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는 이번 남아공 월드컾 대회 결승전에서 스페인에 패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 네덜란드는 누구나 인정하듯 축구 강국이다. 온 국민이 축구의 열성 팬이다. 바다 수면이 육지보다 높아 항상 물과의 전쟁을 해야만 했던 그들은 축구가 그들 국민성에 부합되었는지도 모른다.
바다와 싸워 이긴 그들의 저력이 오늘의 네덜란드 축구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네덜란드에 가면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지구는 하느님이 만드셨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인이 만들었다". 태고적부터 네덜란드인은 바다와 싸우면서 바다를 막고 간척을 하여 오늘의 네덜란드를 만든것이다. 그들의 진취적 기상은 세계로 뻗어나갔다.
네덜란드를 우리는 화란(和蘭)이라고 불렀다. 16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홀랜드'란 이름은 없었고 '바다보다 낮은 지방'이라는 뜻의 '네덜랜즈'였고 홀랜드는 네덜랜즈 북부의 일개 주(州)였다고 한다. 네덜란드 즉, 화란과 우리와의 인연은 상당히 깊다.
화란인이 우리 한국에 최초로 표류해 온사람이 '얀 냔세 웰테프레'이다. 그는 인조 2년, 1628년에 표류한것이었다. 그의 이름이 '얀'이기에 발음이 비슷한 우리말 '연(淵)'으로 바꾸어 '박연'이 된것이다. 박연은 추운 겨울에도 화란의 풍습대로 솜옷을 입지 않았다고 하며 한국에 정착하여 외인부대로써 병자호란에 참전하기도 했다.
한국여자와 결혼하여 아들 딸 둘을 낳고 살았다. 박연이 표류하고 26년이 지났을때 화란 상인인, 하멜 일행이 일본 나카사키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표류하게 되었다. 이때 통역을 맡았던 사람이 바로 박연이었다. 박연도 하멜 일행을 만났을때는 자기 모국어인 화란어가 잘 나오지 않아 많은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근 30년동안 화란말을 사용치 않았으니 자기 모국어를 잃어 버렸던 것이다.
하멜 일행은 한국에서 어렵게 생활을 했으며 그의 일행중 8명이 조선을 탈출하여 일본을 거쳐 화란으로 돌아갔다. 화란에서 하멜은 그가 겪은 조선에서의 경험을 책으로 썼다. 조선을 처음 화란에 알린 것이다. 2002년 월드컾 대회에서 한국을 4강으로 올린 사람이 화란인 히딩크였다. 화란은 유럽에서 영어 독어 불어가 가장 편하게 통하는 나라라고 도 한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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