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문화를 '창피 문화' 라고 비유한 한정신과의사의 지적이 재미있다. 그는 '얼굴을 들 수 없다' 거나 '체면이 있지 어떻게 그런 일을…' 따위의 표현이 일상적으로 쓰이는것은 바로 창피문화가 우리의식에 자리잡고 있기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령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사람의 명단을 경찰서 게시판에 공개한다거나 규격 쓰레기 봉투를 사용하지 않은 경우 아파트 구내방송을 통해 주민들에게 알리는 행위등은 '창피주기' 의 일종이다.
사실 걸핏하면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무슨 무슨 명단발표나 00게이트에 연루된 리스트운운이 모두 여기 속한다. 고액 체납자나 부동산투기꾼, 불법과외 학부모 명단발표는 국세청의 엄정단속 단골 메뉴다. TV에서는 '죽을 죄(?)' 를 지은 사람들은 으례 파렴치 하거나 비굴해 보이는 쪽으로 찍혀 나온다. 벌떼같은 카메라 기자들의 프레시 세례에 톡톡히 망신을 당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죄책감보다는 창피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우리 창피주기 문화의 속성이다.
창피문화에서는 남들의 눈만 피하면 양심의 질책은 두렵지 않게 된다. 남이 보지 않으면 담배 꽁초를 아무데나 버리고 교통신호쯤 지키지 않아도 되며 공장 폐수를 슬쩍 방류하고 쓰레기를 적당히 처리해도된다. 이런저런 명목으로 남몰래 건네지는 돈도 꿀꺽꿀꺽 삼킨다. 동티가 나는 일은 그런 사실이 밝혀진후 일이니 그 때 가서 적당히 변명하면 그만이다. 그러니 다리가 무너지고 건물이 내려 않아도 요리조리 피해 창피만 면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공직사회에 팽배하다. 그러나 창피를 주어서 바람직한 사회적 행동을 이끌어 내려는 시도가 꼭 옳은것인지는 의문이다. 위법한 사항은 법과 제도를 통해 논리적으로 제재를 가하면 그만이다. 아무리 창피를 준다해도 내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고 남이 안 보는데서도 지킬것은 지킬 줄 아는 양심이 살아나지 않으면 별무 소용이 없는 일 아닌가.
청소년보호위원호가 죄질이 나쁜 청소년 성범죄가들의 명단을 주민들이 열람할 수 있게 할 방침이라 한다. 명단공개가 인권침해가 아니냐는 논란은 대법원 판결로 가려진만큼 실행에 별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거야말로 '창피주기' 의 전형이 아닐까 싶다. 이제 한국판 주홍글씨가 제대로 등장할날도 머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처럼 낯이 뜨거울 정도로 몰아부친다해서 과연 성범죄가 근절될 수 있을 것이냐이다. 우리 주변의 성풍속은 이미 '창피주기' 로도 고치기 어려울 정도로 중증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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