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판이 펼쳐지면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공약들이 난무한다. 그중에는 실현가능성, 구체성이 결여된 공약들이 많다. 이런 현상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1834년 영국의 로버트 필 보수당 당수는 "겉만 번지르르한 공약은 순간의 환심을 살 수는 있지만 결국은 실패한다"고 일갈했다. 안되면 말고 식의 공약, 유권자를 기만하는 선전행위가 그 당시에도 춤 추었던 모양이다.
로버트 필 당수가 공약의 구체성을 강조한 뒤 매니페스토 운동이 본격화됐다.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의 실현가능성을 따져보고 당선 후에도 공약을 지켜나가도록 하자는 것이다. 매니페스토(manifesto)라는 말은 '증거' 또는 '증거물'이란 뜻의 라틴어 마니페스투스(manifestus)에서 유래됐다. 자신의 과거 행적을 솔직히 고백하고 앞으로의 구체적 실천 계획을 공적으로 밝힌다는 게 참뜻이다.
영국에선 유권자들이 공약을 꼼꼼히 따져 보고 이행 여부도 챙긴다. 정당은 후보들의 비전과 정책의 목표, 우선순위, 절차, 기한, 재원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된 정책공약집을 판매한다. 공약집은 베스트셀러이면서 유력한 선거자금줄이다. 의원들은 늘 유권자의 검증을 받고, 그 결과는 다음 선거에 반영된다. 신용을 중요시하는 미국도 매니페스토 운동에 익숙한 나라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정당은 공천심사를 앞두고 후보들의 공약내용을 제출받지도 않는다. 매니페스토가 뭔지도 모르는 정치인이 수두룩하다. 정책개발은 남이고 유력 정치인 줄서기에는 일등이다. 그러니 머리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 도리가 없다.
이전투구 선거판이지만 돋보인 이벤트도 있었다. 얼마전 민주당 전주 완산갑의 지방의원 예비후보들이 '매니페스토 실천서약 대도민 선언'을 했다. 지난 1월에는 국회 유성엽의원(무소속=정읍)이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공약과 의정활동계획서 이행 등을 심사해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선정했다.
어제는 김승환 교육감 예비후보가 '교육혁신 5대 정책'을 담은 공약집(1000원)을 발행, 시판하고 있다. 이한수 익산시장이 판매용 공약집(5000원)을 처음 선보인데 이어 두번째다. 선거철이 무르익고 있다. 매니페스토 후보에 박수를 보내자.
/이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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