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특집 - 상생과 공존, 도전과 성공] 어제와 오늘의 갈등을 넘어 내일로
갈등. 칡을 뜻하는 ‘갈(葛)’과 등나무를 뜻하는 ‘등(藤)’이 합쳐져 만들어진 이 단어는, 칡덩굴과 등나무 덩굴처럼 엉망으로 뒤엉켜서 일이 풀기 어려운 상태를 가리켜 쓰인다. 처음과 끝이 어디인지, 꼬여버린 매듭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복잡하게 얽힌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득하다. 우리 사회가, 그리고 우리 전북이 당면한 갈등도 마찬가지다. 전북의 미래라 불리는 새만금을 둘러싼 군산·김제·부안 등 지역 갈등, 전주·완주 통합과 관련한 갈등, 옥정호를 둘러싼 임실과 정읍의 갈등을 비롯해 크고 작은 갈등으로 지역 역량이 분산돼 왔다. 다행인 점은 우리 사회에 얽힌 갈등이라는 매듭은 시작점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시작이 어디였는지, 우리가 애초 왜 이 갈등을 시작했는지 찾을 수 있다. 다만, 현재 상황에만 매몰되다 보니 시작점을 찾지 못할 뿐이다. 어제의 우리가 빚었던 갈등을 반면교사 삼아 오늘의 갈등을 넘어 내일로 나아가야 할 때다. 시기는 좋다. 상생 그리고 도전과 혁신을 예고한 민선 8기가 시작된 지 반년이 지났다. 전북일보는 도민들과 함께 갈등의 시작점을 찾고, 그 매듭을 풀게 하는 일에 나서려 한다. 우리는 이 갈등을 풀어야 하고, 능력이 있다. 도민 여러분이 함께해 주신다면, 우리 사회의 갈등을 넘고 상생과 공존으로 함께 갈 수 있다. 생거부안(生居扶安) 방폐장 논란 2003년 1년여 동안 부안, 그리고 전북을 준(準)전시 상태로 몰아넣은 부안 사태가 갈등의 가장 큰 예다. 2003년 7월 당시 김종규 부안군수가 위도에 방폐장 유치를 선언하면서 촉발된 ‘부안 방폐장 사태’. 생거부안(生居扶安·조선시대 암행어사 박문수가 살기 좋은 곳이라는 뜻으로 부안을 지칭한 말)으로 불리던 조용한 농어촌 부안에는 1년여 동안 지속한 갈등으로 큰 상처를 남겼다. 이 사태로 주민 45명이 구속되고 121명이 불구속기소 됐다. 경찰과 주민 500여 명이 중경상을 입어 병원마다 환자가 넘쳐났다. 인구 6만여 명인 부안에 경찰이 1만여 명 가까이 상주할 만큼 준전시 상태였다. 그해 말 부안에 투입된 전·의경 식비 등으로 사용한 전북경찰의 예비비가 100억 원에 육박한다는 자료가 나오기도 했다. 유치 찬반 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증폭됐고, 급기야 김 전 군수가 반대 주민으로부터 폭행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당시 주민투표에서 91.8%가 반대해 일단락됐지만, 방폐장 문제로 지역 공동체까지 산산이 조각났다. 과거와 현재 갈등의 장 ‘새만금’ 전북의 미래라 불리는 새만금은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첨예한 갈등이 대립하는 지역이다. 새만금 방조제 관할권을 놓고 김제시와 군산시, 부안군이 5년여에 걸쳐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전을 펼친 데 이어 새만금 동서도로와 남북도로, 신항만, 수변도시 등을 두고 관할권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행정구역 설정이 새만금을 둘러싼 지자체의 경제적 이익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지난 2020년 11월 개통한 새만금 동서도로는 새만금 2호 방조제(신항만)에서 김제 진봉면(심포항), 새만금~전주 고속도로 시작점까지 20.3㎞를 연결하는 구간으로, 이 도로의 행정구역을 인정받으면 수변도시 등 새만금의 핵심 부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다툼이 극에 달하는 실정이다. 2년여 넘게 행정구역을 정하지 못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1991년 새만금 방조제 착공 이후 환경단체의 반대와 2차례 사업 중단, 그리고 법적 소송과 예산 투쟁 등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진행한 새만금 사업이, 현재도 갈등에 터덕이고 있다. 정읍·임실 옥정호 갈등 정읍시와 임실군에 걸쳐 있는 옥정호를 두고 지속한 양 지역의 갈등이 다시 불거졌다. 임실군이 옥정호 수면개발 계획을 본격화하면서 호수를 상수원으로 이용하는 정읍지역 사회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옥정호를 둘러싼 지역 간 갈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임실군은 지난 1999년 옥정호 상수원보호구역 지정 이후 지역개발과 주민 재산권 행사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보호구역 해제를 전북도에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그러면서 임실군은 당시 옥정호를 상수원으로 이용하고 있던 정읍과 김제시에 대해 물이용부담금 부과와 함께 전주권광역상수도(용담호)로의 급수체계 변경을 요구해 지자체 간 마찰을 빚었다. 2015년 옥정호 상수원보호구역이 해제됐지만 해묵은 갈등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전북도와 임실군, 정읍시가 함께 참여한 옥정호상생협의체가 지난 2015년 옥정호 상수원보호구역 해제 및 개발과 관련해 '3자 동의 없이는 개발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협약을 맺은 바 있지만, 임실군이 낙후지역 개발을 명목으로 옥정호 수변개발 사업을 추진한 게 재차 발단이 됐다. 양 지역은 물론 전북도의 적극적인 갈등 중재 노력과 대안 마련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진행형 전주·완주 통합 뜨거운 감자였던 전주·완주 통합 논의가 민선 8기 출범으로 다시 불붙고 있다. 전북 발전을 위해 전주·완주 통합과 새만금을 필두로 전북 발전을 이끌 양대 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금까지 전주·완주 통합 시도는 총 세 차례가 있었고 모두 실패했다. 1997년에는 당시 결정권을 쥔 완주군의회의 반대로 좌절됐고, 2009년은 당시 완주지역의 국회의원, 군수, 지방의원 모두가 반대했다. 세 번째 시도였던 2013년에는 당시 임정엽 완주군수는 찬성했지만, 국회의원과 지방의원들이 반대했고, 완주군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통합 투표에서 55.4%(찬성 44.4%)가 반대표를 던져 무산됐다. 당시 최규성 김제·완주 국회의원, 민주당 전북도당, 김완주 도지사가 찬성 입장에서 돌연 반대로 돌아서면서 불발됐다. 김제·완주를 지역구로 전북 정치 좌장 역할을 하던 최 의원의 반대는 결정적으로 도지사와 전북도당을 반대로 나서게 했고, 본격적으로 통합 반대운동을 조직하는데 명분을 줬다. 다시금 통합 논의가 물밑에서부터 이뤄지고 있지만, 양 지자체를 포함한 전북도 차원의 노력이 없다면 해답은 찾지 못한 채 갈등만 다시 키운다는 우려도 나온다. 갈등을 넘어 내일로 도내 지자체 간 갈등은 통상 혐오시설이나 환경문제, 그리고 경제적 요인에서 비롯됐다. 특히, 전북은 일부 도시지역의 팽창과 농촌지역 인구감소가 맞물리면서 전통적인 님비현상과도 맞물리고 있다. 우리 지역의 갈등을 곱씹어 보고, 그 안에서 대안을 찾아 상생의 길로 가야 할 이유다. 방폐장 문제를 돌아보면, 실제 부안사태 이후 방폐장 후보지로 선정된 경주는 주민 89.5%가 찬성표를 던졌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경주시에는 3000억 원의 방폐장 유치지역 지원금이 지급됐다. 이 지원금은 종합 장사공원 조성, 생활문화센터 건립, 복합도서관 건립 등 주민의 복지 증진과 편의 증대에 쓰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정부는 2035년까지 3조 4318억 원을 들여, 12개 부처에 걸쳐 55개의 대형 사업을 일반지원사업이란 이름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부안 사태 당시 거론됐던 문제점도 돌이켜볼 만하지만, 반대의 이유를 명확히 확인하고 주민들의 공론화를 모으는 과정도 거쳐야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유명무실화 한 전북도 갈등조정위원회가 제 역할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린다. 전북도는 지난 2013년 ‘공공갈등 예방 및 조정·해결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이에 따른 갈등조정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다만, 기대와는 달리 도내 지자체 대부분은 조정신청보다 행정심판이나 소송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였고, 소송이 마무리돼도 앙금은 여전히 남았다. 경기도의 경우 기초지자체 간 다툼에서 중재안을 적극 제시하고 해결에 직접 나선 대표적 지자체로 꼽힌다. 경기도는 수원시와 용인시 간 행정구역 조정과 관련해 7년 묵은 갈등을 해결한데 이어 동두천시와 양주시 간 축사 갈등 문제가 해소되는 데에도 결정적 중재 역할을 하면서 광역단체의 조정기구 역할 중요성이 다시금 강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