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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가 독립·실험영화의 확장성과 영화축제로서의 현장성을 동시에 드러내며 열흘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는 지난 8일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결산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 영화제 운영 성과와 프로그램 결산 내용을 발표했다. △골목상영부터 ‘가능한 영화’까지…축제성과 정체성 잡았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는 독립·대안영화 중심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시민 참여형 부대행사를 확대하며 ‘체류형 영화축제’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올해 영화제는 ‘우리는 늘 선을 넘지’를 슬로건으로 총 54개국 236편의 작품을 선보였다.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과 CGV전주고사, 메가박스 전주객사 등 5개 극장 21개관에서 총 610회 상영이 진행됐으며, 7일 기준 누적 관객 수는 6만9365명, 좌석 점유율은 82.1%를 기록했다. 특히 올해 가장 눈에 띈 변화는 신규 섹션 ‘가능한 영화’의 신설이다. 지난해 특별전과 동명 도서 ‘가능한 영화를 향하여’에 대한 관객 호응을 바탕으로 정규 섹션으로 확대 편성하면서 독립영화와 대안적 제작 방식의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조명했다. 해당 섹션은 평균 예매율 90% 이상을 기록하며 관객들의 높은 관심을 입증했다. 부대행사 역시 영화제의 외연을 넓혔다. 영화의거리와 한옥마을 일대에서 열린 ‘골목상영’은 8일간 총 4175명의 관객이 찾았으며, 일부 회차는 역대 최다 관객 수를 기록했다. 특히 전주중앙교회 광장 상영에는 하루 최대 555명이 몰렸다. 또 ‘100 Films 100 Posters’ 전시는 약 8000명의 관람객을 기록했고, 영화제 굿즈샵은 역대 최고 매출을 경신했다. 일부 상품은 조기 품절됐으며, 오픈 전부터 긴 대기 줄이 이어지기도 했다. △안성기 특별전부터 차이밍량 마스터클래스까지…거장과 실험영화 조명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한국영화의 역사와 세계 영화사의 실험정신을 아우르는 특별전과 프로그램 이벤트를 통해 관객들에게 보다 깊이 있는 영화 경험을 제공했다. 먼저 올해 초 별세한 배우 안성기의 작품세계를 조명한 ‘특별전: 조금 낯선 안성기를 만나다’에서는 대표 출연작 7편을 상영하며 한국영화사 속 배우 안성기의 연기 궤적과 의미를 되짚었다. 또 ‘홍콩귀환: 시네마+아방가르드’, ‘뉴욕 언더그라운드-더 매버릭스’, ‘게스트 시네필: 페라 포르타베야’ 등 특별전을 통해 기존 상업영화 중심 영화사에서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했던 실험영화와 아방가르드 흐름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관객과 영화인을 연결하는 프로그램 이벤트도 활발하게 운영됐다. 올해 영화제에서는 총 269회의 클래스·GV·무대인사 프로그램이 진행됐고, 국내외 게스트 754명이 참여했다. 특히 차이밍량 감독과 마이크 피기스 감독이 참여한 마스터클래스는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차이밍량 감독은 행사 중 ‘행자’ 시리즈 차기작을 전주에서 촬영할 계획이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와 함께 ‘전주톡톡’, ‘영화로의 여행’ 등 강연·토크 프로그램도 확대 운영됐다. 올해의 프로그래머로 선정된 변영주 감독은 자신의 연출작과 영화 인생에 영향을 준 작품들을 소개하며 관객과 소통했다. △“독립영화 정체성 사수하고 대중적 확산 주력할 것” 취임 4년 차를 맞은 민성욱·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그간의 소회와 함께 영화제의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 두 공동집행위원장은 ‘독립영화의 정체성 사수’라는 공통된 목표 아래, 내실 있는 행정 지원과 대중적 추진력을 결합해 전주국제영화제의 새로운 30년을 준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먼저 정준호 위원장은 “지난 3년은 내가 진정한 영화인인가를 스스로 질책하며 반성한 시간이었다”며 “전주국제영화제는 창작자들이 열정을 모아 선보이는 순수한 시장판인 만큼, 이들의 잔뿌리가 큰 나무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독립영화가 대중과 거리를 둘 필요는 없다”며 LCC(저비용항공사) 기내 상영 협업이나 대형 극장 내 독립영화 전용관 확대 등 외연 확장을 위해 발로 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민성욱 위원장은 영화제의 내실을 다지는 하드웨어 구축과 행정적 비전을 제시하며 궤를 같이했다. 민 위원장은 영화제의 숙원 사업인 ‘전주 독립영화의 집’ 건립을 향후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꼽으며 “전주시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건립이 차질 없이 추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영화제 30주년 즈음 완공될 이 공간은 단순한 건물을 넘어 영화인들이 상시 교류하는 독립영화의 성지이자 전주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며 안정적인 인프라 구축을 통한 정통성 강화를 약속했다.
겨울엔 무명 여름엔 모시였습니다. 석유에서 뽑아낸 합성섬유 나이롱이 나오기 전까지는요. 모시풀의 속껍질을 벗겨내 태모시를 만들었지요. 손톱과 이로 째고 한 올 한 올 침을 발라 허벅지에 비벼 이어 붙였지요. 광주리의 모시실, 꾸리를 감을 때면 자주 엉켜 난감했었지요.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붉은 강낭콩 한 줌 더 뿌렸고요. 언제 엉켰었냐는 듯이 꾸리 꾸리 잘도 감겼고요. 날기와 바디 촘촘 실을 끼워 풀을 먹이는 매기를 거쳐 베틀에 올렸습니다. 북통에 넣은 꾸리가 씨줄이 되었지요. 실오리 같은 고샅을 빠져나온 지 어언 반백 년입니다. 사통팔달 넓고 빨라진 길을 달립니다. 경기장 사거리 빨강 신호등에 걸린 사이 아련한 옛날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네요. 씨줄 날줄, 엉키지 않고 자동차가 오갑니다. 저 빨강 금세 파랑으로 바뀌겠지요. 행여 뒤처질세라 나는 또 차고 나갈 테고요. 서두르는 길이 꼬이기도 했습니다만, 그 옛날 어머니가 이골이 나게 쪼개고 이어 붙인 모시실 위에 뿌린 붉은 강낭콩 덕에, 내 앞길 크게 엉키지 않았습니다. 잠시 이정표도 살펴라, 신호등이 붉게 붙잡습니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이야기를, 끝내 보게 만드는 것이 제 영화입니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특별전 ‘조금 낯선 안성기를 만나다’의 일환으로 상영된 <부러진 화살> GV가 열린 지난 6일 현장. 늦은 밤까지 객석을 지킨 관객들 앞에서 정지영 감독은 특유의 단호한 어조로 배우 안성기와의 오랜 인연부터 영화가 사회와 맞서는 방식까지 담담히 풀어냈다. 이번 특별전은 올해 초 세상을 떠난 안성기 배우를 기리기 위해 마련됐다. 정 감독은 “안성기 배우는 흥행배우이면서도 독립·예술영화를 위해 기꺼이 헌신한 사람이었다”며 “부러진 화살 역시 그런 작품 중 하나”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90년 개봉한 <남부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안성기는 시나리오도 없이 원작만 읽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정 감독은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느냐”라며 “안성기는 정치적 입장보다도 평생 한 번 만날 수 있을까 말까 한 인물을 연기하고 싶어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제작된 <하얀 전쟁> 역시 안성기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그는 베트남전을 다룬 원작 소설을 직접 권했고, 결국 영화화까지 이어졌다. 정 감독은 “안성기는 스스로를 비정치적 인간으로 두려 했지만, 배우로서 욕심나는 역할에는 누구보다 솔직했다”고 말했다. 본인의 13년의 공백 끝에 만든 <부러진 화살>의 제작 비화에 대해 정 감독은 “처음에는 독립영화 수준의 제작비로 찍으려 했다”며 “그렇게 주연 배우를 고민하던 중, 누군가 ‘이 작품은 반드시 안성기가 해야 한다’고 말해 찾아갔고, 안성기가 하루 만에 출연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당시 영화는 약 5억 원대 저예산으로 제작됐지만 340만 관객을 돌파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정 감독은 “사법부와 기득권 구조를 정면으로 건드리는 영화라 투자자들이 두려워했다”며 “안성기가 합류한 뒤에야 비로소 영화의 규모가 커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안성기의 연기 방식에 대해 “큰 틀만 설명해주면 배우 스스로 캐릭터를 완성했다”며 “박원상, 이경영 등 배우들이 서로 연기 경쟁을 벌이면서도 호흡은 완벽하게 맞았다”고 말했다. GV 말미, 그는 다시 안성기를 떠올렸다. “안성기 배우가 세상을 떠났을 때 한국에 없어서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며 잠시 말을 멈춘 정 감독은 “나중에 수목장을 찾아가 마음속으로 한마디 했다. ‘언젠가 나도 가면 거기서 다시 만나자’”라고 말했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선정된 영화 <남태령>은 지난 2024년 12월, 남태령 고개를 가득 메운 시민들의 연대와 광장의 감각을 스크린 위로 옮긴 작품이다. 김현지 감독은 전작 <어른 김장하>를 통해 한 인물의 삶을 조명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남태령’이라는 공간과 그곳을 통과한 사람들의 마음을 기록했다. 영화는 2024년 12월 전봉준투쟁단의 상경 투쟁과 이를 지켜본 시민들이 만들어낸 연대의 순간을 따라간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의 폐막을 하루 앞둔 7일, 전주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김 감독의 시선은 날카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독히 다정했다. 감독은 남태령의 밤을 두고 “만화경 같은 무지개 색깔로 기억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색깔이 한데 섞여 검은색이나 흰색으로 통합되는 것이 아니라, 빨강·파랑·노랑의 고유한 빛이 각자의 모습을 유지한 채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며 “서로 다른 존재들이 부딪히고 스치면서 만들어낸 현장의 에너지가 마치 만화경 같았다”고 설명했다. 특히 동학농민운동의 정신이 깃든 전주에서, 농민들의 상경 투쟁기를 담은 이 영화가 세계 최초로 공개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그리스 신화의 수미상관이 완성되는 듯한 기분이었다”며 “전봉준투쟁단의 이야기를 전주에서 처음 선보인다는 사실 자체가 상징적으로 다가왔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번 작품은 SNS와 유튜브 라이브, 시민들이 직접 촬영한 영상 등 디지털 아카이브를 적극 활용했다. 기존 다큐멘터리 문법에서 벗어난 방식이다. 김 감독은 “제 목소리만으로는 그 현장을 정리할 수 없었다”며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기록한 방식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거대한 정치적 분석보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과 발언, 서로를 돌보는 장면들에 집중한다. 시민들이 핫팩과 음식, 난방버스를 보내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순간들은 영화의 중요한 축이 된다.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2030세대의 응원봉과 농민들의 트랙터가 한 공간에서 만나 만들어낸 낯선 풍경이다. 김 감독은 이를 두고 “사람이 사람의 고독을 알아본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투쟁적이고 과격하게만 보였던 농민들의 깊은 외로움과 고독을 젊은 여성들이 먼저 발견하고 곁을 내어주던 순간, 감독은 대면의 힘이 혐오를 녹이는 장면을 목격했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조차 익숙하지 않았던 한 노년 농민이 젊은 세대와 밥상을 나누며 편견을 허물어가는 과정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현장에서 발생한 연대의 힘은 감독 자신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김 감독은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적과 아군으로 단순하게 나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성별과 세대, 지역 갈등이라는 표면 아래 존재하는 소외와 계급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결국 남태령의 출발점이 됐다는 설명이다. 끝으로 김 감독은 <남태령>이 일회적인 영웅담이나 신화로 남기보다, 관객들이 일상으로 돌아가 타인과 대면하는 하나의 ‘태도’로 남길 소망했다. 비록 세상은 영화 한 편으로 바뀌지 않을지라도, 남태령을 거쳐 간 이들이 “우리가 어떻게 연대하는지 이미 해봐서 안다”고 말할 수 있는 효능감, 그 연대의 기억이 우리를 조금은 덜 외롭게 만들 것이라는 믿음이다. 가장 낮은 곳의 목소리를 모아 가장 높은 울림을 만들어내는 김현지 감독의 카메라는, 오늘도 사람과 공동체의 온기를 향해 흐르고 있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올해 처음 선보인 ‘가능한 영화’ 섹션은 제작 방식과 창작 환경의 다양성을 확장하려는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영화는 반드시 거대한 자본과 산업 구조 속에서만 만들어져야 한다는 통념을 넘어, 보다 개인적이고 친밀한 조건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문제의식이 이번 섹션의 출발점이다. 이 같은 지향을 가장 또렷하게 드러낸 작품 중 하나가 파스칼 보데 감독의 다큐멘터리 <많다, 말이>다. 지난 4일 메가박스 전주객사 10관에서 상영 후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GV)에는 감독이 직접 참석해 작품의 출발과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보데 감독은 영화의 주인공 ‘암르’를 “6년 넘게 알고 지낸 이웃”이라고 소개하며 “같은 동네에서 촬영한, 매우 개인적인 관계에서 시작된 이야기”라고 밝혔다. 프랑스에서 17년을 살았지만 여전히 언어 장벽에 갇혀 있는 인물을 통해 이주민의 현실을 포착했다는 설명이다. 관객들은 특히 언어와 체류 문제를 둘러싼 설정에 주목했다. 감독은 “그는 밝고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체류 문제로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 있다”며 “그 모순적인 지점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이어 “제스처와 바디랭귀지로 소통하는 모습이 인간적으로 다가왔고, 그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영화를 시작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작품은 체류 허가를 둘러싼 행정 절차를 주요 축으로 삼지만, 단순한 제도 비판에 머물지 않는다. 보데 감독은 “복잡한 절차 자체보다 그것이 한 인간의 감정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더 중요했다”며 “주인공을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으려 했다”고 강조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주인공의 현재 상황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감독은 “최근 2년짜리 체류 허가를 받았지만 여전히 장기 체류를 위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상태”라며 “오랜 시간 한 사회에 머물고 있음에도 임시적인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전했다. 이날 GV는 ‘가능한 영화’ 섹션이 지향하는 바를 그대로 드러냈다. 거창한 서사나 자본이 아닌, 한 개인의 삶과 관계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어떻게 영화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지난 5일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서 시상식을 열고 제18회 전주프로젝트 수상작을 발표했다. 이번 전주프로젝트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진행된 공모를 통해 접수된 총 270편 가운데 18편을 선정했다. 수상 결과, ‘전주랩’ 2차 기획개발비 지원작에는 이형직 감독의 <나자레, 나자레, 나자레>(가제), 반시안·윤재호 감독의 <내 남자친구에 관하여>, 최정은 감독의 <조용한 유산> 등 3편이 선정됐다. 음향 마스터링을 지원하는 ‘JICA상’은 반시안·윤재호 감독의 <내 남자친구에 관하여>와 최세담 감독의 <파도 위에서 춤추는 여자>가 수상했다. 디지털 색보정 지원이 주어지는 ‘전주영화제작소상’은 조한나 감독의 <여>와 최정은 감독의 <조용한 유산>이 받았다. 상금 1000만 원과 캐스팅 옵션을 지원하는 ‘전주캐스트상’에는 이다영 감독의 <다시 만난 우리>가 선정됐다. K-DOC CLASS 부문 ‘SJM문화재단 러프컷 부스터’는 고두현 감독의 <안경, 안경들>이 차지했다. 전주프로젝트 부문에서는 해외영화제 출품용 영어 자막 제작을 지원하는 ‘푸르모디티상’에 이다영 감독의 <다시 만난 우리>와 최정은 감독의 <조용한 유산>이 이름을 올렸다. 색보정 비용 할인 혜택이 주어지는 ‘DVcat상’은 변성빈 감독의 <산의 손뼉>과 이상문 감독의 <주름>이 수상했다. 국내 작품의 해외 배급을 지원하는 ‘워크인프로그레스’ 부문에서는 이상문 감독의 <주름>이 선정돼 배급지원금 500만 원을 받게 됐다. 또한 후지필름코리아 후원으로 진행된 전주랩 단편 ‘2차 제작지원금’ 부문에는 얀은경 감독의 <섬광>이 선정됐으며, ‘현물지원’ 부문에는 송진경 감독의 <틈에>와 양 감독의 <섬광>이 이름을 올렸다. 전주프로젝트 ‘다큐멘터리 포커스상’은 최세담 감독의 <파도 위에서 춤추는 여자>가 수상했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상영작 <리틀 라이프>가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작품의 의미와 제작 배경 등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지난 3일 오후 8시 메가박스 전주객사 10관에서 열린 상영 후 GV에는 김용천 감독과 배우 박수아, 김혜원 양이 참석해 관객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는 저예산 장편영화 제작 활성화를 위해 전주국제영화제가 직접 투자에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영화제의 역할을 단순 상영에 그치지 않고 제작과 인재 발굴로 확장해 온 대표 사업으로, 지난 26년간 제작된 작품들은 세계 주요 영화제와 시네마테크, 미술관 등에서 꾸준히 소개되고 있다. 올해 프로젝트는 한국과 해외 작품 각 한 편을 선정했으며, 그 중 국내작인 <리틀 라이프>는 다수의 단편을 연출해 온 김용천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작품은 비극적인 사건 이후 삶의 균열을 겪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고통의 재현보다 관계와 몸의 표현을 통한 회복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영화는 부모의 비극적 사건에서 홀로 살아남은 열한 살 소녀 은하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던 은하는 일시 보호소에서 만난 보라와 친구가 되며 처음으로 위로를 경험한다. 두 사람은 ‘물고기 춤’이라는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가지만, 보라가 다시 가족에게 돌아가게 되면서 이별을 맞는다. 이후 상실감에 빠진 은하에게 이모 자영이 새로운 선택을 제안하며 이야기는 또 다른 국면을 맞는다. 이날 GV에서 김 감독은 영화의 제작 계기에 대해 “아이들의 춤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던 중 아동 관련 비극적인 사건 뉴스를 접하게 됐다”며 “만약 그 아이가 살아 있었다면 평범하게 춤추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지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이어 “비슷한 사건을 연이어 접하면서 이를 영화로 풀어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현실에서는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선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영화 속에서는 그 불가능한 선택을 가능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를 통해 관객들이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길 바랐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제목 ‘리틀 라이프’에 대해서는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삶이라도 그 안에서 점차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며 “세 인물이 머물 곳을 찾지 못한 채 이동하는 여정을 하나의 로드무비 형식으로 담았다”고 말했다. 아역 배우들과의 작업 방식에 대해서는 “아이들을 속이지 않고 상황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했다”며 “대사를 교정하기보다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감정과 표현을 살리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배우 박수아 양은 주인공, 은하 역에 대해 “전반적으로 슬픔을 안고 있는 인물이지만 친구 ‘보라’를 잃는 순간 특히 큰 감정을 느꼈을 것”이라며 “질문을 받는 장면들이 많아 감정적으로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김혜원 양은 보라에 대해 “어른들이 하지 못하는 말을 대신하는 인물”이라며 “영화 속에서 ‘여기 와야 할 건 우리가 아니라 어른들’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한편 김 감독은 차기작으로 관계 속 ‘중독’을 주제로 한 작품을 구상 중이라며 “사랑과 도박 등 다양한 관계 속에서 다시 삶을 회복해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고 밝혔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영화의 역사와 미학을 확장하는 강연 프로그램으로 관객과의 접점을 넓혔다. 지난 3일 CGV전주고사에서 열린 ‘영화로의 여행’은 단순한 상영을 넘어 영화사의 이면을 탐색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이날 강연은 ‘사적 혁명, 공적 공간: M+ 아시아 아방가르드 필름 컬렉션’을 주제로, 홍콩 현대미술관 M+의 큐레이터 샤넬 콩이 참여해 아시아 실험영화의 맥락과 의미를 짚었다. 샤넬 콩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아시아 각국에서 제작된 실험영화와 비디오아트를 중심으로,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변동 속에서 탄생한 작품들을 소개했다. 그는 “아시아 영상 예술의 역사는 여전히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다”며 “큐레이토리얼 연구와 복원, 국제적 협력을 통해 공백을 메우는 것이 M+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한국, 대만, 필리핀 등지에서 계엄령 시기 제작된 작품들을 통해 ‘저항의 이미지’를 조망했다. 특히 한옥희 감독의 <무제 77-A>는 카메라와 신체를 무기로 삼아 가부장적 질서와 검열에 맞선 실험영화로 주목받았다. 1970년대 한국 최초의 여성영화 집단 ‘카이두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한 한옥희의 작업은 남성 중심 영화 산업에 균열을 낸 사례로 평가된다. 또 대만 작가 천제런의 <기능장애 No.3>는 공공 시위가 금지된 시대, 거리 퍼포먼스를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드러낸 작품이다. 필리핀 감독 닉 데오캄포의 <혁명은 노래 후렴처럼 돌아온다>는 개인의 기억과 역사적 사건을 교차시키며,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흐름을 담아냈다. 강연에서는 이들 작품이 단순한 영화가 아닌 ‘행위’이자 ‘기록’으로 기능한다는 점도 강조됐다. 예술가들은 검열과 통제 속에서 신체와 도시 공간을 매개로 저항을 수행했고, 이는 아방가르드 영화의 중요한 축을 형성했다는 설명이다. 샤넬 콩은 “많은 작품이 보존의 한계로 잊혀질 위기에 놓여 있다”며 “복원과 재상영을 통해 새로운 영화사 속에서 재맥락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번 상영작 상당수는 M+의 복원 프로젝트를 통해 디지털화돼 공개됐다.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아방가르드 영화의 접근성과 이해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이에 대해 그는 “미디어테크와 국제 상영 프로그램을 통해 누구나 작품을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다양한 형식과 서사를 통해 관객과의 접점을 넓혀가겠다”고 말했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지난 달 29일 개막해 열흘간의 여정을 이어가는 가운데, 지난 4일을 기점으로 반환점을 돌았다. 관객 호응 속에 순항하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현장에서는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게 감지된다. 영화제 중반부를 맞아 현재까지의 성과와 분위기, 과제를 짚어본다. △ 수치로 본 ‘순항’…좌석·굿즈·골목상영 모두 상승세 영화제 측 집계에 따르면 개막 이후 5일간(4월 29일~5월 3일) 좌석 점유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3% 증가했다. 총 324회 상영 중 278회가 매진되며 높은 관람 열기를 입증했다. 굿즈 판매 역시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였다. 전년 대비 27.2% 증가했으며, 금속 배지와 키링, 에코백, 스트링백, 티셔츠 등이 인기를 끌었다. 공식 굿즈 판매처에는 오픈 전부터 평균 100명 안팎의 대기줄이 형성됐고, 어린이날 연휴가 낀 지난 2일에는 최대 120명까지 몰리며 ‘오픈런’ 현상이 이어졌다. 도심 곳곳에서 진행된 ‘골목상영’도 흥행을 견인했다. 4일간 총 9회 상영에 2809명이 찾았고, 회차당 평균 300명 이상이 관람했다. 치평주차장과 풍남문, 전주중앙교회 광장 등 생활 밀착형 공간에서의 상영이 관객 접근성을 높였다는 평가다. △ 거리 위에서 완성된 영화제…자발적 참여가 만든 ‘낭만’ 올해 영화제의 또 다른 풍경은 공식 프로그램 밖에서 발견됐다. 영화제에 출품하지 않은 창작자들이 거리에서 직접 제작한 영화 포스터를 판매하며 관객과 만났고, 영화의거리 일대는 자연스러운 교류의 장으로 확장됐다. 지난 4일 낮, CGV 전주고사 앞에서는 가수 조준호의 깜짝 버스킹이 펼쳐져 발길을 멈추게 했다. 별도의 무대 없이도 관객이 모이고, 음악과 영화가 어우러지는 장면은 영화제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또 영화의거리 곳곳에서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플래카드와 전단지가 눈에 띄었고, 객사 일대 편집숍에서는 자체적으로 영화제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는 등 민간 차원의 참여도 활발했다. 조직위원회 중심의 행사 운영을 넘어, 시민과 창작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확장된 영화제’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볼거리는 줄었다”…집중화 전략, 해법일까 한계일까 반면 행사 구성에 대한 아쉬움도 적지 않다. 올해 영화제는 전주영화의거리와 문화공판장 작당 등을 중심으로 주요 프로그램을 집중 배치하면서 동선은 한층 간결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관객 입장에서는 이동 부담이 줄고, 핵심 공간에 밀집된 분위기를 체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로 읽힌다. 다만 이러한 집중화 전략이 곧바로 ‘풍성한 볼거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전주시 전역으로 확장되며 다양한 장소에서 펼쳐졌던 프로그램과 비교할 때, 올해는 체감 콘텐츠가 오히려 줄어든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결국 질문은 여기에 닿는다. 행사 공간이 넓어야만 볼거리가 많아지는 것인가. 혹은 제한된 공간 안에서도 얼마나 다층적인 콘텐츠를 채워 넣느냐가 더 중요한 것은 아닌가. 현재의 운영 방식은 효율성과 밀도를 택한 대신, 관객이 머무르며 즐길 수 있는 ‘층위의 다양성’에서는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 반복되는 주차·통제 문제…현장 대응은 여전히 과제 고질적인 교통·안전 문제도 여전히 드러났다. 영화의거리 일대는 행사 기간 내내 차량 정체가 반복됐고, 보행자와 차량이 뒤엉키는 위험 상황도 목격됐다. 특히 이른 아침부터 관객이 몰리는 현실과 달리, 차량 통제 인력 투입은 오전 10시 이후에 이뤄지면서 현장 대응의 공백이 발생했다. 자원봉사자 ‘지프지기’가 통제에 나섰지만, 시간대별 관람객 흐름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운영이라는 지적이다. 주차 공간 부족 역시 불편을 키웠다. 영화제 접근성이 높은 영화의거리 인근에 차량이 집중되면서 방문객들의 불만이 이어졌고, 일부 관람객은 상영 시간에 맞추지 못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전주국제영화제를 대표하는 토크 프로그램 ‘전주톡톡’이 올해도 관객과의 접점을 넓히며 의미 있는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영화와 영화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콘텐츠의 뒷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 프로그램은 가벼운 형식 속에서도 창작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내며 호응을 얻고 있다. 올해 ‘전주톡톡’은 전주 지역 유일의 향토 영화관인 ‘전주시네마타운’에서 진행됐다. 지역 극장이 지닌 역사성과 상징성을 바탕으로 영화제 관객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문화적 연대를 확장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지난 3일 열린 ‘전주톡톡 9 – 전주메이커스: 빛나는 포스터란 말이죠’에서는 영화 포스터 디자인을 주제로 한 직업 탐구형 토크가 펼쳐졌다. ‘처음 만나는 영화의 얼굴’로 불리는 포스터의 제작 과정과 그 안에 담긴 고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날 행사에는 디자인 스튜디오 ‘빛나는’의 박시영 대표가 게스트로 참여하고, 영화웹진 ‘리버스’ 차한비 기자가 모더레이터를 맡아 대화를 이끌었다. 박 대표는 포스터를 단순한 홍보물이 아닌, 관객의 감정과 만나는 매개로 규정했다. 그는 “포스터는 영화의 내용을 설명하기보다 영화를 본 뒤 관객이 느끼는 감정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이라며 “개인적인 감상이 오히려 더 큰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상업 영화 포스터 제작 과정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제약을 창작의 중요한 요소로 짚었다. 배우, 예산, 시각적 조건 등 한계 속에서 관객과의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일종의 퍼즐과 같다는 설명이다. 그는 “표현할 수 있는 요소가 부족할수록 관객과의 연결 방식을 더 치밀하게 고민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좋은 포스터의 기준에 대해서는 ‘관객 중심’을 꼽았다. 창작자의 의도만을 앞세운 결과물이 아닌, 보는 이와의 관계를 형성하는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디자인 환경의 변화에 대한 의견도 제시됐다. 박 대표는 인공지능(AI)에 대해 “새로운 도구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기초적인 역량이 갖춰진 뒤 활용해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이나 트렌드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욕망과 감정”이라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시야를 넓히는 것이 결국 설득력 있는 작업으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주톡톡’은 영화 포스터라는 익숙한 매체를 통해 창작의 본질을 짚고,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창작자가 가져야 할 태도를 되짚는 자리로 마무리됐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의 특별 프로그램 ‘전주와이드토크’가 지난 4일 오전 CGV전주고사 3관에서 열렸다. 이날 현장에서는 <지축의 밤>을 연출한 장건재 감독과 배우들이 참석해 작품의 제작 과정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관객과 공유했다. 평일 오전 시간대임에도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상영 직후 이어진 대화에서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사회를 맡은 차한비 기자는 “촬영 현장을 배경으로 두 영화가 교차하는 구조가 인상적”이라며 대화를 이끌었다. 작품은 서로 다른 두 감독이 각자의 연애를 영화로 옮기는 과정을 따라가며,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허문다. 특히 두 촬영팀이 우연히 마주치는 장면과 결말부의 여운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장 감독은 “영화 속 마지막 장면은 ‘춘분’이라는 제목처럼 서로 다른 시간이 만나는 순간을 담은 것”이라며 “눈이 오길 바라는 마음 역시 영화가 품은 기다림의 감정”이라고 설명했다. 독립 영화의 촬영 현장을 배경으로 삼은 이유에 대해서는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순간을 그리고 싶었다”며 “영화를 찍는 사람들이 다른 촬영팀을 우연히 만난다면 어떤 감정일지 상상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현장 작업 방식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배우들은 “리허설을 충분히 거친 뒤 촬영에 들어가 현장에서의 자유도를 일부 열어두는 방식이었다”며 “실제 촬영팀처럼 몰입해 작업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일부 배우들이 감독과 스태프로도 참여한 점이 언급되며, 영화의 ‘공동 창작’ 성격이 강조됐다. 극 중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 지축역에 대해서 장 감독은 “특별히 찾은 장소라기보다 일상적으로 관찰해온 공간”이라며 “신도시의 과거와 현재가 겹쳐 있는 풍경이 영화의 정서와 맞닿아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전주와이드토크는 후지필름코리아의 제작 지원으로 완성된 작품을 중심으로, 영화와 기업의 협업이 창작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조명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장 감독은 “영화가 특별한 이야기를 하기보다, 잘 드러나지 않았던 순간들을 섬세하게 담고 싶었다”며 “관객 각자가 느낀 감정이 다음 작업의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7시부터 텐트 배정 시작입니다.” 2일 오후 6시, 전라감영 서편부지. 아직 해가 완전히 지기도 전인데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코오롱스포츠 아웃도어 시네마 텐트 좌석을 얻기 위한 사람들이다.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도 줄은 제법 길었고, 얼핏 봐도 40명 남짓은 되어 보였다. “이 줄 뭐예요?”라고 묻는 사람, 긴 줄을 보고 아예 발길을 돌리는 사람, 그래도 일단 줄 끝에 서보는 사람까지. 현장에선 시작 전부터 작은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줄을 선 사람들의 얼굴도 다양했다. 손을 꼭 잡은 연인, 돗자리를 챙긴 친구들, 아이 손을 잡은 가족 단위 관객들까지. 2인용, 3인용, 4인용 텐트가 준비됐다는 소식에 저마다 어떤 자리를 배정받게 될지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일부는 담요를 들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과자 봉지를 미리 챙겨왔다. “제대로 캠핑하려고요”라는 웃음 섞인 말도 들렸다. 오후 7시, 드디어 배정 시작. 텐트를 배정받은 사람들은 빠르게 자신들의 공간으로 향했다. 텐트 안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순간 분위기는 극장이 아니라 작은 캠핑장에 가까웠다. 돗자리에 기대앉거나 아예 몸을 눕히고, 텐트 입구 사이로 전라감영의 저녁 풍경을 바라보는 순간 “우와, 진짜 좋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입장과 함께 나눠준 과자와 음료도 분위기를 살렸다. 익숙한 팝콘과 콜라 대신 손에 쥔 간식 꾸러미는 마치 소풍 선물 같았다. 텐트 안에서 과자를 나눠 먹고, 음료를 마시며 스크린이 켜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영화 시작 전인데도 이미 충분히 즐거웠다. 텐트를 배정받지 못한 사람들도 아쉬워할 필요는 없었다. 행사장 한편에는 개인 돗자리와 접이식 의자를 가져와 자리를 잡은 관객들도 적지 않았다. 준비된 좌석 여부와 상관없이 각자의 방식으로 공간을 만들고 봄밤 야외상영을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전라감영 서편부지는 그렇게 누구에게나 열린 거대한 야외 극장이 됐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야외상영의 약점’이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쌀쌀한 밤공기와 날벌레. 늘 야외 영화에서 감수해야 했던 요소들이 텐트 안에서는 훨씬 덜했다. 실제로 친구 추천으로 처음 영화제를 찾았다는 관람객 하누리(32·전주) 씨는 “야외상영은 분위기는 좋은데 추위나 벌레 때문에 망설여졌었다”며 “그런데 텐트 안은 바람도 막아주고 훨씬 아늑해서 생각보다 훨씬 좋다. 처음 전주국제영화제에 왔는데 이런 프로그램까지 즐겨서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이날 상영작은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의 <플로우>. 인간이 사라진 세계, 대홍수 속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고양이가 낡은 배에 올라 다양한 동물들과 함께 모험을 이어가는 이야기다. 전체관람가답게 아이부터 어른까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고, 파도 위를 헤쳐나가는 고양이의 여정은 전라감영의 밤공기와 묘하게 어우러졌다. 스크린을 바라보다 문득 텐트 밖으로 고개를 내밀면, 역사 공간 위로 내려앉은 봄밤과 사람들의 작은 웃음소리가 함께했다. 극장 의자 대신 돗자리, 팝콘 대신 과자, 실내 상영관 대신 텐트. 익숙한 영화 관람의 공식이 바뀌자 영화제의 밤은 훨씬 풍성해졌다. 줄을 서는 순간부터, 텐트 안에 자리를 잡고 과자를 뜯는 순간까지. 이날의 아웃도어 시네마는 단순히 영화를 보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봄밤의 공기와 공간, 사람들까지 함께 체험하는 또 하나의 영화제였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왜 ‘영화를 넘어 경험의 축제’로 불리는지, 그 이유를 가장 따뜻하게 보여준 현장이었다.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화려한 레드카펫의 조명이 꺼진 뒤편에서 지역 영화 산업의 생존을 고민하는 날카로운 정책 제언이 쏟아졌다. 지난 1일 전주중부비전센터에서 열린 ‘넥스트 시네마: 2026 지방선거, 씬의 전환과 생태계 설계’ 정책 포럼은 위기에 처한 한국 영화 생태계의 복원을 위해 중앙과 지역의 유기적인 협업과 관객 중심의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영화계의 주요 현안과 동시대 사회적 이슈를 함께 조망하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 있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전주포럼 2026’의 일환으로 마련된 이날 포럼은 네 명의 전문가 발제를 통해 지역 영화계가 직면한 입체적인 문제들을 짚어나갔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박채은 독립미디어연구소 공동대표는 한국 독립예술영화의 개봉 편수 점유율(7.5%)에 비해 턱없이 낮은 관객 점유율(1.2%)을 지적하며 포문을 열었다. 박 대표는 이를 두고 “관객의 취향 문제가 아니라, 영화를 만날 수 있는 물리적 조건 자체가 거세된 구조적 결함”이라고 날카롭게 꼬집었다. 관객이 보고 싶어도 볼 수 있는 극장이 없고, 상영 시간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점유율을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생태계가 외부 지원 없이 스스로 굴러갈 수 있는 최소한의 ‘자생 임계점’으로 관객 점유율 10% 달성을 제안하며, 이를 위한 파격적인 수요 중심 정책을 주문했다. 이어 최낙용 한국예술영화관협회 회장은 인프라 격차 해소를 위한 구체적인 수치를 던졌다. 최 회장은 “인구 30만 명당 1개 스크린 운영을 목표로, 전국에 최소 100개의 공공 독립영화 스크린을 확보해야 한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특히 전북과 같은 지역은 수도권(전용관 점유율 76.2%)에 비해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만큼, 지역별 접근성 차이를 좁히기 위한 지자체 차원의 맞춤형 스크린 확보 전략이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행정적·제작적 측면에서도 뼈아픈 자성이 이어졌다. 세 번째 발제자로 나선 서수민 한국영상위원회 팀장은 지역 영상 정책의 컨트롤타워인 영상위원회의 역할을 재점검했다. 서 팀장은 예산은 10년 전 수준에 멈춰 있는데 사업 영역만 무한 확장되는 지역 영상위의 ‘과부하’ 상태를 지적하며, 정책적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거버넌스 재구조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마지막 발제자인 한진 PGK(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국제위원회 디렉터는 대만 가오슝의 사례를 통해 지역 영화의 미래상을 제시했다. 한 디렉터는 지역이 단순히 영화 촬영 장소를 빌려주는 ‘로케이션 서비스’ 단계에서 벗어나, 해외 프로젝트를 직접 유치하고 공동 제작을 주도하는 ‘글로벌 공동 제작 허브’로 거듭나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는 지역 영화 산업이 일회성 행사를 넘어 지속 가능한 경제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발제 이후 이어진 토론에서는 2026년 지방선거를 정책 전환의 변곡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절박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토론자들은 예산 부족과 사업 파편화로 동력을 잃어가는 지역 영화계의 현실을 성토하며, 중앙 정부(영진위)와 지자체 간의 유기적인 거버넌스 구축이 생존의 열쇠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참석자들은 지자체가 영화계를 단순히 보조금 수혜 대상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의 목소리가 행정 실무에 즉각 반영될 수 있도록 지자체가 ‘생태계 설계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핵심은 ‘사람’과 ‘공간’이다. 이번 포럼은 영화제가 끝난 뒤에도 전주의 극장가와 제작 현장에 온기가 돌게 할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묵직한 숙제를 남겼다. 다가올 지방선거에서 전주의 영화 정책이 어떤 ‘씬(Scene)’으로 전환될지 지역 영화인들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풀잎에 반짝입니다. 간밤에 내린 빗방울이 둥그렇게 웅크렸네요. 열 달 어머니의 방도 둥글었습니다. 자주 먼산바라기를 하시던 할머니의 등처럼 둥근 골목, 돌담 틈에 숨겨둔 유리구슬이 둥글게 반짝였지요. 쓰러지는 쪽으로 핸들을 꺾으라던 자전거도 바퀴가 둥글었고요. 신태인역에서 대처까지 나를 데려다준 비둘기호 열차도 뚜우- 뚜우- 둥글게 기적을 울렸습니다. 세상이 둥글었습니다. 밤마다 두 눈을 찔러대던 먼 별은 사금파리였습니다. 소나기 그친 뒤 무지개는 언제나 반만 내려왔고요. 둥글둥글 자갈거리며 굴러가는 길이 지름길이란 걸 알아챘을 땐 나는 이미 둥글지 않았습니다. 둥근 세상에 모난 나, 모서리를 깎고 갈아냈어야 한다는 걸 이제 와 압니다. 비 갠 아침 산책길에 수비둘기 한 마리 둥그렇게 암컷 주위를 맴도네요. 목털을 부풀리고 날개깃을 끌며 빙빙 빙 돌아갑니다. 언제쯤 입 맞추려나? 궁금해 둥그렇게 꽃대 밀어 올린 민들레, 하얀 꽃씨가 멀리멀리 퍼져나갈 것입니다. 아닌 바퀴로도 절로 굴러가는 건 둥근 시계 속 세월뿐입니다.
“아침부터 부지런 떨어서 나오길 잘한 것 같아요. 오늘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행복해요.”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JIFF) 3일차이자 근로자의 날 연휴가 시작된 1일 오전, 전주영화의거리는 쌀쌀한 봄바람마저 밀어낼 만큼 뜨거운 영화 열기로 가득했다. 오전 기온은 10도 안팎에 머물며 다소 서늘했지만, 영화제를 찾은 씨네필들의 발걸음은 이른 시간부터 끊이지 않았다. 이날 오전 8시 50분께 현장 예매와 아카데미 배지 발권이 가능한 J라운지 앞. 오픈까지 10여 분이 남았음에도 입구에는 이미 30여 명의 관람객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다. 경량 패딩과 두꺼운 외투로 무장한 이들의 얼굴에는 추위보다 기대감이 먼저 묻어났다. 오픈 한 시간 전부터 줄을 섰다는 한 관람객은 “평소 같으면 일어나기 힘든 시간이지만 꼭 보고 싶은 작품이 있어 서둘러 나왔다”며 “1등으로 기다리고 있으니 뿌듯하다. 이번 연휴 동안 매일 영화를 볼 생각에 설렌다”고 웃었다. J라운지에서 약 50m 떨어진 공식 굿즈샵 앞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오전 9시부터 형성된 대기 줄은 길 모퉁이를 따라 이어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방문객이 몰리며 전주국제영화제의 높은 인기를 실감케 했다. 줄을 지켜보던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JIFF 굿즈샵 줄 맞나 봐”, “사람 진짜 많다”는 반응과 함께 “어제 미리 살걸”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올해 굿즈샵은 MZ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키캡 키링부터 전주국제영화제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폐스크린 업사이클링 상품인 미니 크로스백, 파우치, 카드지갑 등 실용성과 상징성을 모두 갖춘 상품들로 채워졌다. 지난해보다 넓어진 공간 구성 역시 방문객들의 쇼핑 편의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친구와 함께 광주에서 전주를 찾은 이나연(23·광주) 씨는 “성인이 된 뒤 매년 이 시기 전주국제영화제를 찾고 있다”며 “올해도 JIFF에서만 살 수 있는 굿즈를 구하게 돼 만족스럽다. 내년 축제도 벌써 기대된다”고 말했다. 양손 가득 굿즈를 들고 매장을 나서는 방문객들의 표정에는 만족감이 역력했다. 매장 유리창에 전시된 상품 목록을 구경하며 발걸음을 멈추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지자 영화의거리 곳곳은 더욱 분주해졌다. 각 상영관으로 향하는 관객들의 움직임이 빨라졌고, 이른 일정에 간단한 식사를 해결하려는 방문객들로 인근 편의점과 카페 역시 활기를 띠었다. 상영관 로비마다 티켓을 확인하거나 다음 일정을 살피는 사람들로 북적이며 본격적인 연휴 첫날 영화제의 풍경을 완성했다. 특히 유니버설 픽처스 특별프로그램 ‘슈퍼마리오 갤럭시-인 전주’ 팝업스토어 행사장 주변은 시작 전부터 어린이 관람객과 가족 단위 방문객들로 붐볐다. 행사장 앞 빈백 공간은 부모와 아이, 조부모까지 함께한 가족 관람객들로 일찌감치 채워지며 세대를 아우르는 축제의 면모를 보여줬다. 차가운 아침 공기와는 달리, 스크린을 향한 관객들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영화 예매 줄에서, 굿즈샵 앞에서, 상영관 로비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 근로자의 날 연휴 첫날, 전주영화의거리는 ‘영화’라는 이름 아래 다시 한번 가장 생기 넘치는 도시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오는 8일까지 전주영화의거리를 비롯한 전주시 일대에서 계속된다.
"보통 선배 배우들이 후배한테 배역이나 연기에 관해 한두 마디 하실 법한데 그런 말보다는, 조용히 편안하게 제 앞에서 앉거나 서 계셨어요. 그 모습 자체가 굉장히 든든했습니다." (박해일) "모든 배우와 스태프를 예뻐해 주시고 소외되는 누군가 있으면 안 된다고 걱정하신 것 같아요. 큰 나무처럼 주변을 살피시고 저희는 그 그늘에서 잘 쉬었습니다." (한예리)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특별전 '조금 낯선 안성기를 만나다'에 참여한 배우 박해일과 한예리는 고(故) 안성기를 태산처럼 든든했던 선배 배우로 기억했다. 박해일은 30일 CGV 전주고사에서 열린 안성기 출연 영화 '필름시대사랑'(2015)의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선배님은 매력적인 미소와 주름을 갖고 계신다. 제가 그 주름을 되게 좋아한다"며 "미소와 단단하고 차분했던 눈빛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필름시대사랑'은 정신병동에 입원한 할아버지와 손녀, 영화 조명팀 스태프의 여정을 통해 사랑과 필름에 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2018)와 '춘몽'(2016) 등을 만든 장률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안성기는 정신병동에 있는 할아버지 역을 맡았다. 한예리는 그런 할아버지의 손녀 역으로, 박해일은 조명팀 스태프 역으로 호흡을 맞췄다. 박해일은 2022년 개봉한 '한산: 용의 출현'으로 안성기를 다시 만났을 때도 든든한 존재감을 느꼈다고 돌아봤다. 이 영화에서 그는 이순신 역을, 안성기는 이순신을 보좌한 어영담 역을 연기했다. 박해일은 "조선 수군의 갑옷을 입으시고 딱 모니터 앞에 앉아 계시는데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며 "단지 그분이 계신다는 이유로 모든 영화인이 에너지나 신뢰를 가졌다"고 했다. 한예리는 '필름시대사랑' 속 인물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나오는 장면에서, 안성기 목소리가 지닌 힘으로 그림이 그려지는 경험을 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사운드만 나오는 마지막 장(章)을 볼 때 대사 때문에 그림이 보이는 게 신기했다"며 "보이스가 주는 힘 때문에 생동감 있게 보이는 게 재밌었다"고 말했다. 당시 안성기와의 호흡에 관해서는 "정말 편하게 대해주시고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려고 노력하시던 기억이 난다"며 "불편한 것 없이 정말 다정한 사람과 연기를 했다"고 했다. '필름시대사랑'은 장률 감독이 서울노인영화제로부터 제안받고 만든 작품이다. 장률 감독은 "처음에는 거절했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노인영화제를 거절하면 노인을 거절하는 것 같았다. 그 부담에 하게 됐다"며 "안성기 배우에게도 출연을 부탁할 때 '선배님 저를 거절하는 건 괜찮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거절하는 건 한국의 노인을 거절하는 겁니다'라고 협박 비슷하게 했다"며 웃음을 보였다. 작업할 때 배우들과 대화를 많이 하지 않는다는 장률 감독은 안성기에게도 딱 한 가지만 부탁했다. 연기할 때 껍질이 길게 남도록 사과를 깎아달라는 것이었다. 장률 감독은 "연습하시라고 사과 한 박스를 보냈다"며 "그랬더니 안성기 선배님이 '원래 잘 깎는다'며 직접 하셨는데 실제 잘 깎으셨다"고 떠올렸다. 그는 영화에서 안성기가 '들리는가'라고 말하는 부분을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꼽았다. 극 중 안성기가 연기한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허공에 손짓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행동을 한다. 장률 감독은 "안성기 선배님이 그런 말씀을 하면 믿음이 간다. 정말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며 "안성기 선배님은 필름 시대와 디지털 시대를 다 겪었고 따뜻한 사람이다. 영화의 정서와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안성기 특별전은 '필름시대사랑'을 비롯해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남자는 괴로워'(1994), '이방인'(1998) 등 7편을 상영한다. 다음 달 1일 '페어러브'(2009) 상영에는 신연식 감독, 3일 '잠자는 남자'(1996)는 오구리 고헤이 감독, 6일 '부러진 화살'(2011)에는 정지영 감독이 함께해 관객과 대화를 나눈다. 박해일은 "배우 입장에서 보면 생을 다해도 필름은 남는다"며 "안성기 선배님의 조금 낯선 영화를 영화제 안에서 즐겨보시는 것도 권해드린다"고 했다.
한국 독립·여성영화계의 대표 감독 변영주가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로 관객과 만난다.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는 전주국제영화제만의 대표 섹션으로, 각 분야 영화인을 선정해 자신의 영화적 시각과 취향이 담긴 작품들을 직접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2022년 배우 류현경을 시작으로 연상호 감독, 배우 백현진, 허진호 감독, 배우 이정현에 이어 올해 여섯 번째 주인공으로 변영주 감독이 이름을 올렸다. 변 감독은 1989년 여성영화집단 ‘바리터’ 창립 멤버로 활동하며 한국 여성주의 영화운동의 흐름을 함께 만들었고,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낮은 목소리> 연작 등을 통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기록해왔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삶을 담아낸 <낮은 목소리>는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사의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된다. 30일 중부비전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변 감독은 이번 섹션을 통해 자신의 창작 인생에 영향을 준 다섯 편의 영화를 소개했다. 선정작은 변 감독의 <낮은 목소리2>, <화차>, 데이비드 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 오가와 신스케의 <청년의 바다>, 장피에르 다르덴·뤼크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이다. 변 감독은 “프로그래머 제안을 받고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은 <아라비아의 로렌스>였다”며 “어린 시절 ‘나도 저런 세계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하며 인생의 방향을 바꾼 영화”라고 말했다. 이어 “오가와 신스케 감독의 <청년의 바다> 역시 청년 시절 제게 큰 영향을 준 작품”이라며 “서로 방식은 다르지만 세상을 이해하려 했던 감독들의 작품, 그리고 지금 다시 관객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들을 골랐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가장 기대되는 작품으로 꼽으며 극장 관람의 의미를 강조했다. 변 감독은 “OTT와 개인 공간에서의 감상과 달리 스크린에서 느끼는 압도감은 완전히 다르다”며 “인터미션까지 포함된 긴 러닝타임 자체가 특별한 체험이고, 이런 경험은 지금 시대에 극장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날 변 감독은 OTT 시대 속 영화제의 역할에 대한 소신도 밝혔다. 그는 “이제 영화가 더 이상 대중문화의 중심만은 아닐 수 있지만, 극장에서 함께 보고 서로 다른 감정을 안고 나오는 공동체적 경험은 여전히 특별하다”며 “영화제는 그런 경험을 다시 뜨겁게 만드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주와의 인연도 남달랐다. 변 감독은 “전주국제영화제 초창기 전주 지역 영화사를 기록하는 작업으로 1년 가까이 머문 적이 있다”며 “당시 전주는 ‘영화의 도시’라는 흔적이 분명했고, 27년 뒤 다시 찾은 전주에서도 그 기억이 생생해 울컥했다”고 회상했다. 사회적 질문을 놓지 않는 시선, 그리고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깊은 애정을 동시에 보여준 변영주 감독의 ‘J 스페셜’은 그의 창작 세계를 돌아보는 동시에, 오늘날 영화가 관객과 어떻게 다시 만나야 하는지를 묻는 특별한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스물일곱 번째 화려한 막을 올리며 ‘영화의 도시’ 전주의 밤을 달궜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이 29일 저녁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국내외 영화인과 시민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개최됐다. 개막식에 앞서 진행된 레드카펫 행사에는 조직위원장 우범기 전주시장과 민성욱·정준호 공동집행위원을 비롯해 배종옥, 김현주, 고아성, 채정안 등 우아한 자태를 뽐낸 배우들이 등장해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또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올해의 프로그래머인 변영주 영화감독, 임순례 감독, 배우 권해효·윤종훈 등 100여 명의 영화계 인사가 총출동해 전주의 스물일곱 번째 생일을 축하했다. 배우 신현준과 고원희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개막식은 민성욱·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의 개막 선언으로 열흘간의 영화 축제를 본격화했다. 특히 올해 개막식에서는 한국 영화계의 큰 별 고(故) 안성기 배우가 특별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돼 그 의미를 더했다. 시상식에는 고인의 아들 안필립 씨가 무대에 올라 대리 수상하며 부친이 한국 영화사에 남긴 깊은 발자취를 다시 한번 되새겼다. 개막작으로는 루켄트 존스 감독의 예술가의 고뇌를 우화적으로 담아낸 작품인 <나의 사적인 예술가>가 상영됐다. 올해 영화제는 ‘파괴와 실험’이라는 아방가르드 정신을 전면에 내세워 54개국 237편의 초청작을 선보인다. 특별 프로그램인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에는 변영주 감독이 참여하며, 김성오·한선화 등 고스트스튜디오 소속 배우들이 함께하는 ‘전주X마중’ 프로젝트도 영화제의 열기를 더할 전망이다. 한편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는 다음 달 8일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서 폐막작 <남태령> 상영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김현지 감독의 다큐멘터리인 <남태령>은 2024년 12·3 내란 사태 당시의 긴박한 순간을 2030 여성들의 시선으로 담아내 폐막까지 뜨거운 화제를 모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영화의 핵심에는 시(詩)가 있습니다. 단순히 예술가의 삶이나 창작의 과정이 아닌 ‘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작품입니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나의 사적인 예술가>를 연출한 켄트 존스 감독은 29일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작품의 출발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시적인 분위기를 차용하거나 아름다운 문장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시인의 목소리와 실제 시가 가진 감각을 관객에게 온전히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1시 30분부터 진행된 개막작 기자시사와 기자회견에는 민성욱·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 문성경 프로그래머를 비롯해 켄트 존스 감독과 배우 그레타 리가 참석해 영화와 작품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개막작 <나의 사적인 예술가>는 예술을 배경으로 잊혀진 한 예술가의 삶에 찾아온 변화와 전환점을 그린 작품이다. 한 개인의 사적인 서사를 따라가면서도 예술과 현실, 꿈과 생존이 교차하는 지점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 당시 호평을 받은 작품으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문을 여는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관심을 모았다. 켄트 존스 감독은 자신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에 대해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보다 그 이면의 진짜 삶에 더 관심이 있다”며 “인간의 일상, 깨져버리는 환상,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기적 같은 순간들을 포착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영화 역시 꿈과 환상, 현실이 충돌하는 과정을 통해 삶의 진짜 모습을 들여다보려 했다”고 덧붙였다. 개막작 선정 이유에 대해 민성욱 공동집행위원장은 “이 영화는 예술을 배경으로 하지만 결국 한 인간의 삶과 변화, 그리고 현실을 함께 비추는 작품”이라며 “주인공의 인생에 찾아온 변화와 그 과정 속 사적인 서사가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과 울림을 줄 것이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또 “시와 유머, 따뜻한 시선이 공존하는 이 작품은 특별한 예술가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보편성까지 담아낸다”며 “예술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생의 복잡성과 아름다움, 현실적 고민을 함께 보여준다는 점에서 올해 영화제의 시작을 알릴 작품으로 적합했다”고 말했다. 배우 그레타 리 역시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영화는 어린 시절부터 세상과 나를 연결해준 통로였다”며 “이 작품은 예술과 삶, 개인의 내면이 얼마나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특히 그는 한국 영화에 대한 깊은 관심도 함께 전하며 전주국제영화제 참석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강조했다. 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은 이날 영화제가 가진 역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영화산업이 쉽지 않은 시기일수록 영화제는 새로운 창작자를 발굴하고 세계와 연결하는 플랫폼이 돼야 한다”며 “전주국제영화제가 영화의 예술적 가치와 창작 정신을 지키는 공간으로 기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개막작 <나의 사적인 예술가>는 30일 오후 6시 CGV전주고사 1관과 다음 달 1일 오후 1시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서 상영을 남겨두고 있다. 한편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이날 개막식을 시작으로 다음 달 8일까지 열흘간 영화의거리와 전주시 일대에서 펼쳐진다. 올해 슬로건은 ‘우리는 늘 선을 넘지’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영화와 창작자들이 관객과 만난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쉼 없이 붓을 들어온 원로화가 박종수가 다시 한번 고향의 관람객 앞에 선다. 다음 달 3일까지 전주 교동미술관에서 열리는 박종수 개인전의 주제는 ‘어제와 오늘 사이 - 생명의 노래’다. 이번 전시는 그가 평생을 바쳐 탐구해온 ‘전통’과 그 토대 위에서 꽃피운 ‘현대적 재창조’의 결과물을 한자리에 모은 자리라 할 수 있다. 1980~90년대 오방색 기조의 민화적 풍경으로 한국적 정체성을 탐구했던 작가는 이제 제2의 현실을 추구하는 초현실적 환상의 세계로 진입하며 예술적 지평을 한층 넓힌 모습이다. 전시장을 채운 그의 화폭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완연한 ‘주조색’의 변모였다. 전반기 작품이 강렬한 생명력을 뿜어내는 ‘오방색의 시대’였다면, 후반기인 최근작들은 깊은 사유의 고요함이 배어있는 ‘청색의 시대’를 보여준다. 하늘과 바다를 닮은 은은한 청색조의 배경 위로 불상, 삼족오, 말, 나비 등 이질적인 오브제들이 배치되어 몽환적이고도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박 화백의 작업을 두고 “전통과 현실, 그리고 초현실이라는 담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상상력을 불러오는 작업”이라고 평했다. 실제로 그의 그림은 과거의 기억과 오늘의 현실을 몽타주 기법 등으로 접목하며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지점은 ‘천지인(天地人) 합일’이라는 우리 민족 고유의 상징체계로 꼽힌다. 금빛 삼족오가 푸른 하늘을 가르고 그 아래로 행글라이더를 탄 인간과 갈매기가 어우러지는 광경은,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되는 ‘생태 환경적 평화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김익두 사단법인 민족문화연구소장은 박 화백의 예술 세계에 대해 “전통을 체득하고 그 속에서 독창적인 ‘차이’를 만들어냄으로써 진정한 화가의 자리를 획득했다”며 “이러한 성취는 단순히 과거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온고지신의 정신을 현대적 회화로 구현해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김 소장은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다양한 도상들은 민족적 기호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생명의 노래”라고 덧붙이며 이번 전시가 갖는 미술사적 의미를 짚었다. 고창 출생인 박 작가는 조선대학교 미술교육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해, 지난 1979년 전북예술회관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서울과 광주,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 등 국내외를 넘나들며 380여 회의 전시를 이어온 지역 미술계의 산증인이다. 전북대와 한양여대 강사를 역임하고 고창고와 전북사대부고 등에서 후학 양성에도 힘써온 그는, 2023년 전북 문화예술대상에 이어 2024년 목정문화상 미술부문을 수상하며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현재 상형전 고문과 전북미술대전 초대작가 등으로 활동 중인 그는 이번 교동미술관 개인전을 포함해 총 18회의 개인전을 기록하며 여전히 뜨거운 창작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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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결산] ‘골목상영’부터 ‘가능한 영화’까지
[안성덕 시인의 ‘풍경’] 강낭콩과 빨강 신호등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전라감영 텐트 속, 봄밤의 ‘플로우’
박종수 화백 개인전 ‘어제와 오늘 사이-생명의 노래’
[한자교실] 생애(生涯)
제44회 전국고수대회, 20일 전주 덕진예술회관서 열린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레드카펫 뒤 차가운 현실…지역 영화정책 ‘생존 설계’ 다시 짜야“
['개수작' 어원] 주인·손님이 술을 주고받는 행위서 비롯
故 조옥영 선생 1주기 - 교육혼 불사른 고귀한 열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