고 월경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가중 처분된 이유는 김문현이 직접적으로 전주성 함락의 책임을 지게 된 것이었지만, 그해 5월 20일에 이설(李偰)의 상소에 의하여, 전운사 조필영, 균전사 김창석, 전고부군수 조병갑, 안핵사 이용태, 전라감사 김문현, 영광군수 민영수 등 처벌이 가중되었다. 고부민의 원흉이었던 고부군수 조병갑에 대해서도 5월 17일 엄형 1차로 신장(訊杖) 30도 후에 원악도 안치의 죄를 처분하였다. 이어 조만승, 민영준, 민형식, 김세기, 조필영, 임치재, 이소영, 신학휴 등이 수많은 부패관료들이 그해 말까지 계속해서 처벌되었다. 전총제사 민응식과 전전 개성유수 김세기도 포함되었다. 또한 오석영(吳錫泳)의 사례도 눈에 띈다. 그는 전 성주목사로 성을 비워 비적들에게 넘겨준 죄로 갑오년 11월 10일에 귀양을 보내졌다. 정배안의 기록은 1895년 3월이후에도 추가되어 4월 20일 제주 등지에 유배를 떠난 종신죄인 서주보 등 9명에 대한 처분을 기록하였지만, 나머지 부분은 백지로 남아있다. 당시 유배형을 처벌하게 되는 사유를 설명하면서 고종은 반복적으로“이것은 내가 백성을 위하는 것이고 또한 세신(世臣)을 보전하려는 고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국왕의 태도는 관료들을 배려하고자 하는 차별적인 언사였다. 이들 부패무능 관료들의 유배형은 1895년 6월 27일 전격 중단되었다. 고종은 도형(徒刑)과 유형(流刑)의 죄인들인 민영준을 비롯하여 조병식, 민영주, 민형식, 김세기, 민병석, 이용태, 김문현, 이용직, 조필영, 조병갑, 민응식, 김창렬, 조만승. 임치재, 서정철, 심능필, 조준구, 민영순 등 19명외 260명을 방송(放送)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는 갑오개혁의 출범 1주년을 맞이하여 취한 대사면의 결과였다(〈고종실록〉 1895년 7월 3일 기사). 당시 사안을 한 걸음 들어가 보면, 내부대신서리 유길준이 ‘대소죄인 방석하는 사’라는 안건을 제의하였다. 1895년 4월 1일 이전(신식 재판소제도 시행)에 국사범 이하 정치상 관계 및 기타 유형(流刑)에 처한 자는 모두 석방하자는 안이었다. 이렇게 되면 농민전쟁과 관련되어 재판을 받거나 구속된 농민들도 석방조치에 포함될 수 있었다. 그러나 법부대신 서광범은 이에 반대하여 적용 예외대상을 절도, 강도, 통간, 편재 등 파렴치한 범죄자 이외에도 모반과 살인자를 포함시켰다. 법부는 주로 유배된 주요 관료들만에 한정하는 사면조치를 취했다(〈구한국관보〉 106호, 1895년 7월 5일, 1072∼1073쪽). 결과적으로 유배형 관료의 석방조치는 1894년 동학농민군이 죽음을 무릅쓰고 제기했던 조선국가의 정치 개혁과 부패 관료의 청산과제가 1년 만에 물거품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 자료는 〈중범공초(重犯供草)〉다. 이는 1895년(고종 32)부터 1899년(광무 3)까지 전국 각 지역에서 발생한 민요(民擾) 등에 가담한 중범(重犯) 죄인을 심문한 공초 자료이다. 모두 9책으로 되어 있다. 중범죄 사례는 대부분 민란 관련, 사주(私鑄)‚ 사굴인총(私掘人塚) 등의 죄와 관련된다. 동학농민혁명과 직접 관련된 기록은 제5~6책, 그리고 9책에 수록된 부분이다. 먼저 제5책은 황해도 지방의 동학 잔존 세력의 병란 모의와 관련된 기사이다. 장연군 신화방(薪花坊) 산포수를 조직하여 다시 봉기를 일으키고자 한 것이다. 주모자는 백락희(白樂喜)와 김재희(金在喜) 등이었다. 백락희는 당시 38세로서 1894년 7월 동도(東徒)에 들어가 교장 명색으로 활동하다가 1895년 봄에 귀화하였다가 그해 11월에 산포수 도반수인 김재희와 공모하게 된 것이었다. 이들은 1895년 12월 12일에 해주 김창수(金昌守) 가를 방문하여 김형진(金亨鎭)을 만나 모의하게 되었다. 김형진은 청국 심양에 가서 마대인(馬大人)을 만나서 심양자사 연왕 이대인(李大人)에게 ‘진동창의(鎭東倡義)’인신과 직첩을 받아 조만간 병사를 거느리고 출래할 것으로 알려주었다. 그리하여 자신은 평안, 전라, 황해 3도 통도총관이 되고, 백락희는 장연 선봉장이 되어 각군병을 이끌고 취회하여 먼저 군기를 탈취한 후 관장과 관속을 도륙해서 오면, 검단방 유학선, 안악 대덕방 최창조, 문화 차담동 명부지 이가(李哥) 등과 힘을 합쳐 해주부를 소탕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다음에는 황해도 제군을 소탕하면 청병이 올 것이니 이와 합세하여 도성을 도륙한 후에 정(鄭)씨로서 왕을 삼으면 대사를 다스릴 수 있다고 선동하였다. 봉기예정일은 1896년 1월 초 1일이었으나 사전 탄로가 났다. 그래서 붙잡힌 백락희를 비롯하여 전양근(24세), 백기정(38세), 김계조(41세), 김의순(30세), 백락규(31세) 등 6명 공초가 수록되어 있다. 6책에는 해주부 장연군수 염중모(廉仲模)의 보고서와, 앞서 수록된 공초가 중복되어 첨부되어 있다. 황해도 장연 일대의 봉기 모의는 이전 정감록을 차용하여 대규모 민란을 일으키려고 했던 1812년 홍경래란과 유사한 형태였다고 생각된다. 동학농민전쟁의 2차 봉기가 황해도 지역에서 실패한 이후 황해도 장연군 일원에서 동학의 잔당 인사들이 대규모로 반정부 봉기를 추가로 계획하고 있었던 정황을 알 수 있다. 제9책은 〈흥덕난민공초(興德亂民供草)〉라는 제목이 붙여진 자료로 1899년 1월 7일 장성군수 김성규(金星圭)가 흥덕군 민란을 조사하여 관찰사에게 보고한 기록이다. 1898년 12월 28일 새벽에 난민 수백 명이 흥덕 동헌에 난입하여 일으킨 사건을 수서기 박우종(朴佑鍾)이 조사하였다. 보고서에는 민란 두목 이화삼(李化三)과 수종 이이선, 이복환, 정계술, 박기수, 채기엽 등 6명을 전달 30일에 해군의 관속과 각촌민이 합세하여 순교청에 잡아들였고, 이어 31일에 난민이 해산되었다고 간단히 요약되어 있다. 봉기의 주모자는 이화삼이었다. 그는 당시 서울에서 진행되었던 만민공동회를 모방하여 민회(民會)를 개최하였다. 그는 “흥덕 원(군수)을 여기에 두고 재판하는 게 가(可)하냐, 월경을 시키고(군수를 내쫓고) 우리거지(행동거지) 공사(公事)하는게 가하냐”는 극단 질문을 해서 흥덕군민들을 선동하여 마침내 봉기를 일으켰다. 이 공초 내용은 주로 주모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지만, 이후 미흡한 사후 조처로 인하여 5월 4일 흥덕민란을 재차 일어나기도 했다. 1899년초 흥덕민란의 주모자들은 ‘갑오동학여당(甲午東學餘黨)’‘갑오누비(甲午漏匪)’라고 지칭되듯이, 1894년 동학농민봉기 이후 잔여세력들이었다. 이들은 서양 종교 영학(英學)을 이용하여 고창과 고부, 흥덕지역을 거점으로 고창, 고부 등지에서 세력을 확대하고 동학농민 재봉기를 잇고자 하였다. 이처럼 보국안민과 척왜양의 구현이 여전히 미완의 농민적 개혁이념이라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정배안과 더불어 중범공초는 모두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중범공초의 경우, 실록을 편찬하기 위해 별도로 정서한 필사본이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중범공초〉 9책 흥덕민란에 대한 정부 보고서. 서울대 규장각 제공 왕현종 연세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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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12 13:36

[전홍철 교수의 ‘영상과 함께 하는 실크로드 탐방’] (7)염견(焰肩) 도상의 세계적 전파, 태양신에서 종교 권위자로

교회, 성당, 불교 사찰, 삼성각(三聖閣) 그리고 이슬람 모스크에는 태양신의 흔적이 있다. 그 흔적은 어깨의 화염이다. 무슨 소리일까? 인류 초기부터 태양은 중요한 숭배 대상이었고, 메소포타미아의 샤마쉬(Shamash)는 그 대표적인 신이었다. 그런데 샤마쉬의 모습에는 매우 특이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신성한 존재의 어깨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는 '염견(焰肩)' 도상이다.(그림 1) 어깨에서 솟아나는 화염은 원래 신의 권위와 왕의 통치권을 상징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표현 방식은 문화권과 종교의 경계를 넘어 기독교, 불교, 무속 신앙, 이슬람 등 각 종교의 최고 권위자를 표현하는 보편적 상징으로 발전했다. △ 왕권과 신성: 고대 태양신 숭배의 발전 태양신 숭배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어 유라시아 대륙 전역으로 퍼져나간 중요한 문화 현상이다. 메소포타미아의 태양신 샤마쉬는 정의와 공정의 상징이었으며, 어깨에서 뻗어나오는 불꽃으로 그려졌다. 특히 함무라비 법전의 조각에서는 샤마쉬가 왕의 통치 권력을 인정하는 신으로 묘사되어 있다.(그림1) 태양신 숭배는 이란 고원에서 미트라교로 변화했다. 미트라교는 태양신의 능력을 화염과 빛으로 나타냈고, 이후 로마 제국에서도 특히 군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페르시아에서는 이런 전통이 조로아스터교의 아후라 마즈다 숭배로 이어졌다. 아후라 마즈다는 빛과 선을 상징하는 신으로, 날개 달린 원반과 화염으로 표현되어 왕의 통치력이 신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 성스러운 빛의 표현: 기독교와 이슬람의 염견 기독교 초기의 염견 도상은 그리스-로마의 태양신 아폴론과 헬리오스의 영향을 받았다. 4세기 바티칸 지하 무덤의 그리스도 모습은 태양신의 빛나는 형상과 섞여 있다. 이후 비잔틴 시대에는 이 표현이 만돌라(Mandorla)라는 형태로 바뀌면서, 어깨의 불꽃이 온몸을 둘러싸는 거룩한 빛이 되었고, 이것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상징이 되었다.(그림2) 이슬람 미술에서는 예언자 무하마드가 하늘로 올라가는 미라지 장면에 염견 도상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일칸국 시대의 역사책 필사본들은 무하마드의 어깨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 이는 페르시아의 왕권을 상징하는 전통과 이슬람의 예언자 사상이 하나로 어우러진 것이다.(그림3) △ 빛과 불의 신들: 인도-이란 문화의 연결고리 고대 인도와 이란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했는데, 특히 태양신 신앙에서 이런 공통점이 잘 드러난다. 힌두교의 수리야와 페르시아의 미트라는 모두 '빛나다'를 뜻하는 'swar'에서 비롯되었고, 두 신 모두 태양 수레를 타고 하늘을 달리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불을 다루는 신들의 경우도 비슷하다. 힌두교의 아그니는 제사를 주관하는 신으로, 브라만 사제들이 관리하는 성스러운 불꽃과 관련이 있다.(그림4) 이란의 아타르 역시 조로아스터교에서 마기 사제들이 모시는 거룩한 불로 여겨졌다. 이러한 신들의 모습은 쿠샨 왕조 시기에 이르러 더욱 복잡하게 섞였고, 간다라 지역에서는 힌두교와 페르시아의 전통이 불교 미술과 만나 새로운 예술 형식을 만들어냈다. (그림4) 힌두교 불의 신 아그니 △ 카니시카 왕의 시대: 문화 교류의 황금기 쿠샨 왕조는 월지라는 유목 민족이 세운 나라로, 박트리아에서 시작해 인도 북부까지 영토를 넓혔다. 이 지역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만나는 중요한 접점이었다. 특히 127년부터 150년까지 통치한 카니시카(Kanishka) 왕 시기에 문화 교류가 절정에 달했다. 카니시카 왕이 만든 동전에는 왕의 어깨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그림5) 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왕의 권위가 하늘로부터 왔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알리는 상징이었다. 카니시카 왕은 또한 불교를 적극 지원했는데, 이로 인해 간다라 지역의 불교 미술이 크게 발전했다. 특히 가필시(Kapisi)에서 발견된 불상들은 페르시아 미술의 전통과 불교가 만나 만들어진 독특한 불꽃 표현을 보여준다.(그림6) △ 불꽃에서 빛으로: 한국 불교 미술의 염견 수용 간다라에서 시작된 염견 도상은 실크로드를 따라 동아시아로 전파되었다. 중앙아시아의 오아시스 도시들을 거쳐 중국에 도착했고, 마침내 한국과 일본까지 퍼져나갔다. 키질(그림7), 호탄(그림8), 돈황(그림9), 운강, 병령사의 석굴 사원과 하북 석가장의 불상(그림10)에서 발견되는 어깨의 불꽃은 이 도상이 동아시아에서 부처의 깨달음을 표현하는 보편적인 상징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불교 미술에서도 이 전통이 이어져, 무주 안국사 칠성탱(그림11)과 미황사 괘불탱(그림12)에서는 팔에서 머리까지 오색 빛으로 표현되었다. 이처럼 염견 도상이 동아시아까지 전해지고 변화한 것은 고대 유라시아의 활발했던 문화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다. (그림8) 신강 호탄 부처상의 염견 (그림9) 막고굴 263굴 부처상의 염견 (그림10) 석가장 금동불좌상(300년경) (그림11) 무주 안국사 칠성탱 어깨 주위의 방광(放光) (그림12) 전남 미황사 괘불탱 전홍철 교수 (우석대 경영학부·예술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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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11 13:58

[청년 이장이 떴다] "나도 꼬부랑 간판 읽고 싶어"⋯할매들이 영어를 공부하게 된 사연

'청년 이장' 취재진들이 만든 화정마을 아지트가 문 연 지 하루도 안 돼 소란스럽습니다. 매서운 한파에 벌벌 떨면서도 할머니들이 아지트로 모여듭니다. 저기 멀리 학생처럼 가방을 들고 오는 오율례(76) 할머니도 보이네요. 할머니들이 아지트에 왜 모였냐고요? 오늘은 아지트에서 영어 수업이 열리는 날입니다. 지난 6일 오후 1시 30분에 열린 영어 수업은 그동안 할머니들에게 접수된 민원 중 하나였습니다. 몇 주 전 이칠월(90) 할머니는 슬쩍 다가와 "청년 이장, 영어 좀 아는가? 장에 나가믄 간판을 못 읽겄당게"라고 말했습니다. 며칠 전 일본 여행을 다녀온 율례 할머니도 "화장실이 일본어·영어로 쓰여 있는데 뭐라고 써 있는지 몰라 못 갔다"며 멋쩍게 웃어 보였습니다. 화정마을에서 가장 젊은 사람도 환갑이 넘었다 보니 대부분 영어보다는 한자에 익숙한 세대뿐입니다. 한자는 막힘없이 턱턱 읽을 수 있지만 꼬부랑 글씨 같은 영어는 언제 봐도 큰 산처럼 어려워만 보입니다. 읍내에 나가도 간판마다 영어가 잔뜩 적혀 있는 터라 못 들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것이 청년 이장으로서 영어를 알려 드려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입니다. 화정마을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불편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 의뢰해달라고 말한 청년 이장들이 말을 지킬 때가 왔습니다. 대망의 첫 수업 날, 수능을 앞둔 고3 교실을 방불케 했습니다. 오랜만에 연필을 잡고 딱딱한 의자에 앉았지만 불편한 내색 없이 영어 수업에 집중했습니다. 눈이 침침해 선도 잘 안 보이지만 영어 노트 위에 알파벳을 쓰고 지우고를 반복합니다. 처음 써 보는 영어 노트에 대문자, 소문자 할 것 없이 다 한 줄에 쓰기도 합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갑자기 칠월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십니다. "할머니, 왜 그러셔요. 뭐 불편하셔?"라고 묻자 "눈이 침침혀! 안 보여! 나 집만 빨리 갔다 올게"라고 대답하십니다. 돋보기 안경이 없어 집중하기 어렵다는 할머니입니다. 1시간이 넘도록 알파벳을 쓰면서 굳어버린 손이 아파 바르르 떨더라도 내색조차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집에서 복습하겠다며 다 걷어온 영어 노트와 연필·지우개를 찾으십니다. 할머니들의 얼굴에는 열일곱 소녀처럼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아이고, 진짜 고맙습니다. 선생님, 나 정말 영어 배우고 싶었는디 너무 고마워." 오늘 영어 수업은 아주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진은 쏙 빠졌지만 할머니들을 위해서 우리는 매주 수요일 오후 1시부터 1시간 영어 수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농번기가 오면 이마저도 어려워질 테니 조금씩 속도를 내 보려고 합니다. 화정마을 영어 수업은 다른 수업과 달리 목표가 크지 않습니다. 1등을 만드는 것도, 유창한 영어 회화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순히 ABC 수준이어도 좋습니다. 그냥 읍내에서 열리는 시장에 가셔서, 자식·손주와 해외에 나가서 영어 간판을 읽지 못해 헤매는 일이 없는 날이 오기를 그려 봅니다. 디지털뉴스부=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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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08 10:07

[청년 이장이 떴다] 온종일 뚝딱뚝딱⋯옛 마을회관 아름다운 변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신(神)만 할 수 있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청년 이장이 해냈습니다. 가구라고는 싱크대뿐이었던 냉기 가득한 화정마을 옛 마을회관은 아늑한 아지트로 바뀌었습니다. 장판 깔기부터 방 꾸미기까지 해 본 우당탕탕 이야기보따리 한 번 풀어보겠습니다. 참고로 청년 이장들은 창문에 단열 에어캡 '뽁뽁이'도 안 붙여봤습니다.(우당탕탕 덤앤더머 같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완주 고산면사무소의 지원을 받아 지업사에서 가지고 온 장판 매트를 옮기는 것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청년 이장의 자동차는 모닝인데 300x400, 400x500 크기 매트를 구겨 넣으려니 곧 차가 터질 것 같았습니다. 겨우 옮기긴 했는데 직접 깔아야 한다니 정말 한숨부터 나왔습니다. 일단 돌돌 돌려 깔고 보니 제법 그럴싸해 보입니다. 혹여나 냉기가 올라올까 걱정돼 매트 테두리 전체에 테이프도 붙였습니다. 마음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청년 이장 둘이서는 할 수 없다는 판단에 같은 디지털미디어국 영상제작부 기자들의 도움까지 받았습니다. 한 명은 장판을 붙이고, 한 명은 테이프를 자르고, 또 한 명은 테이프를 연결하고. 나름대로 분업 끝에 한 시간에 걸쳐 장판 깔기를 마쳤습니다. 잠시도 엉덩이를 붙일 틈이 없었습니다. 아직 장판만 깔았을 뿐 갈 길이 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장판 위 청소하기, 책상·의자 설치, 테이블보 깔기, 행거·수납장 조립하기, 단열 에어캡 붙이기. 그래도 천천히 하나씩 해 나갔습니다. 줄어들지 않을 것 같았던 할 일도 어느새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날이 너무 추워 냉기가 들어올까 봐 단열 에어캡 뽁뽁이를 붙이기로 했습니다. 청년 이장 두 명과 영상제작부 기자들까지 세 명은 처음 붙여 보는 뽁뽁이에 머리를 맞대고 설명서를 읽었습니다. 일단 분무기가 필요한 듯합니다. 문제는 분무기가 없습니다. 일단 고민도 없이 경로당으로 향했습니다. 오늘도 할머니들은 모여서 왁자지껄 이야기 꽃을 피우고 계시네요. 분무기가 있냐고 물어보자 분무기는 없고 떡과 배만 있다고 합니다. 분명 분무기 빌리러 간 건데 제 손에는 떡과 배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 집에 분무기 있당게! 같이 가자고"라는 할머니의 말에 곧바로 할머니 댁으로 향했습니다. 여기서도 먹을 것을 얻었습니다. 직접 만드신 단호박 식혜입니다. 아지트에 있던 두 명은 바리바리 싸 온 청년 이장에게 "뭐야? 뭘 그렇게 많이 가지고 와?"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저도 모르겠어요. 정을 가득 안고 돌아왔습니다. 어르신들의 정에 힘입어 다시 속도를 냈습니다. 그렇게 안 끝날 것 같던 아지트 꾸미기도 다 정리됐습니다. 이곳은 마을주민들이 와서 커피도 마시고 공부도 하고 시골에서 하기 어려웠던 것들을 하나씩 해 나가는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입니다.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책상·의자를 들이고, 행거를 들이고, 곳곳에 아기자기한 소품도 놓으니 뭔가 집 같습니다. 제법 모습을 갖춘 아지트는 이미 마을주민들의 마음을 쏙 빼앗은 듯합니다. 아지트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실 때는 '내일 또 여기 와야지!'라는 마음을 가지고 가시길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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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08 10:06

[청년 이장이 떴다] "아따, 잘 꾸몄네"⋯10년 만에 마을회관 본 주민들 반응은?

화정마을에 새 경로당이 생긴 지 벌써 10년, 마을주민과 동고동락했던 옛 마을회관이 문 닫은 지도 10년이 됐다는 말입니다. 건물을 허물지 않았지만 귀농·귀촌인 등이 잠시 머무는 거처가 되면서 마을주민도 옛 마을회관에 들어가는 게 조심스러워졌습니다. 평생 못 들어갈 줄 알았던 옛 마을회관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경로당 가던 할머니들도, 게이트볼 치러 나가려던 할아버지들도 마을회관이 아지트가 됐다는 소식에 구다보고('들여다보다'의 전라도 사투리) 가십니다. "나 진짜 10년 만에 들와보네. 그때 생각 나, 성님도 글치?" 놀랍게도 불과 일주일 전 옛 마을회관을 청소하던 '청년 이장' 취재진들에게 "여긴 못 써, 추워!"라고 말하던 마을주민들의 반응입니다. 지나가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할머니·할아버지들도, 경로당에서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묻던 이장님도 인정(?)하는 아지트가 됐습니다. "아니, 이렇게 아늑혔다고? 아따, 잘 꾸몄다!"부터 "진짜 옛날 생각 난다잉"까지. 반응도 제각각이지만 다 긍정의 표현을 하십니다. 내심 '너무 춥지 않을까? 이거 사람들이 오긴 할까?' 걱정하던 청년 이장들도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때 '삐그덕' 나무 문이 열리고 문틈 사이로 이경구 노인회장이 고개를 내미십니다. 평소 무뚝뚝하시던 회장님은 "벌써 문 연 겨? 깨끗하게 잘해 놨네잉"라는 말씀만 남기고 바로 게이트볼을 치러 가셨습니다. 그래도 성공입니다. 이제 이곳에서는 좋은 일들만 일어날 것입니다. 평소에는 삼삼오오 둘러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어느 날은 청년 이장과 공부를 하기도 하겠죠. 매일 모여 화투만 치던 할머니들도, 게이트볼 치러 다니던 할아버지들도, 집에만 있던 어르신들도 함께할 수 있는 날이 올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만든 아지트가 조용한 시골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안고 이번 주도 화정마을로 출근해 보겠습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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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08 10:06

[작지만 강한 우리마을]②365일 강정처럼 단단하게…남원 웅치마을, 기적을 만들다

"이제는 마을 주민 누구나 자부심을 가지고 살 수 있게 됐습니다. 가난했던 곰재마을은 잊어주세요” 최미아 웅치마을영농회 대표는 과거의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 새롭게 태어난 웅치마을의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남원시 주천면에 위치한 웅치마을은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도 강정 사업을 중심으로 지역 경제를 일으키고, 공동체의 자립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뤄내며 주목받고 있다. 웅치마을은 지역 주민들이 직접 농사지은 옥수수와 들깨를 전량 수매해 어르신들이 시장까지 가지 않고도 마을 내 공장에서 즉시 수매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공장에서 작업에 참여하는 주민들에게는 시간당 1만 원의 인건비가 지급돼 추가 소득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웅치마을 주민들은 고령화와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소득 기반을 확보하게 됐다. 단순한 농산물 재배에서 벗어나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다양한 강정을 가공·판매하며 경제적 자립 기반을 구축한 셈이다. 나아가 농촌 체험 프로그램과 관광을 연계해 마을을 찾는 방문객이 증가하면서 지방소멸 위기 극복의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최 대표는 “처음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지금은 주민들이 농사만 지어도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며 “마을 전체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가난하고 외면받던 곰재마을에서 새롭게 태어난 웅치마을 웅치마을은 원래 ‘곰재마을’로 불렸다. 그러나 1995년 지방행정 개편으로 ‘웅치마을’로 이름이 바뀌었다. 곰재마을이라는 이름은 남원 지역에서 가난하고 발전이 더딘 곳으로 여겨져 주민들에게조차 부끄러운 과거의 상징이었다. 최 대표는 “예전에는 곰재마을 사람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거나 불편한 시선을 받곤 했다”며 “마을 이름이 바뀌고 강정 사업을 시작하면서 주민들의 인식도 크게 변했다”고 회상했다. 웅치마을의 변화는 단순한 명칭변경에서 끝나지 않았다. 주민들은 마을을 새롭게 가꾸기 위해 매년 꽃을 심고 가꾸며 ‘꽃이 있는 웅치마을’을 만들어갔다. 특히 2018년 5월 본격적으로 시작한 강정 사업은 웅치마을을 ‘못사는 곰재마을’에서 ‘잘 사는 웅치마을’로 탈바꿈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경제적 어려움 속 인내와 도전의 3년 웅치마을은 지리산 자락 초입에 위치해 자연의 풍부한 혜택을 받고 있다. 이곳의 주민들은 쌀과 옥수수, 쥐눈이콩, 땅콩, 들깨 등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활용해 방부제 없이 전통 방식으로 조청을 만들어 강정을 생산한다. 주요 제품으로는 곰재강정, 곰재옥수수강정, 들깨땅콩강정, 찰옥수수 뻥튀기 등이 있다. 이 강정들은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영양 간식으로 입소문을 타며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웅치마을의 강정은 건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먹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주민들의 자부심이 되고 있다. 최 씨는 “우리 손으로 키우고 만든 강정이 마을의 상징이 됐다”며 “그저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정성과 역사를 함께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웅치마을 강정 사업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웅치마을의 강정 사업은 2016년 남원시 환경 취약지구 개선사업에서 12억6000만 원의 보조금을 지원받아 시작됐다. 웅치마을영농회라는 마을기업을 설립하고 마을회관 옥상에서 소규모로 출발했지만, 초기 3년은 경제적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마을 주민 대다수가 고령층이었고, 여성들이 농사와 공장 작업을 병행해야 하는 환경 탓에 인건비 부담이 컸다. 최악의 경우 최 대표와 마을 이장은 무급으로 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또한 마을기업의 수익 분배 구조도 문제였다. 판매 금액의 10%를 주민들에게 돌려주는 방식은 마을 신뢰를 얻는 데 효과적이었지만, 마진이 적어 자립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최 대표와 주민들은 포기하지 않고 강정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고 전통 방식으로 조청을 직접 달여내는 노력을 이어갔다. 동시에 홍보와 유통망 다변화에도 주력했다. 그 결과 웅치마을의 강정은 전국 농협 로컬푸드 매장과 우체국, 온라인 쇼핑몰 등에 입점해 판매되기 시작했고, 연매출 2억 원을 기록하는 건실한 마을기업으로 성장했다. 강정뿐만 아니라 조청 해석 공장과 체험장을 조성해 연간 2000여 명의 방문객을 유치하며 농촌 관광지로도 자리 잡았다. 강정 만들기 체험은 가족 단위 방문객과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며 마을의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공동체로 가는 길, 마을 주민이 직접 그리다 웅치마을은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마을 경관 개선과 공동체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주민들은 2016년부터 새뜰마을 가꾸기 사업을 통해 환경 정비에 나섰고, 그 일환으로 무궁화 800그루를 심어 마을 곳곳에 꽃동산을 조성했다. 무궁화꽃은 단순한 경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매년 피어나는 무궁화는 주민들의 땀과 노력을 상징하며, 마을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웅치마을은 ‘365일 태극기 휘날리는 마을’로도 유명하다. 주민들은 국경일뿐 아니라 매일 태극기를 게양하며 애국심과 공동체 의식을 강조한다. 이러한 활동은 여러 차례 방송과 언론에 소개되면서 마을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마을은 어르신들을 위한 문화·여가 프로그램도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트로트 장구, 농악단 활동을 통해 주민들은 함께 어울리며 세대 간 유대감을 쌓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주민 간 소통을 활성화하고, 마을 내 고립감을 해소하는 데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웅치마을의 성공은 단순히 경제적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공동체를 일구어낸 결과다. 지방소멸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웅치마을은 농촌 재생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희망의 마을로 자리 잡고 있다. 웅치마을은 강정 이외에도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곡물바, 전통 디저트 등의 신제품 개발을 검토 중이며 도시 소비자들과의 접점을 넓혀가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또 마을 내 젊은 층의 유입을 유도하고 세대 간 협력을 통해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강화할 계획이다. 최 대표는 “마을의 발전은 결국 사람에서 시작된다”며 “우리가 힘들게 만들어온 성과를 다음 세대와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 기획
  • 이준서
  • 2025.02.06 17:27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32) 경상도 상주와 김산소모영의 동학농민군 진압 자료인 〈소모사실〉

〈소모사실(召募事實)〉이라는 동일한 이름을 붙인 사료가 1895년에 경상도 상주와 김산 두 지역의 소모영에서 나왔다. 상주의 〈소모사실〉은 상주 소모사 정의묵(鄭宜默, 1847~1906)이 상주소모영을 설치해서 동학농민군을 진압한 기간에 주고받은 공문서를 모은 건곤(乾坤) 두 권의 자료이고, 김산의 〈소모사실〉은 김산 소모사 조시영(曺始永, 1843~1912)이 김산소모영을 설치하고 동학농민군 진압을 지휘한 기간에 주고받은 공문서를 모은 단권 자료이다. △소모사 선임 과정 소모사는 왕조정부가 외적이 침입하거나 병란이 일어나서 위기에 처했을 때 민간에서 사람들과 재물을 모아 대처하도록 군권을 부여한 임시 관직이다. 조선후기에 들어와서 몇 차례 소모사를 임명한 사례가 있었다. 먼저 영조대에 이인좌의 난을 진압할 때 민간 자원을 동원하기 위해 소모사를 임명하였다.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순조대에 서북지역에서 일어난 홍경래 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소모사를 임명하였다. 가장 많은 소모사가 임명된 것은 1866년 병인양요 때였다. 불과 28년이 지난 1894년 9월에 다시 소모사를 임명한 것은 왕조정부가 삼남을 중심으로 거의 전국에 걸쳐 대규모로 봉기한 동학농민군을 자체 무력만으로 진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9월 22일 임시 군사지휘부인 양호도순무영을 설치해서 경군을 파견하도록 하였다. 그 직후 경기도의 전감역 맹영재를 소모관에 임명하였고, 경상 감영의 남영병을 이끌던 대구판관 지석영은 토포사에 임명하였다. 호남의 장성부사 이병훈은 소모사를 겸하도록 했고, 금산유학 정두섭도 소모관에 임명하였다. 9월 29일에는 삼남 요지에 각각 2명씩 현직 지방관을 선정하여 소모사에 임명하였다. 영남소모사에는 창원부사 이종서와 함께 상주의 향리에 있던 전 승지 정의묵을 선임하였다. 상주 목사는 9월 22일에 상주 읍성이 동학농민군에게 점거될 때 도피해서 공관 상태였다. 영남 북서부 일대는 8월 말부터 격동하고 있었다. 예천에서 동학농민군과 읍내 민보군이 격돌하여 공방전을 벌였고, 9월 18일 동학 교단의 기포령 직후 상주와 선산 읍성을 동학농민군이 점거하였다. 그러자 상주 낙동과 태봉, 선산 해평에 설치된 일본군 병참부의 주둔병이 기습해서 읍성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상주소모사 정의묵은 상주성에서 물러난 동학농민군 지도자를 집중 추적해서 경내를 안정시켰다. 김산소모사 조시영이 임명된 날은 11월 21일로 일본군과 남영병이 동학농민군을 평정해서 경상도 지역에서 봉기 상황이 종료된 시기였다. 바로 그때 충청도에서 우금치전투를 치른 손병희 통령의 북접농민군이 전라도를 거쳐 김산 인근까지 북상해왔다. 김산과 상주소모영이 최대 위기에 처한 것이었다. 두 편의 〈소모사실〉에 실린 마지막 문서들은 그 내용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소모사실〉의 공문서와 소모영의 관할 군현 상주의 〈소모사실〉 건은 10월 16일부터 12월 11일까지 주고받은 92건의 공문서를 모은 것이고, 〈소모사실〉 곤은 12월 12일부터 다음해인 1895년 정월 25일까지의 130건을 모은 것이다. 김산의 〈소모사실〉은 11월 21일부터 1895년 정월 22일까지 주고받은 138건의 공문서를 모은 것이다. 김산소모영에서 공문서를 주고받은 날은 모두 56일이고, 상주소모영은 모두 69일이다. 상주소모사의 임명 날짜인 9월 29일보다 17일이나 늦게 공문서 편집이 시작된 것은 임명장이 뒤늦게 왔기 때문이다. 경상도의 동학농민군 진압을 위한 군권 부여자는 더 임명되었다. 창원부사 이종서, 그리고 거창부사 정관섭도 소모사가 되었고, 대구판관 지석영과 인동부사 조응현은 토포사가 되었다. 따라서 책임 소재를 위해 관할지역을 정할 필요가 있었다. 상주소모사 정의묵은 경상감사 조병호를 만나서 이를 제의하였고, 이에 따라 경상감사는 60개 군현을 나누어 상주소모사 정의묵은 북부 15개 읍, 대구토포사 지석영은 대구에 인접한 12개 읍, 인동토포사 조응현은 중부의 9개 읍, 거창소모사 정관섭은 지리산에 인접한 12개 읍, 창원부사 이종서는 남부의 12개 읍을 분장하도록 했다. 상주소모사는 상주 함창 문경 의성 용궁 예천 예안 안동 풍기 봉화 순흥 영천 청송 진보 영양을 관장하였다. 이런 조치 직후 다시 조시영이 김산소모사에 임명되자 인동토포사가 관할하던 9개 읍인 인동 칠곡 선산 개령 김산 군위 의흥 비안 성주 고령과 의흥을 관장하게 하였다. 1894년에 전국에 임명된 소모사 소모관 토포사 조방관 등이 많았지만 현재 전해지는 공문서집은 오로지 상주와 김산소모영에서 편찬한 것뿐이다. 상설이 아닌 임시로 운영된 기관은 관련 문서를 남겨둘 필요가 있었다. 활동 실적을 알리면서 운영 경비를 적절하게 사용했다고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주소모영의 기록은 처음부터 철저히 편집해서 상주 〈소모사실〉의 내용은 매우 중요하다. 양호도순무영 등에 보고한 문서를 남김없이 수록하여 〈갑오군정실기〉나 〈고종실록〉 등에 들어가지 않은 여러 사건을 보여주고 있다. 김산소모사 조시영은 먼저 소모영을 운영한 상주의 선례를 직접 알아본 다음에 김산소모영을 설치하였다. 공문서를 보관해서 책자로 만드는 내용도 직접 들었을 수도 있다. △〈소모사실〉의 주요 내용 상주 〈소모사실〉에 전재한 공문서를 왕래한 대상에 따라 모아보면, 다음 표와 같이, 상주목과 각 면리에 보낸 공문이 91회로 가장 많다. 상위 기관인 의정부와 순무영 그리고 군무아문과 주고받은 공문은 14회이고, 경상감영과는 36회를 왕래하였다. 이 자료에 전재된 소모영막하파임기(召募營幕下爬任記)와 소모절목, 그리고 군문규획(軍門規劃) 등은 소모영의 편제와 운영 방침에 관해 자세히 알 수 있다. 김산 소모영의 편제와 운영 등을 전하는 상세한 기록은 없다. 그런 까닭에 이 내용으로 추정해야 한다. 김산 〈소모사실〉에 전재한 공문서의 왕래 대상은 상주와 다르다. 북접농민군이 김산으로 행군해올 것에 대비해서 추풍령을 방어하던 군관과 병정에게 보낸 공문이 눈에 띈다. 김산소모영 활동 기간에서 가장 황급하게 보낸 시기가 북접농민군 대군이 경상도로 들어올 것을 우려하던 때이다. 공문의 표현을 보면 그 실상을 짐작하게 한다. “전라도 무주의 적당 수만 명이 둔취하여 이미 황간읍의 성을 함락시키고 여러 날 청산현 지역에 진을 치고 있다가 장차 괘방령과 추풍령의 두 재 사이로 향하려 하는데, 그들 명성과 위세가 워낙 거세므로 비단 누차에 걸쳐 해당 읍에서 구원을 청할 뿐이 아니고 이 적당이 만일 재를 넘는다면 재 밖의 모든 군현은 어떤 지경에 이를지 모릅니다.” 김산소모사 조시영과 상주소모사 정의묵이 공문을 통해 다른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는 내용이 흥미롭다. 북접농민군을 막기 위해 추풍령에 경상도 각 군현의 민보군을 집결시켜야 한다고 김산소모사 조시영은 주장을 했고, 상주소모사 정의묵은 상주성이 가장 위험하니 보은에서 상주로 오는 길목을 집중해서 지켜야 한다고 했다. 결국 합의를 하지 못하고 각 소모사가 관할하는 군현의 민보군을 불러들이게 되었다. 상주에는 안동 민보군 370명, 예천 민보군 516명, 용궁 민보군 21명, 함창 민보군 20명, 대구 남영병 50명이 집결하였다. 외지에서 온 관군과 민보군이 모두 977명이었다. 여기에 상주 민보군을 합하면 그 수는 적지 않았다. 김산에서 추풍령을 막던 병력은 규모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는데, 대구 남영병 150여 명과 선산포군 150명, 개령포군 95명, 인동포군 100명, 성주포군 10명 등 500여 명으로 나온다. 북접농민군이 보은으로 행군하자 추풍령 방어군은 이들을 뒤따라서 보은까지 들어갔다. 김산소모사 조시영이 경영(京營)에 보낸 공문에는 김산의 실상이 잘 드러난다. 김산은 교통의 요지로 보은과 영동, 무주와 진안 등과 쉽게 연결된다. 동학 교단의 영동포 등의 조직이 김산에 이어지고, 무주와 금산 등과 오가면서 김개남 장군과도 연계된 기록이 나온다. 김산 〈소모사실〉에 그러한 내용이 같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보은의 동학과 연결해서 활동하던 김화준과 김순필은 동학교주 최시형의 혈당이라고 하였다.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는 증언이다. 보은을 거점으로 충청도와 경상도에 조직이 있는 충경포가 활동했는데 김산 일대에서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김산 동학농민군의 거두가 4인인데 그중 5 ~ 6만명을 거느린 남홍언과 편사흠은 “전라도 한 도는 거의 다 성을 함락하였고, 충청도와 경상도 두 도는 장차 도륙(屠戮)할 것이니, 통일하는 계획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쉽다.”라고 전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남원에 주재하고 개남왕을 칭하던 김개남 처소에 가서 신하라 일컫고 이런 뜻을 담은 소초(疏草)를 올렸는데 그 글을 그들의 집에서 찾아냈다고 하였다. 전봉준 장군과 관련된 내용도 나온다. 무주에서 활동하던 전천순과 김원창을 체포했는데 이들은 ‘전봉준의 폐부(肺腑) 역할을 하는 괴수로, 영남에 출몰하면서 기포를 독려’했다고 하였다. 상주 〈소모사실〉은 개인 소장이고, 김산 〈소모사실〉은 동학농민혁명 기념재단에서 소장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는 공공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김산 〈소모사실〉이 등재되었다. 신영우 동학농민혁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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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5.02.05 17:12

[청년 이장이 떴다] 시골 마을에 아지트?⋯손님 맞이 준비 '착착'

화정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빈집이 시끌벅적합니다. 굳게 닫혀 있던 문은 활짝 열려 있고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마을 가득 퍼집니다. 빈집 주변에 사는 마을 주민들은 인기척에 슬리퍼만 신고 나와 빈집 창문 밖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요리조리 살핍니다. "아따! 누가 이렇게 시끄럽게 하나 했더니 우리 청년 이장님들이었어?" 맞습니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 아지트를 만드는 사람들, 바로 '청년 이장' 저희들입니다. 어떻게 저희가 아지트를 만들게 됐냐고요? 한 달여 전으로 돌아가 봅니다. 본격적인 <청년 이장이 떴다> 기획 취재에 앞서 화정마을을 답사하던 중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장님의 도움을 받아 문을 열어보니 냉기가 돌았습니다. 보일러도 안 되고 낡은 곳도 많지만 쓰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어 보였습니다. 사실 이곳은 옛 마을회관입니다. 바로 옆 경로당이 생기면서 마을회관 대신 귀농·귀촌인 등이 잠시 머무는 거처 역할을 해 왔습니다. 지난해 말까지도 사람이 살았지만 다시 빈집이 됐습니다. 이장님 말에 '청년 이장' 취재진은 귀가 솔깃했습니다. 고민 끝에 이곳에 아지트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저희의 집(?), 마을 아지트가 생겼습니다. 지역 소멸을 겪는 시골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우리의 색깔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아직 아지트는 가구도 없고 휑한 공간입니다. 일단 이곳저곳 있었던 거미줄을 치우고 먼지 가득 쌓인 창틀을 닦으니 금새 사람 사는 집이 됐습니다. 이번주부터는 쓸 수 있도록 인테리어 등에 속도를 내면서 손님 맞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감사히도 고산면사무소는 책상·의자를, 이웃 마을인 용진읍에 사는 주민은 블라인드를 지원해 주기로 했습니다. 당분간 화정마을에는 "버스가 없어서", "다리가 아파서"라는 말은 없습니다. 읍내에 나가기 어려웠던 마을 주민들은 그동안 매일 경로당에 모여 화투 치고 이야기 나누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수십 년 잡고 있었던 화투 패는 잠시 내려놓고 이제는 붓·펜·아령을 드는 날이 올 것입니다. 첫 날 말했듯 청년 이장이 온 이상 안 되는 것은 없습니다. 농번기가 오면 오전에는 같이 작업복 입은 채소 밭을 매고 오후에는 이곳에 모여 새로운 추억을 쌓게 되겠지요. 쉽지 않겠지만 평소 경로당에 나오지 않던 마을 주민부터 경로당 할머니들·게이트볼 할아버지들과 차 한 잔 마시고 여러 프로그램도 하는 '따뜻한 아지트'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앞으로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 기획
  • 박현우
  • 2025.02.01 11:34

[청년 이장이 떴다] "잘 부탁드려요"⋯정성 가득 담은 한 그릇 맛있게 ‘후루룩’

오늘은 22일, 완주군 민생안정 지원금을 나눠 주는 날입니다. 오전 10시부터 지원금을 배부한다는 말에 일찌감치 마을 사람들이 경로당에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날 '청년 이장이 떴다' 취재진들은 다른 때보다 경로당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 점을 고려해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을 대접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화정마을 정기총회 때 지원금 배부가 점심 때쯤 끝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죠. 음식을 뽐낼 솜씨는 아니지만 맛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믿음 하나로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일단 '일회용품 없는 전북' 만들기에 동참하기 위해 전북특별자치도 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 전화해 다회용기부터 대여했습니다.(나름 꼼꼼히 준비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쉬웠지만 장보기부터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애호박, 당근, 양파 등 구입할 것은 모두 정했는데 50인분은 처음이라 재료를 얼마나 사야 할지 감이 안 잡혔습니다. 애호박을 들었다 놨다, 당근을 들었다 놨다, 양파를 들었다 놨다. 몇 번을 반복하고는 한 보따리 장을 보고 재료 손질부터 했습니다. 정말 많았습니다. 해도 해도 줄지 않는 재료들. 지금도 생각날 정도로 많더군요. 문제는 장보기도, 재료 손질도 아니었습니다. 끓이기만 하면 되는데 어마어마한 양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엄두가 안 났습니다. 일단 경로당에 있는 큰 냄비란 큰 냄비는 다 꺼냈습니다. 육수부터 내고 재료를 넣고 팔팔 끓기를 기다렸습니다. 아직 끝이 아닙니다. 소면을 삶아야 합니다. 마을 어르신들은 저희를 보고 불안해하셨습니다. 그냥 지켜보시는가 했더니 참지 못하고 한 마디씩 던졌습니다. "우리 청년 이장님들을 보고만 있자니 불안한디?"부터 "50인분은 쉽지 않을 텐데", "경로당은 좁으니께 다 가지고 나와. 우리가 소면을 삶을게"까지. "보기만 하셔요. 저희가 다 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지만 그 누구도 저희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도움을 받았습니다.(정말 저희끼리는 할 수 없는 일이더군요.) 마음은 급해도 처음 해 보는 일이라 속도를 낼 수 없었던 취재진들과 달리 속전속결로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말 안 하고도 어르신들은 소면 씻기, 1인분씩 덜기, 그릇에 담기, 경로당으로 옮기기 등 각자 자리를 잡고 속도를 냈습니다. 어르신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녁을 대접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차저차 국수를 완성했습니다. 부족하지만 일단 국수의 모습은 갖춰야 할 듯해 처음 만들어 본 달걀 지단까지 올렸습니다. 평소 취재진들을 묵묵히 지켜 보시던 아버지·할아버지들도 고맙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오늘 하루 힘듦을 다 잊게 만드는 한 마디입니다. 저희를 흔쾌히 청년 이장으로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국수 대접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저희 사무실이자 화정마을 사랑방이 될 구 마을회관을 둘러봤습니다. 아참, 저희에게 드디어 집(?)이 생겼습니다. 아직은 거미줄도 많고 곳곳에 흠집도 있고 고칠 게 산더미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습니다. 진짜 화정마을 주민이 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 집은 다음 편에서 소개하겠습니다. 많이 놀러 와 주세요!

  • 기획
  • 박현우
  • 2025.01.28 14:29

[청년 이장이 떴다] 함께 노래 부르고 음식 나눠먹고 ⋯ '팔순잔치' 동네가 들썩

청년 이장 4일 차인 1월 21일 동네 한 바퀴 돌기로 했습니다. 지난번 이사떡 돌리기 이후로 처음 둘러보는 마을입니다. 도시는 오전 10시면 시끌벅적하지만 화정마을은 꿈쩍도 않습니다. 날이 추워서인지 어르신들도 나오지 않고 골목길이 고요합니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돌아가던 찰나에 경로당 앞 집에 소리가 나서 인사를 드리려다 젊은 여성 두 명과 마주쳤습니다. 청년 이장을 하면서 진짜 청년을 마주한 것은 처음입니다. "어이구, 그대들 왔는가. 나는 저 사람들이 자네들인 줄 알고 여즉 이야기 듣고 있었네!" 집 주인인 조재신(89) 할머니가 나오셨습니다. 시골 마을인 화정마을에는 간간이 포교를 위해 젊은이들이 찾는다고 합니다. 대부분 사이비 종교에서 찾아오는 터라 곤란할 때가 많다는 게 할머니의 말씀입니다. 그래도 할머니가 젊은이들에게 커피를 내주는 이유는 좌우명 때문입니다. '사람이 많으면 약이 된다.' 이것이 할머니의 좌우명입니다. 오는 사람은 막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할머니는 다 같은 사람이니 집에 오면 커피라도 주는 게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시골마을 집까지 찾아와서 포교를 하는 것을 처음 접해본 청년 이장들은 적잖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지나가다 저희에게도 인사를 건넸거든요. 아무튼 할머니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동네 할머니 집에서 커피를 마셔보는 일은 처음입니다. 진짜 이장이 된 듯했습니다. 할머니가 내 주신 맥심 커피는 달콤했습니다. 한 잔은 뜨거운 물에, 한 잔은 차가운 물에 타 오셔서 커피도 안 녹았지만 그래도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지금도 작은 소망이 있다면 그림은 또 배우고 싶네. 참 재미있었거든. 내가 언제 이런 걸 해 보겄어." 할머니와 '청년 이장' 취재진 2명은 뜨거운 장판 위에 앉아 이불을 덮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할머니는 취미 부자입니다. 30여 년 전부터 써 온 일기는 수십 권의 역사 책이 됐고 방 한 칸에는 취미로 그린 유화 그림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쉽게 우울해진다고 생각한 할머니는 뭐라도 해 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이전에 화정마을로 찾아온 강사로부터 그림을 배우긴 했지만 혼자서 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지팡이 없이는 걷기 힘든 할머니는 그림을 배우러 나가기도, 그림 그리는 용품을 사기도 어렵습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취미를 갖는 것도, 유지하기도 힘들다는 것입니다. 청년 이장들은 할머니의 소망을 수첩에 적었습니다. 언젠가는 이뤄 드리는 날이 오겠지요. 어김없이 오후 2시가 되니 또 경로당이 북적이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최은주(80) 할머니의 팔순 잔치가 있는 날입니다. 떡, 통닭, 귤 등 음식을 잔뜩 준비해 오셨습니다. 취재진들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할머니는 방마다 돌아다니며 팍팍 먹으라며 성화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과 생일 파티를 해 보는 것도 오랜만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데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같아 이장님께 여쭤봤습니다. "우리는 원래 이래요. 생일이면 다 같이 모여서 맛있는 것 먹어요. 각자 준비해서 오는 거지, 뭐. 생일 아니더라도 장보러 나갔다가, 병원 갔다가, 어디 지나가다가 맛있는 거 보이면 사서 같이 나눠 먹어요."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수십 명에 달하는 마을 사람들이 자주 모여서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같이 생일 파티를 한다니. 20대 취재진들은 팔순 잔치가 끝날 때까지 놀람의 연속이었습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최은주~ 생일 축하합니다." 이게 무슨 일일까요. 케이크도 없지만 상 위에 음식을 올려놓고 일단 같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주 어릴 적 친구들과 모여서 생일 파티를 했던 게 전부이다 보니 너무 놀랐습니다. 취재진들은 '아, 우리가 틀에 박힌 생각을 했던 건가?' 반성했습니다. 공동체를 잊고 살았나 봅니다. 오늘도 이렇게 하나 배워 갑니다. 할머니, 생신 축하합니다! 디지털뉴스부=문채연 기자

  • 기획
  • 문채연
  • 2025.01.27 14:49

[청년 이장이 떴다] 시골 어르신들의 설 나기 계획은⋯"몸 아파도 허야지"

화정마을은 고요합니다. 오래 전 내려앉은 고요는 쉽게 깨지지 않습니다. 자동차 경적과 대화 소리로 가득 찬 도시와는 다르게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강아지·고양이의 발걸음 소리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간간이 들려오는 정겨운 어르신들의 대화 소리도 들리지만 그것도 잠시 여느 시골 마을이 그렇듯 다시 고요해집니다. "왔어요, 왔어. 설날이 왔어." 그래도 매년 두세 번은 매일 고요할 것 같은 화정마을 골목길이 시끄러워지는 때가 옵니다. 바로 설·추석을 비롯해 집집마다 중요한 날이면 잠시나마 고요가 깨집니다. 평소 전화로만 안부를 주고받던 아들·딸, 손자·손녀, 친지 등이 찾아오기 때문이죠. 매년 설 연휴가 오기 직전 주부터는 매일 점심 먹고 경로당에 모여서 화투를 치는 할머니들도, 오후 2시만 되면 게이트볼을 치러 가는 할아버지들도 오전부터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여기저기서 '달달달달' 트럭 시동 거는 소리도 들립니다. 장보러 가려고 준비하는 듯합니다. "할머니, 날 추운디 어디 가시게. 할아버지랑 뭐 맛있는 거 잡수러 가셔?" 돌아오는 대답은 다 같습니다. "장보러 가야지!" 버스가 많지 않고 자동차 없는 경우가 다반사인 시골 마을에서는 밖에 나가는 것도 일입니다. 할머니·할아버지는 시골 마을에서 시내로 통하는 읍내에 나간다고 한껏 예쁘게 꾸민 채 장보러 나갑니다. 두 시간 지났을까 화정마을로 트럭 한 대가 들어옵니다. 아까 장보러 가셨던 할머니·할아버지네요. "나 민생지원금 다 썼어!" 오율례(76) 할머니는 며칠 전 받은 완주군 민생안정지원금 30만 원을 하루 만에 다 썼습니다. 시아버지·시어머니부터 상할아버지·상할머니, 할아버지·할머니 차례 지내고 설 명절 자식들에게 맛있는 음식 해서 먹여야 하기 때문에 부족하다는 겁니다. '청년 이장이 떴다' 취재진과 한창 이야기 중이던 할머니가 갑자기 손뼉을 치십니다. "아! 내 정신 좀 봐. 나 오징어 안 샀네. 그 늘어난 오징어 전 부치려면 사야 하는디. 나 인자 생각 났네." 민생지원금 탈탈 털어 다 썼지만 아직도 장을 다 못 봤습니다. 할머니는 "홍어·조기는 샀고 고기도 좀 샀지. 딸·아들 주려고 그렇지, 뭐. 그래도 설인디 맛있는 거 해서 맥이고 싸 줘야지. 안 그려?"라고 말합니다. 그냥 빈손으로 보낼 수 없다는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이번에는 얼마 안 혀. 그냥 겉절이 조금 하고 꼬막이나 좀 무치고 전 부치고 말라고. 몸 아파서 더는 못 하겄어." 최은주(80)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난 취재진의 머릿속에는 백 개도 넘는 물음표가 떠다닙니다. '다 하시는 것 같은데⋯?' 몸이 안 좋아서 전처럼 많이 하실 수 없다고 하시지만 준비할 게 산더미입니다. 자식들 온다고 하는데 어떻게 안 하냐고 하십니다. 할머니의 푸짐한 마음에 괜스레 웃음이 지어집니다. 할머니는 "나 그냥 얼마 안 샀어. 소고기 2근, 돼지고기 조금, 배추 3포기, 꼬막 조금. 떡국은 끓여 먹어야지 않겄어? 자식·손주들 온다는디 어떻게 안 혀, 안 그려?"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머니의 마음은 다 똑같나 봅니다. "그런데 어떻게 안 혀. 말이 그렇지. 먹을 건 조금 허야지 않겄어?" 다른 할머니는 놀러가신다고 자랑하십니다. 이칠월(90) 할머니는 최장 9일에 달하는 설 명절 연휴를 맞이해 자식·손주와 놀러가기로 했습니다. 취재진이 "그러면 이번에는 장만도 안 하시겄네?"라고 말하자 "그치. 이번에는 자식·손주들이 놀러가자고 하네? 그래도 집에서 먹을 건 좀 해야지. 겉절이나 좀 하고 전이나 부치지, 뭐∼"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결국 할머니는 설 연휴 1박 2일 여행만 갈 뿐 음식 장만 준비는 똑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진짜로 할머니의 마음은 다 똑같습니다. 몸이 아파도, 안 해야지 생각해도, 진짜 조금만 해야지 생각해도 오랜만에 집에 올 자식·손주들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아마 지금도 화정마을 할머니·할아버지는 장보러 나가시고 장만 준비에 바쁘실 겁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 기획
  • 박현우
  • 2025.01.26 10:43

[설 특집] 전북, 첨단산업 육성으로 미래경제 중심지 도약한다

지난해는 전북특별자치도가 미래산업 육성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둔 해였다. 전북자치도는 지난해 미래 먹거리 산업 발굴을 통해 바이오, 이차전지, 디지털산업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며, 경제 도약의 기틀을 다졌다. 전북자치도는 올해 이차전지 특화단지와 첨단바이오 산업 인프라 구축, 디지털산업 혁신을 통해 전북은 미래산업의 중심지로 자리 잡는다는 계획으로, 지난해 성과와 올해 계획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 2024년은 첨단산업 육성 기반 강화 지난해 전북은 이차전지 분야에서 새만금 이차전지 특화단지를 중심으로 초격차 기술 확보를 위한 실시간 고도분석센터(369억 원)와 디지털트윈 기반 사용 후 배터리 재자원화 최적화센터(84억 원) 등 연구인프라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새만금 특화분야(광물가공·리싸이클링) 초격차 기술확보 기반을 마련하고 R&D혁신 허브로 발돋움할 준비를 하고 있다. 바이오산업에서는 바이오 기업 30개사를 유치하며 레드바이오 전용펀드(1274억 원)를 결성했다. 또한, 글로벌 혁신의료기술 실증지원센터와 메카노바이오 실증센터를 개소해 바이오 기술 경쟁력을 높였다. 디지털산업의 경우, 전북형 디지털 혁신거점을 구축하고, 빅데이터 기반 행정역량 강화와 AI융합기술을 접목한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했다. 특히, 농식품 메타버스 기술 실증사업을 통해 농업의 디지털 전환에도 기여했다. △2025년 중점 추진 과제 전북자치도는 2025년 미래 먹거리 산업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첨단산업 생태계 구축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먼저 이차전지 대학원 설립과 첨단산업 인재양성 부트캠프를 운영하여 현장 맞춤형 핵심인력 양성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차전지 벤처펀드 확대 조성과 기업지원사업을 통해 특화단지 중심의 이차전지 산업생태계를 조속히 구축해 나갈 예정이다. 바이오산업의 경우, 바이오 기업 150개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산·학·연·병·관이 협력하는 전담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바이오 얼라이언스 추진단을 운영한다. 또한, 첨단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한 연구개발(R&D) 등에 200억원을 지원하고, 바이오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이와 함께 레드바이오 분야 (의약품·의료기기)기업 육성을 위해 1,274억원 규모의 전용펀드를 조성하여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더불어 ‘전북형 디지털혁신거점’을 구축하고 IT/SW기업 취·창업 연계 전문인재 양성, 데이터센터 등 디지털산업 인프라를 확대할 계획이다. 전북형 디지털 거버넌스와 협력체계를 강화해 주력산업의 디지털전환을 촉진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방침이다. △미래산업 육성의 기대효과 전북자치도는 이차전지와 바이오, 디지털산업의 발전이 전북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청년 일자리 창출, 지역 균형 발전, 산업 다변화를 통해 전북은 미래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국가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김관영 전북특별자치도지사는 “전북은 이제 미래산업의 중심지로 도약하고 있다”며, “2025년에도 도민과 함께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김관영 지사 미니 인터뷰 “도전 없이는 변화도 없습니다, 2025년은 전북이 첨단산업 중심지로 도약하는 해가 될 것입니다.” 지난해 이차전지, 바이오, 디지털산업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괄목할 성과를 이룬 전북은 새해를 맞아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김관영 지사는 “지난해 이차전지와 바이오등 첨단산업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낸 만큼 새만금 특화단지를 중심으로 연구개발 인프라를 확충할 예정”이라며, “특히 카이스트 이차전지 대학원을 설립해 전문 인력을 양성할 계획”이라면서 R&D인프라 확충을 강조했다. 전북의 강점인 그린바이오를 기반으로한 바이오산업 확충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김 지사는 “그린바이오를 기반으로, 레드바이오까지 영역을 확장할 예정으로, 150개의 바이오 기업 유치를 목표로 R&D 지원과 글로벌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며 “탄소소재 의료기기센터와 메카노바이오 센터를 통해 첨단 의료기술을 선도하겠다”고 다짐했다. 김 지사는 이차전지와 바이오, 디지털산업 등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인해 전북의 성장동력이 강화되고 나아가 청년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될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2025년 은 전북이 더 큰 도약을 준비하는 해로 새해에는 전북이 더욱 크게 도약할 것”이라며 “도정의 목표는 언제나 ‘도민의 행복’과 더 나은 삶‘이다. 도민 여러분께서도 “전북은 할 수 있다”는 자부심과 믿음을 갖고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 도민 여러분 모두 풍요롭고 따뜻한 설명절 보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 기획
  • 백세종
  • 2025.01.23 18:02

2025 임실 방문의해…'1000만 관광 시대' 힘찬 비상

임실군이 민선 6기부터 8기까지 일관성을 지닌 행정을 통해 2025년 종시여일(終始如一)의 각오로 군정 주요 핵심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한다. 심민 군수는 신년 인사에서 “성장과 변화를 상징하는‘푸른 뱀의 해’ 2025년은 소망하시는 모든 일들이 이뤄지고 우리 군도 더 크게 도약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난 10년 6개월을 열심히 일했고 남은 1년 6개월과 임기를 마치는 그날까지 오로지 임실군과 군민 만을 위해 혼신을 바쳐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군은 올해가 ‘임실 방문의 해’로서 ‘이제 임실’이라는 대표 슬로건을 내걸고 전국적인 홍보와 관광객 유치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올해 반드시 천만관광 임실시대를 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 명품 관광벨트 구축⋯천만관광 임실시대 실현 총력 임실군은 지난해 옥정호와 임실N치즈축제 등을 중심으로 한 사계절 축제로 888만명이 임실을 찾은 만큼, 임실 방문의 해인 올해는 더 많은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임실군 생활 인구는 2018년에 498만명에서 2023년 853만명, 2024년에는 888만명으로 78%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군은 천만관광 임실시대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계획을 점검하고 군정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그동안 착실히 준비해 온 2025 임실 방문의 해 추진과 함께 대외홍보에 집중할 방침이다. 그 일환으로 임실여행 숙박비 할인과 특별한 임실 투어 프로그램 운영, 대학생 투어, 찾아가는 방문의 해 홍보단 등을 운영해 누구나 찾고 싶고 와보고 싶은 임실을 알릴 예정이다. 2024년도 문체부 선정 대한민국 3대 최우수 문화관광축제인 임실N치즈축제에는 58만명이, 겨울 대표 축제인 산타축제에는 31만명이 찾아 흥행에 성공했다. 임실군은 또 옥정호 벚꽃축제와 임실N펫스타 등 지역자원을 활용한 다양하고 풍성한 특색있는 사계절 축제를 준비할 계획이다. 관광 기반 조성을 위해 옥정호 관광호텔과 붕어섬, 섬진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5.2km 케이블카 등 민간개발 등 옥정호 권역 관광개발도 추진한다. 임실치즈테마파크 내 치즈아이랜드와 호텔형 숙소신축, 농촌테마공원 등도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수에는 세계명견 테마랜드 조성사업과 성수산 산림레포츠시설 준공, 관촌 사선대 개발계획 등 명품 관광벨트 구축사업에도 집중할 계획이다. △ 함께하는 희망농업⋯행복한 농업농촌 실현 농촌의 고질적인 일손 부족 해결을 위해 캄보디아와 라오스 등 외국인 계절근로자 업무협약을 2월에 체결해 외국인 근로자를 도입하고 지역 다양화 및 확대에도 전념할 계획이다. 또 특화 작물을 활용한 고부가가치 식품개발과 농작물 병해충 공동방제, 수확 대행 작업단 운영 등 농가에 실질적인 도움으로 농업경쟁력도 강화한다. 논 콩을 많이 심고 가루 쌀 재배단지를 육성하는 등 전략작물 산업화 지원을 통해 쌀 적정 생산 유도와 쌀값 안정화에도 힘쓴다. 특히 홀스타인 품종보다 원유 품질이 월등히 우수한 저지종 품종으로 개량, 기능성 숙성치즈와 고품질의 유제품을 생산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차별화해 임실치즈의 경쟁력을 높여 나갈 계획이다. 군은 현재 시행 중인 관내 학교 유제품 학교급식 지원을 주 2회에서 3회로 늘려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도모하고 군 자체 아동수당 지원과 어르신 이•미용료 지원도 6매로 확대 시행한다. △ 활력있는 지역 경제⋯맞춤형 경제시책 민생 현안과 밀접한 경제 활성화와 군민 복지향상을 위한 맞춤형 사업도 빈틈없이 추진할 계획이다. 운암면 소재지에 조성 중인 한우 특화 거리 개장과 임실시장 음식특화상가를 올해 완공, 본격적 운영으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임실·오수 제2농공단지 기업 유치 및 입주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다. 아울러 남·녀 사우나 시설을 갖춘 목욕탕과 로컬푸드 직매장, 영화관 등이 구비된 임실 정주활력 복합센터도 조성한다. 오수면 80세대와 관촌면 120세대의 아파트를 올해 착공하고 임실읍 120세대 임대 아파트도 내년 착공토록 준비하고 있다. 특히 천만관광 시대를 위해 꼭 필요한 현안인 KTX 임실역 정차를 위해서도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 찾아가는 맞춤복지⋯사회복지 안전망 확대 어르신과 취약계층에 대한 다양한 일자리를 지원하고 수요자 중심의 복지 체감도 향상을 위한 특색있는 복지 시책을 적극 추진한다. 여성의 사회참여를 확대하여 저출산에 따른 사회문제에 적극 대처할 수 있는 출산 및 양육 정책 지원과 다문화가족의 사회취약계층 지원도 세심하게 배려할 계획이다. 아울러, 임실·오수·관촌 풍수해 생활권 정비와 관촌 자연재해위험지구 정비, 강진지구 농어촌생활용수 개발사업 등 재난 재해 예방에 빈틈없이 대응해 군민의 생명과 안전이 보호되도록 추진할 예정이다. △ 품격있는 교육‧문화⋯다양한 문화‧체육시설 확충 군은 봉황인재학당의 수준 높은 수업과 맞춤형 프로그램으로 중학생 150명, 고등학생 50명까지 확대해 운영한다. 지사면 소재지에 단독주택 12가구로 구성된 농촌 유학 가족 체류형 거주시설도 조성해 가족 단위 학생들을 적극 유치할 계획이다. 지난해 공모에 선정돼 125억원이 지원되는 교육발전 특구사업도 촘촘히 챙겨 지역인재 정주기반 마련에도 최선을 다할 방침이다. 더불어 관촌면의 옛 상월분교에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고 예총회관에는 문예담터 조성 등을 통해 문화예술을 활성화해 나간다. 이밖에 볼링장과 스포츠센터를 겸비한 국민체육센터와 탁구 피구 생활체육관, 야구장 조성 등으로 생활체육 인프라를 확충하고 주민 건강증진과 삶의 질 향상에도 노력할 방침이다. ●심 민 임실군수 "임실방문의 해 군민 모두가 동참해야" 올해는 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고 군정 발전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해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히 ‘임실 방문의 해’를 맞아 전북특별자치도를 넘어 전국, 아니 세계에 이름을 드높일 수 있도록 모두가 지역관광자원 홍보에 온 힘을 쏟아야 할 때입니다. 이를 통해 전 국민이 한 번 이상 우리 지역을 방문하고 재방문객이 늘어날 수 있도록 서로가 노력해 줄 것을 기대합니다. 또 작금의 지방 소멸의 시대를 극복하고 소란스럽고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손을 잡고 함께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여기에는 저를 필두로 앞장서며 오직 군민 만을 바라보며 군민의 행복을 위해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노력에 총력을 쏟겠습니다. 군민 여러분! 새로운 임실의 밝은 미래를 향해 올해도 임실군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모두 함께 힘차게 전진합시다 감사합니다.

  • 기획
  • 박정우
  • 2025.01.23 13:40

[뉴스와 인물] 남관우 전주시의회 의장 “시민 체감형 의정활동 주력”

‘현장 속으로, 시민과 함께’라는 기치 아래 제12대 전주시의회 후반기를 이끄는 남관우 의장은 주민의 안녕과 함께 더 살기 좋은 전주시를 만드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특히 남 의장은 민생경제 회복과 발전적인 지방시대 실현을 위한 시민 체감형 의정활동에 주력하겠다는 계획이다. 남 의장을 만나 올해 전주시의회의 시민 소통 중심의 현장 의정활동의 방안 등을 들어봤다. 시민들에게 새해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2025년 을사년(乙巳年)과 함께 희망찬 내일을 열기 위한 새로운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전주시의회는 올해도 가장 낮은 곳에서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시민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동행하고자 합니다.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품고 화합으로 진력한다면 어떤 어려운 과제도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전주시는 무한한 가능성의 도시입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미래를 향한 큰 꿈과 희망이 있습니다. 64만 시민 한 분 한 분이 지닌 꿈, 그 꿈이 바로 우리의 희망이며 포부이고 미래입니다. 2025년, 여러분과 함께 나아갈 전주시의회를 믿고 지지해 주셨으면 합니다. 시민 여러분이 꿈꾸는 전주시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을사년 새해에도 시민 여러분의 가정에 늘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지난해 전주시의회 성과를 꼽는다면. “의원들이 시민의 대변자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근거가 성과로 가시화됐습니다. 이는 시민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무엇보다 의미 있는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제12대 전주시의회가 개원한 2022년 7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통계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기간 의원 발의로 처리한 조례안은 125건, 5분 발언 248건, 시정질문 102건이었습니다. 이는 제11대(조례안 85건, 5분 발언 211건, 시정질문 77건), 제10대(조례안 80건, 5분 발언 166건, 시정질문 95건) 의회 같은 기간보다 크게 증가한 것으로, 의원들이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올해도 지역발전을 위해 발로 뛰며 각종 현안에 적시 대응하고, 더 나은 정책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올해 전주시의회 의정활동의 중점 방향은 무엇인가요. “을사년 전주시의회는 시민을 위해 현장에서 발로 뛰는 의회, 소통하는 의회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입니다. 여기에 시민의 관심과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시민의 목소리가 정책에 더욱더 반영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그 일환으로 올해부터 전주시의회는 긴급현안질문 제도를 신설하고 본격 시행합니다. 이 제도는 지역사회에서 발생하는 긴급한 문제에 대해 의원들이 즉각적으로 집행부의 설명을 요구하는 것으로, 긴급 현안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집행부에 대한 견제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지방의회의 책무입니다. “지방의회의 책무이자 존립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민의(民意)가 반영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의회는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의원은 시민의 대리자이자 대변자로서 시민의 참뜻을 세우라는 준엄한 명령을 받고 의회에 입성했습니다. 의회는 집행부가 예산을 올바르게 집행하는지, 불필요한 사업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과도한 규제로 시민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지 않는지 등을 다각도에서 시민의 뜻에 부합하는 시정 운영을 위해 항시 꼼꼼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다만 새는 양 날개로 날아야 온전히 목적지에 안착할 수 있듯, 잘못된 행정은 과감히 지적하면서도 때로는 긴밀한 협조로 시민과 전주시를 위해 힘을 모으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 될 것입니다.” 정국 혼란이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불안도 커져만 가고 있는데요. “엄중하고 혼란스러운 시국 속에서도 우리 시민의 삶이 평온하게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의회와 집행부의 역할입니다. 의회는 무엇보다 시민의 안전과 민생 회복에 중점을 두고 의정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입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때보다도 경기가 어렵다는 호소가 있는 만큼 실질적인 경기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는 등 경기회복에 힘쓰겠습니다. 또한 민생과 안전에 관련된 사업에 시민의 의견이 잘 반영되고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조례와 예산 지원 등으로 뒷받침하겠습니다. 재정 건정성 확보와 전주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예산 심사도 꼼꼼히 실행하겠습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처럼 2025년에는 시민을 위해 의회와 집행부가 서로의 역할과 책임을 존중하며, 시민을 위한 일에 더 견고히 협력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전북특별자치도시군의회의장협의회 회장도 맡고 계십니다. 최근 협의회에서 2036 하계올림픽 유치 촉구 건의안을 채택했는데요. “전북특별자치도시군의회의장협의회에서 채택한 ‘2036년 하계올림픽 전북특별자치도 유치 촉구 건의안’은 지역발전과 국가 균형발전 및 지방 활성화 실현을 위해 하계올림픽을 전북에 유치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전주시는 자연과 문화,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친환경 도시로 올림픽 개최지로 최적입니다. 또 올림픽을 유치할 경우 지역 경제 활성화는 물론 국가 균형발전과 지방 활성화를 실현하는 상징적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협의회는 정부의 올림픽 유치 의사 적극 표명, 중앙-지방 정부 협력 및 지원 체계 구축, 예산 확보 등을 한목소리로 촉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을사년 새해에도 전주시의회는 ‘현장 속으로 시민과 함께’를 기치로 시민의 참뜻을 바로 세우며 전주시 발전의 밀알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또한, 높은 곳보다는 낮은 곳을,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더욱 배려해 살기 좋고 모두가 행복한 전주시를 만드는데 진력하겠습니다. 변화와 혁신 또한 두려워하지 않고 잘못된 관례와 인습을 과감히 바꿔나가겠습니다. 특히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노력하는 자세로, 의원들 모두가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을 갖춰 시민 여러분의 신뢰를 받고 믿음을 주는 전주시의회로 거듭나겠습니다. 항상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시민 여러분의 응원에 꼭 보답하는 의회가 되겠습니다.” 남관우 의장은 남관우 의장은 취임 후 ‘현장 속으로! 시민과 함께’라는 기조 아래, 시민 가까이에서 함께하는 의정활동을 강화하고 지방자치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다. 남 의장은 지역 현안 발굴 및 정책을 연구하고 시행하는 데 있어 시민의 편에서 철저히 검증하고 확인하는데 힘쓰고 있다. 특히 그는 제9대 후반기 전북특별자치도시군의회의장협의회장에 추대되어 전북지역의 각종 현안사업의 해결을 위해 도민에게 필요한 정책을 발굴하고 실현하는데 앞장서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남관우 의장은 “시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지역사회와 협력해 전주다운 미래를 만들어 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 기획
  • 강정원
  • 2025.01.19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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