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운명적으로 껴안고 살아야 할 숫자에는 오만가지 기능이 있다. 단순히 더하고 빼는 기능에서부터 우주왕복선을 띄울 수 있는 기능까지 실로 무한대에 가까운 기능을 갖고 있다. 인간이 창안해낸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토록 유용하게 쓰이는 숫자도 오히려 사람을 헷갈리게 할 때가 있다. 인간 스스로가 예단하는 ‘고정관념’과 ‘착시현상’이 숫자에게 마술을 부리게 하기 때문이다. 정작 숫자 그 자체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데 인간이 이러쿵 저러쿵 의미를 붙여 자기최면에 걸려드는 것이다.
예를들어 고대 그리스에서는 4까지의 수로 10이라는 완전한 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4라는 숫자를 성스러운 수로 여겼으나, 우리나라에서는 4자를 무척 꺼리고 있다. 발음이 죽을 사(死)와 같아 공연히 죽음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병원이나 호텔·아파트 같은 고층건물에서 아예 4층을 빼고 다른 방법으로 표기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 볼 수 있을 정도니, 4자에 대한 기피증이 얼마나 큰가 짐작할만 하다.
숫자가 마술을 부리는 것은 고정관념보다 착시현상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가령 똑같은 물건값이 1만원과 9천9백원으로 표시돼 있을 때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지수는 두 물건값의 차이 1백원 보다 훨씬 크다. 5자리 숫자와 4자리 숫자가 주는 느낌 때문이다.
숫자의 착시현상이 제일 민감하게 나타나는 것이 통계다. 예컨대 작년도 경제 성장률이 극히 저조했는데 올해 조금 나아졌다면 실제 실적 이상으로 과대평가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통계의 기저효과(base of effect)다. 또 국민 대다수는 아직 경기회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 몇몇 대기업의 수출실적만 갖고 경기가 좋아진 것처럼 발표를 하는 것도 대표적인 경제 착시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난 25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9백98.90원을 기록, 1997년 11월14일 이후 7년5개월여만에 1천원 벽이 깨졌다. 1천원과는 불과 1.10원 차이지만 달러 환율이 3자리 숫자로 떨어졌다는 점에서 국내 수출기업들의 충격이 큰 모양이다. 이럴 때 일수록 숫자의 착시현상에 빠지지 말고, 회사경영에 미흡한 구석은 없었는지 다시 꼼꼼이 챙겨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