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857-?)은 12살의 어린나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요즘 말로하면 조기유학을 떠난 셈이다. 그는 6년만에 당나라 과거에 급제, 승무랑(承務郞), 내공봉(內供奉)에 올라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 받았다. 그리고 879년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유명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지어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다. 885년에 귀국, 10여년 동안 중앙과 지방의 요직을 역임했다. 문란한 국정을 통탄해 시무책(時務策) 10여조를 진성여왕에게 상소하고 외직을 자청, 부성군(충남 서산)과 태산군(정읍 태인)의 태수(太守)를 지낸다. 그리고 6두품 출신 최고의 직위인 아찬에 오른다.
당시 당나라는 로마와 교역을 펼칠 만큼 대제국이었다. 오늘로 치면 미국과 같이 세계의 중심부였다. 출세를 위해 주변 국가에서 많은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당으로 유학을 떠난 신라인 역시 엄청나게 많았다. 840년, 같은 날 당에서 신라로 귀국한 유학생이 105명이라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그리고 최치원처럼 당나라 과거(빈공과)에 급제한 학생만 820-906년 사이 58명에 이른다. 이들 유학생들은 중국의 선진적인 문화를 수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야말로 ‘글로벌 스탠다드’에 앞장섰던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연구원이 3일 발표한 ‘2004년도 초중고 유학 출국학생 통계’에 따르면 조기유학이 최근 6년 동안 10배이상 급증했다. 특히 초등학생의 조기유학이 98년 212명에서 2004년 6276명으로 30배가 늘었다. 또 유학가는 국가도 미국·캐나다 등에서 중국·호주·뉴질랜드·동남아 등지로 다양화 추세를 보였다. 이같은 조기유학은 우리의 경제규모가 커지고 소득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런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조기유학은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우선 1인당 유학비용이 평균 2만4000달러(약 2400만원)로, 2004년 지출만 24억8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OECD국가중 최악의 교육서비스 수지적자국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동기가 이기적이어서 위화감을 조성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공동체적 교육현실을 개선해 보겠다는 생각보다는 ‘자기 자식만 잘되면 된다’는 이기심의 발로가 대부분이다. 또 사회적으로도 독수리·기러기·펭귄 아빠 등을 양산, 자살 등 사회문제를 낳고 있다. 그러나 오늘도 최치원의 꿈을 안은 조기유학 러시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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