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뗏목탐사를 위한 대장정이 다시 시작되었다. 200년 넘게 고구려보다 넓은 영토를 가졌던 발해왕국이 중국과 러시아 역사로 편입되고 우리 역사 기록에서도 홀대되는 현실에 대한 장대한 퍼포먼스인 것이다.
방의천 대장, 이영재, 황기수, 연정남 대원 등 4명으로 구성된 탐사단을 태운 뗏목이 강원도 거진항을 출발, 러시아 자비노항에 입항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이런 발해뗏목탐사단의 소식을 들으며 1차 탐사단이랄 수 있는 발해 1300호 뗏목탐사가 떠올랐다.
1차 탐사단은 지난 1997년 12월 31일 러시아 블라디스보스톡을 떠나 25일의 대장정을 마무리했지만 일본 오끼섬 부근에서 좌초, 장철수 대장을 포함 4명의 탐사단이 모두 숨진 바 있다. 당시 ‘구난 요청은 필요 없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 무사도착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마지막 교신은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이들이 이름 붙인 뗏목 이름 ‘발해1300’은 698년 고구려 후예인 대조영이 만주·연해주 땅에 해동성국(海東盛國) 발해를 세운 지 1천 3백년이 되었음을 기념한 것이다.
가슴 아픈 사건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질 만한 지금 2차 뗏목탐사단이 출항한다는 소식을 감회를 새롭게 한다. 그런데 2차 탐사라고는 하지만 1차 탐사와는 다른 점이 많다. 1차 탐사때 예산이 5천여 만원,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장철수 대장은 자신의 집을 팔아야 했지만 이번 탐사단은 5억여 원의 예산으로 탐사를 준비했다.
돛에 그린 그림 역시 비교대상이다. 1차에는 도깨비를 닮은 문양으로 치우(蚩尤)장군의 얼굴을 앞돛에 그렸다. 치우는 발해인들의 존경을 받았던 전설적 인물이다. 2차는 설치작가 최병수씨의 ‘새벽’이란 그림이 걸렸다. 한반도의 허리 부분에 빗장이 있고 열쇠구멍이 하나는 바르게 다른 하나는 거꾸로 그려져 있는 모습이다. 한반도 문제는 남북한이 그 ‘열쇠’를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번 탐사에 위성전화를 사용한다는 소식에는 격세지감(隔世之感)을 금할 길 없다. 1차가 ‘아마추어 무선’즉 햄(HAM)을 이용해서 많은 무선사들과 교신하고 그 내용을 다른 무선사들도 경청할 수 있었던 ‘공개적인’탐사였다. 그러나 이번 탐사는 개인전화를 통한 ‘비공개 ’탐사가 되었다는 점에서 아쉽다. 하지만 이들이 무사항해만 할 수 있다면 그런 바람은 잠시 접어 두어도 좋을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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