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계층 낙인 막는다는 '우유바우처 카드' 다자녀 가구에 불똥
정부가 취약계층 성장기 청소년에게 균형 잡힌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학교우유급식 사업과 관련, 올해 처음으로 도입된 바우처 사업의 지침이 예산 효율화를 이유로 개정되면서 전북을 비롯한 전국 다자녀 가구 학생들은 우유를 마시지 못하게 됐다. 30일 전북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학교우유급식 담당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오는 2025년까지 기존 초·중·고등학교에서 시행하는 우유급식사업을 ‘우유바우처 카드’ 사업으로 전환한다. 이 사업은 취약계층 학생이 직접 지급받던 우유 대신 바우처 카드를 발급해주고 학생 본인이 편의점·마트 등에서 구매하게 하는 방식이다. 기존 사업의 경우 취약계층 학생이 직접 우유를 신청하면서 취약계층임을 알게 하는 '낙인효과' 등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공모를 통해 시범사업에 참여할 지자체를 선정했고 그 결과 전북에서는 남원시와 정읍시, 고창군, 무주군, 순창군, 임실군, 장수군, 진안군 등이 선정됐으며, 전국적으로는 15곳이 시범사업 참여 지자체가 됐다. 문제는 정부가 새로 제시한 지원대상자 자격 및 요건을 ‘우유 바우처 시범사업에 선정된 지자체 학생 중 다자녀 가구를 제외한 취약계층에만 우선적으로 지원돼야 된다'고 규정하면서 도내 8곳을 비롯한 전국 선정 지자체에 거주하는 다자녀 가구의 경우 우유를 무료로 마실 수 없게 됐다. 그동안 지자체들은 학교우유급식 사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직접 우유를 나눠주고 있었다. 이 사업은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 계층, 특수교육대상자, 한부모 가정, 교육비 지원대상 학생 등에게 우유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지난 1981년부터 추진됐다. 해당 사업은 취약계층에 우선적으로 진행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지자체들은 인구소멸이 심각해짐에 따라 복지정책 일환으로 지자체장의 재량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기타’ 항목을 이용, 다자녀 가정에게도 우유급식을 지원해왔다. 하지만 정부가 우유바우처 시범사업은 다자녀가구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각 지자체들에 내리면서 바우처 시범사업 대상지역 다자녀 가정들은 바우처든, 실제 우유지급이든 받을 수 없게 된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도내 8개 지자체 외에도 전국에서 지자체의 다자녀 우유 제공 중단 사례가 잇따르자 학부모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한 지역 맘카페에는 “물가는 오르고 살기는 더 팍팍해지네요. 저출산이라며 출산 장려한다면서 뭐 이러는지”, “좋은 제도는 다 없어지네요”, “애 많이 낳으라면서 복지는 없앤다”는 글로 가득했다. 논란이 커지자 농식품부는 지난 28일 입장문을 배포하고 진화에 나섰지만, 아이들에게 하는 영양 투자를 예산 효율성을 놓고 따진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실제 전국 다자녀가구 아이들에게 우유를 지급한다고 해도 예산차이는 정부예산 기준 100억원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농식품부는 자인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입장문에서 “다자녀를 모두 지원해야 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예산을 산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기존에는 학교우유급식에 참여하지 않는 학교와 미신청 학생들로 인해 매년 총 100억 원 정도의 잔여 예산을 지자체에 배정했고, 지자체가 자체 예산을 더해 우선 지원 대상 이외에 다자녀·다문화 가구, 소규모 학교 학생들을 지원해온 것”이라고 밝혔다. 전북도 역시 이와 관련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도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우유바우처 대상 지자체를 지원대상에서 제외했기 때문에 지자체가 거스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교육 당국과 8개 시·군 담당자들이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계속해서 회의를 진행 중에 있다”고 말했다. 엄승현·송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