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서 의무교육을 받은 국민이라면 ‘여우와 황새’의 우화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여우가 황새를 초대하여 식사대접을 하는데 납작한 접시에 국물을 담아 내놓은 바람에 황새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탈탈 굶고 만다. 화가난 황새도 여우를 초대해서 복수극을 벌인다. 입구가 좁은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 여우가 먹지 못하고 끙끙거리게 만든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몰랐다가 서로가 낭패를 본 경우를 빗대 지어낸 이야기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운 역지사지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아니 어려운 게 아니라 웬만한 경ㄱ지에 이르지 않고는 흉내조차 내기 힘들다. 우리가 운전을 할때 자신보다 빨리 달리는 차를 보면 “저런 미친놈,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라고 하면서, 좀 천천히 가는 차를 만나면 “집에 처박혀 있지 차는 왜 끌고 나온 거야”라며 불쑥 욕지거리부터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역지사지를 실천에 옮기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알 수 있다.
우리 사회 도처에서 역지사지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고 아전인수(我田引水)하는 무리들만 판을 치고 있다. 조금만 손해를 본 것 같으면 곧바로 공격자세를 취하고, 집단의 이해관계가 걸려 갈등을 빚는다 싶으면 어김없이 패싸움이 벌어진다. 자꾸 들먹거리기도 뭐하지만 역지사지를 멀리하고 아전인수에 취해 있는 대표적 집단이 정치권인 것 같다. 국민들은 크게 관심이 없는 이철우-주성영 의원의 ‘북한 노동당 가입’진실 공방을 보면서, 도대체 왜 민생현안은 제쳐놓고 저렇게 사생결단식으로 싸우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어둠과 썩은 곳이 있으면 빛과 소금도 있는 모양이다. 모두가 내 것 하나라도 더 챙기려는 각박한 세태에 역지사지로 상대방 입장을 배려하는 노사가 있어 주위의 귀감이 되고 잇다. 팬택 노조가 환률 인하로 회사가 경영압박을 받을 것을 우려해 내년분 임금을 동결하기로 결의했으나 오히려 경영진이 10%안팎의 임근인상과 함께 연말 격려금까지 지급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회사는 어려운데 임금을 안올려준다고 아우성을 치거나, 회사 이익금을 분식회계로 빼내는 경영진도 수두룩한데 ㄴ사협상 한번없이 이런 결과를 얻었다는 것은 정말 놀랄만한 일이다. 짧지만 천금같은 말 ‘역지사지’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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