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에는 여러 나라가 서로 싸우고 동맹과 배반을 반복하는 시기이다. 제자백가의 하나인 종횡가(縱橫家)가 등장한 것도 이때다. 이들은 말재주로 정치가들에게 등용돼 수완을 발휘하거나 자리를 보전한 책략가들이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소진(蘇秦)이다.
소진이 스승인 귀곡자(鬼谷子)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인간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까?" 귀곡자가 대답했다. "무턱대고 덤벼서는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제일 경계해야 할 것은 주관적인 판단이니라. 그리고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췌마술을 읽혀야 하느니라."
이명박 정부 내각의 최장수 기록을 세우고 있는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췌마술의 달인처럼 보인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이전 문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랬다 저랬다 오락가락 하기도 하고 흘린 말을 먹어버리기도 한다. 그의 언급은 좀처럼 헤아릴 수가 없다. 전국시대 때 '세치 혀'로 이름을 떨쳤던 바로 그 췌마술의 달인들 처럼.
작년 11월 정 장관은 한나라당 소속 경남출신 국회의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통합본사를 한 곳으로 몰아주고 다른 쪽에는 대안을 제시하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며 "고민을 많이 하고 있으며 경남이 걱정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었다. 이를 전해들은 전북 정치권이 발끈하자 보름 뒤 가진 도내 국회의원 간담회에서는 "전북이 주장하는 분산배치 원칙을 지키겠다."고 말을 바꾸었다.
얼마전 경제주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는 "전북도와 경남도가 합의를 이뤄야 한다"며 "정부는 원칙적으로 한 곳으로 옮기는 게 바람직한 입장인 만큼 평행선을 계속 그린다면 직권 조정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작년 말까지 이전문제를 매듭짓겠다고 해놓고 8개월 동안이나 차일피일 미루더니 원점으로 회귀한 것이다.
한 때 분산배치를 원칙으로 했지만 그건 이 정부의 정무적 판단이 나오지 않았을 때일 뿐이다. 이런 입장이 그의 확신이라면 정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 또는 정책 결정권자의 의중을 이미 헤아렸다고 보아야 한다. 사실 LH 이전은 그 자신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지 않은가.
이럴 때 전북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힘겨운 국면이다. 전북의 정치권이 화려한들 실리 하나 챙기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나?
/이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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