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도시 전주시가 교육역사문화 중심 특례시 지정을 당연시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한옥마을 관광객들도 큰 몫을 하고 있다고 본다.
그만큼 전주는 후백제 조선왕조의 터전으로 우리민족의 삶의 정서가 가득 담겼고 외세에 항거한 조상들의 유물이 풍부한 도시다. 또한 유교적 선비사상이 발달 고풍스러운 기와집이 집단보존 되어 선비문화가 발달 풍류객들이 모여 시와 가무로 즐기던 ‘한벽루’를 간직하고 있다. 현대도 조상의 얼을 이어받아 세계소리의 문화전당에서는 국제영화제를 비롯 각종 국제문화예술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각 여론기관에서 조사한 데이터는 전주를 살기 좋은 도시로 지정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전주가 한국인의 정서와 어울리고 다양한 옛 문화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한옥마을’(옛 교동과 풍남동. 경원동 동서학동 일부)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태생부터가 군산사람이다. 전주에서는 60년대 공부 때문에 몇 년간 지금의 한옥마을 (구 전주여고 앞 골목길)에서 살았을 뿐이다
작년 12월 생활환경의 불가피한 사정으로 군산에서 완주로 이사한 후다.
한 언론사 신문 기사를 읽었다. ‘한옥마을’ 관광객 2000만 명을 넘어섰단다. 정말 놀라고 부럽기까지 했다. 살기 좋은 군산 은파 호숫가에서 이사한 것이다
군산의 관광명소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관광객이 500만을 돌파 고무된 군산사람으로 참 가치있는 기사였다.
‘한옥마을 관광명소, 그 진실이 무엇인가? 그 진실과 믿음의 출처를 알아서 항구도시 군산도 하루속히 풍부한 바다의 특혜 ’고군산군도‘란 관광자원을 활용해야 한다는 희망적 생각을 가지고 한옥마을 탐방 길에 나섰다.
이서 콩쥐팥쥐 가는 길목 우리 집에서 나와 시내버스를 타니 ‘한옥마을’입구에서 내렸다. 먼저 반세기 전 전주여고 앞 옛 하숙집을 가려면 코를 막고 지나던‘똥통 골목길’에 들어섰다. 옛 정서를 그리며 전주여고 자리를 보니 고풍스러운 벽돌집, 숲속의 새소리도, 그 발랄하고 해맑은 여고생들 드나들던 옛 모습 보이지 않고 코를 잡고 지나가던 골목길은 찾을 길 없다. 복원이란 문화적 가치를 외면한 것이다. 탐방객은 첫 코스에서 그만 고개를 갸우뚱 한 것이다.
두 번째 탕방코스는 은행나무길 학교 다닐 때 전주역에서 내려 교대까지 뛰어다닌 나에겐 유서 깊은 길이 아닌가? 먼저 찾은 곳은 몽당연필의 아버지를 만들던 문화 연필공장이다. 역시 흔적이 없다. 길을 따라 최명희 혼불 문학관 중앙초등학교 교정, 경기전, 천주교 중앙성당. 예술의 전당도 완벽은 아니지만, 관광명소로서 그 가치를 인식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옥마을을 관광명소의 도우미들이 즐비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다름 아닌 유명한 버드나무집, 비빔밥, 전주교육대학 히말라야 숲, 전주천의 깨끗한 물, 완산칠봉 등 한옥마을 광광 명소 성공의 큰 도우미란 것을 알았다.
옥에 티라면 문화가치 있는 건물들을 보존 내지 복원 없이 철거한 것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유산 개발에 등한했고 전주천의 오염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다.
마지막으로 한옥마을의 관광객증가는 전주시청 관계 요원, 시민, 전라북도 도민들의 승리라 본다.
지금 세계는 관광의 전쟁터나 다름없다. 자국 예산의 대부분을 관광객이 뿌리는 돈으로 부국 강국을 만들 듯 도시도 관광 수입으로 부자 도시도 있다.
대기업 2개로 경제 위기를 맞은 군산도 지금은 새만금바다와 고군산군도 관광자원 개발로 위기 탈출을 시행한다는 소식에 쌍수를 들고 응원의 박수 보내드린다.
시민 모두는 관광산업의 가치 인식을 철저히 하여 군산 부활에 동참과 협조를 바란다. /황현택 군산평생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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