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시간을 기억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이에게는 빛바랜 사진 한 장이, 또 어떤 이에게는 가슴속에 새겨진 기억의 파편이 전부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한 도시가 품어온 수백, 수천 년의 거대한 세월은 대체 무엇으로 증명되고 기억될까. 필자는 도심 곳곳에서 묵묵히 숨 쉬며 그 찬란한 시간을 온몸으로 증명해 내는 ‘문화유산’이라고 단언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우리 남원의 심장이자 조선 시대 누각 건축의 정수로 꼽히는 광한루가 대한민국 최고의 권위를 상징하는 ‘국보’ 지정을 예고받았다는 소식은 8만 남원시민의 마음에 깊은 자부심을 새겨주었다.
이는 남원이 간직해 온 역사와 문화의 진정한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았음을 선포하는 기념비적인 사건이자, 남원의 전통문화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갈 준비를 마쳤음을 알리는 거대한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사실 광한루의 시작을 가만히 짚어보면 그 자체로 한 편의 서정시 같다. 1418년 남원에 유배 온 황희 정승이 요천의 아름다운 풍광에 반해 ‘광통루’를 세운 것이 그 시초였으며, 이후 조선 세종 때 정인지가 이곳의 빼어난 경치에 감탄해 전설 속 달나라 궁전인 ‘광한청허부’를 떠올리며 지금의 이름을 붙였다.
여기에 송강 정철과 남원부사 장의국의 손길이 더해져 은하수를 상징하는 호수와 오작교, 삼신산이 어우러진 ‘지상에 구현된 천상의 정원’이 완성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전소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1626년 중건된 이후 올해로 꼭 400년 동안 고유의 아름다움을 단단하게 지켜왔다.
그뿐인가. 광한루가 지닌 독보적인 건축미는 이번 국보 지정의 가치를 더욱 고양시킨다. 중심이 되는 본루와 날개 채인 익루(요선각), 그리고 이를 이어주는 계단식 통로인 월랑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독창적인 구조는 조선 후기 목조건축의 뛰어난 기술력과 미학을 고스란히 품고 있어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여기에 더해진 성춘향 및 이몽룡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남원 광한루원을 중심으로 매년 ‘남원 춘향제’로 피어나며, 대한민국 현존 최고의 축제로서 도시의 정체성을 공고히 지탱해 왔다.
이렇듯 남다른 역사적 의미와 건축미, 탄탄한 문화적 서사가 결합했으니, 이번 국보 지정을 기화로 남원의 문화유산이 국가의 경계를 넘어 세계적 자산으로 당당히 비상할 일만 남았다.
흔히 전통이라고 하면 박물관 유리창 너머에 박제된 유물처럼 보존하는 것에 머무르기 쉽다. 하지만 진정한 문화의 힘은 과거를 지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 우리의 삶과 다정하게 호흡하며 미래의 가치로 확장될 때 비로소 발휘된다.
그런 의미에서 ‘국보 광한루’는 이제 남원의 과거를 증명하는 옛 유산으로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단숨에 끌어올릴 강력한 중심추이자, 남원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디자인할 ‘로컬 브랜딩’의 핵심 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보존을 넘어 국보의 다채로운 현대적 활용을 고민해야 할 때다. 광한루의 서사와 판소리를 하나의 스토리텔링으로 엮어 매력적인 ‘K-콘텐츠’로 정교하게 연결해야 한다. 이처럼 온고지신의 정신을 바탕으로 남원이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도시’로 거듭나는 것이야말로, 지역 소멸을 막고 로컬의 자생력을 키우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바야흐로 로컬이 곧 글로벌인 시대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처럼, 로컬은 이제 도시의 숨은 잠재력을 깨우는 것을 넘어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잇는 가장 강력하고도 따뜻한 전략이 된다.
그렇기에 600년 넘는 깊은 역사와 400년 중건의 기적을 함께 일궈온 8만 남원시민, 그리고 공직자 모두가 다시 한번 다정하게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전통의 품격을 소중히 품은 채 매일 미래로 커가는 도시, ‘국보를 품은 글로벌 문화도시, 남원’의 아름다운 발걸음에 앞으로도 따뜻한 응원의 시선을 보태어주시길 바란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광한루가 세계를 향해 활짝 미소 지을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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