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태극기 게양과 관련해서 3,1절을 비롯한 7번의 경축일과 6월 6일 현충일이 있다. 태극기 유래는 박영효가 고종의 허락을 받아 수신사로 일본을 방문하러 가던 중 메이지 마루호(號) 선상(船上)에서 같이 가던 사람과 상의해 그렸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러나 태극기의 도안이 박영효의 개인 작품이 아니라 고종의 아이디어라는 것을 박영효 스스로가 그 당시 일본 도꼬 일간 신문 '시사일보' 기자에게 밝히므로써 그 내용이 그 신문에 실렸다고 한다. 그 신문 기사에 의하면 고종은 중국 청나라의 국기를 모방하라는 청나라의 압력을 뿌리치고 고종 자신이 직접 도안하고 색깔까지도 지정했다는 것이다. 태극기에 대한 자긍심이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와 반대되는 학설도 있다. 조선 말기인 ,1882년 5월달에 고종은 미국과 처음으로 통상조약을 맺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守護通商條約)'이다. 국제법상 외국과 조약을 맺을때는 두 나라 국기를 거는 것인데 국제법에 어두운 조선은 국가의 상징인 국기(國旗)라는 것이 없었다.
그 당시 미국 전권대사인 슈벨트는 중국 청나라 국기인 '황룡기(黃龍旗)'와 비슷한 국기를 조선이 만들면 조선을 독립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을 조선의 접견대신인 신헌과 김홍집에게 요구했다고 한다. 그래서 김홍집은 역관(譯官)인 이응준에게 국기 제정을 명령했는데 그는 8일만에 국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가 만든 국기가 '조미수호통상조약'때 사용되었고 이런 사실은 그 당시의 미국 해군부 항해국이 제작한 문서속에 기록되어 최근에 발견된 것이라고 한다 태극기의 최초 제작자가 이응준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이설(異說)은 중국의 청국문답(淸國問答)이라는 책을 인용한 것으로써 그 당시 청의 사신이었던 마건충(馬建忠)이라는 사람이 김홍집과의 회담에서 조선의 국기를 흰 바탕에 태극 그림을 넣고 8괘를 그리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런 후 박영효가 수신사로 일본에 가는 배안에서 영국 선장(船長)인 제임스의 조언과 마건충의 제안을 절충해서 오늘의 태극기를 만들었다는 설(說)이다. 국기의 연원이란 원래, 영국의 국기, 유니온 잭(Union Jack) 처럼 대부분 복잡한 것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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