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시구 시구 들어간다/절시구 시구 들어간다/작년에 왔던 각설이가/죽지도 않고 또 왔네/요놈의 소리가 요래도요/천냥을 주고 배운 소리/한푼 벌기가 땀이 난다/품 품 품바가 잘도 헌다.
거지행세를 하자며 돼지멱따는 소리를 빌려서라도 한 곡조 뽑아야 하는 각설이타령이다. 깨진 쪽박이나 찌그러진 양재기를 두드리며 한바탕 어우러지는 거지들의 ‘초대받지 않은 축제’는 구경거리라고 하기에는 처연하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억지 놀음을 하는데 무슨 신명이 나겠는가.
그들은 생일이 따로 없다. 동네에 초상이 나거나 환갑·돌집이 있는 날이 바로 생일이다. 그들에게는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고 오직 오늘만 있을 뿐이다. 당장 배고픈 고통만 면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라고 처음부터 거지족보를 갖고 태어난 것은 아니다. 인생살이 어찌어찌하다보니 거지로 살아가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사람은 누구나 거지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때문에 거지를 사람이 아닌 거지로 보아서는 안된다. 세상에 속고 지쳐서 그리 된 것이지 처음부터 빈 뱃속이나 채우자고 살던 사람들은 아닌 것이다.
거지 중에서도 ‘왕’자가 붙는 거지가 있다. 거지집단의 리더인 셈이다. 거지왕 그 까짓게 별 대수겠는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볼 일은 아니다. 아는 것이 많거나 주먹이 세거나 하다못해 배짱이라도 두둑해야 거지왕 노릇을 할 수 있다.
나름대로 자기집단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자기 희생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막사는 익생들이 무엇이 두려워 두목으로 모시겠는가. 전설의 거지왕 김춘삼의 일대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거지집단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17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성남 출신 이상락 전 의원이 별명이 ‘거지대왕’이다.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그는 구로공단에서 공원으로 일하다 1980년 경기도 성남으로 이사와 목수·노점상·포장마차꾼 등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그는 자기 앞가림 조차 어려운 가운데서도 빈민운동에 온 몸을 던졌다. 당시에 자신을 따르던 거지들이 붙여준 별명이 거지대왕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자신의 학력은 고졸이라고 내뱉은 말이 씨가 돼 결국 허위학력기재혐의로 의원직을 잃고 1년의 실형까지 살게 됐다. 차라리 학력 콤플렉스를 털어버리고 나는 거지대왕이라고 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못내 아쉬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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