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극장가를 강타했던 코미디 사극 ‘황산벌’은 전라도와 경상도 사투리를 감성적으로 대비시켜 재미를 톡톡히 본 영화다. 시도때도 없이 터져나오는 사투리에 관객들은 포복절도를 하면서 전쟁장면 못지 않은 사투리 전쟁에 묘한 전율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이 영화 한 편에 양쪽 지방의 어지간한 사투리는 모두 선을 뵜는데 그중에서도 말의 뜻이 아리송한 ‘거시기’가 단연 압권이었다.
의자왕이 계백장군에거 ‘거시기 해불어’라는 전투명령을 내리면서 시작되는 황산벌 전투는 수많은 뜻의 거시기가 수없이 등장한다. 그때마다 관객들은 나름대로 거시기의 뜻을 해석하며 배꼽을 잡았다. 특히 계백이 작전회의를 하면서 “우리의 전략적인 거시기는 머시기할 때까지 갑옷을 거시기 한다”고 지시하는 대목은 거시기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신라 김유신이 ‘암호해독관’까지 동원하여 그 뜻을 풀어보려고 했으나 너무나 많은 경우의 수에 결국 포기를 할 정도였으니까.
정부가 개념이 애매한 법조문을 뜯어고쳐 그 내용을 구체화시키기로 했다고 한다. ‘선량한 풍속’, ‘공공의 안전’‘중대한 사유’‘상당한 이유’와 같이 뜻이 명확치 않아 자의적인 해석의 소지가 있는 법령이 이에 해당된다. 예컨대 ‘현저히 공익을 해칠 우려가 있을 경우 채취의 중지 등 필요한 조치를 내릴 수 있다(골재채취법)’‘전염병에 걸렸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가축은 살(殺)처분을 명해야 한다’(가축전염병예방법)는 조항 등이 정비 대상이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이처럼 애매모호한 표현 때문에 국민들이 당한 고충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만시지탄의 감마저 든다. 행정기관에 인허가 서류를 내본 민원인 중에는 입에서 쓴물이 나올 만큼 지긋지긋한 경험을 해 본 일이 있을 것이다. 너무나 포괄적인 법조문으로 한번 곤혹을 치르고 거미줄 같은 관련 법규에 또 한번 치를 떨어야 한다. 웬만한 인내심으로는 그냥 포기해버리고 싶을 정도다. 한데 이상한 것은 담당자와 거시기가 통하면 안될 것 같은 일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행정기관에 일정한 재량권을 주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과도하게 재량권을 부여하면 재량권 남용이나 공직부패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부정한 거시기가 오고 가지 않도록 거시기한 법조문은 이참에 모두 거시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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