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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우리' 와 '저희'

방송 출연자에게서 가끔 발견되는 표현 중 하나가 ‘저희 나라’이다. 물론 이는 ‘우리나라’의 잘못이다. 이런 잘못은 물론 출연자의 잘못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잘못이 왜 유발되었는지를 한 번 되돌아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말 표현이 서구 특히 영어권의 표현과 다른 점 중의 하나는 듣는 이를 중심으로 되어 있다는 점일 것이다. ‘밥 먹었니?’라는 표현에서는 ‘예’와 ‘아니오’가 동일하지만 ‘밥 안 먹었니?’라는 표현에는 그 대답이 달리 해석된다. 우리는 ‘예’라고 대답이 ‘안 먹었다’라는 표현이지만 영어권에서는 ‘먹었다’로 해석된다. 이런 차이는 말하는 이의 생각을 존중하느냐 아니면 객관적 사실을 중시하느냐 하는 데서 비롯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듣는 이의 생각을 존중하다 못해서 스스로 겸손을 자초한다. 앞서의 ‘저희 나라’가 그런 태도의 연장선에서 해석하면 그 동기에 수긍이 간다. 이런 점에서 ‘동방예의지국’이란 말도 과장된 말이나 우리를 길들이려는 강대국의 의중으로만 돌릴 수 없다. 이런 어법으로 보면 우리 민족은 상당히 겸손하다.

 

문제는 이런 겸손이 적절한 자리를 넘어서 과도하게 사용되는 경우에 발생한다. 남을 높이는 방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말 그대로 남을 높이는 방법이 하나다. ‘아버지’를 ‘아버님’으로 높이는 것이 그 한 예다. 다음으로 남을 높이는 방법은 나를 낮추는 것이다. 마당쇠가 주인에게 말할 때 말끝마다 전형적으로 붙이는 ‘요’가 그 중 하나다. ‘밥을 먹었다’ 대신 ‘밥을 먹었습니다요’로 표현하면 말하는 자신을 낮춰 듣는 이를 높인다.

 

예전에는 이런 존대와 겸양이 비교적 정확하게 구분되어 왔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존대와 겸양의 대상과 그 상황에 대한 판단능력이 예전보다 못 한 것 같다. ‘우리’를 사용해야 할 대상에 ‘저희’가 들어가는 것이 ‘나라’에까지 미치는 것을 보니 말이다. 방송에 한 번 출연하는 것이 황공할지라도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에게 ‘저희 나라’라고 표현하면 그것은 존대나 겸손의 대상이 어떻게 되는지 전화로라도 확인해 보려고 하는 분들의 성의만 있다면 우리 말글의 살림살이는 그래도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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