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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질서의식 - 장세균

사람의 인격은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나타나는 법이다. 각 나라의 민족성 역시도 위기에 놓여 있을 때 들추어지는 법이다. 지난 11일 일본 대지진으로 엄청난 인명피해와 더불어 재정적 피해가 일본 GDP의 6%에 가까우며 피해 복구비만 해도 우리돈으로 약 1000조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대지진의 참상 못지않게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일본 국민들의 질서의식이었다. 도난사고나 사재기도 없었으며 일본 언론의 절제있는 보도도 칭찬의 대상이었다. 과거, 미국 LA의 흑인폭동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그 당시 흑인폭동의 현장에서는 도난·방화가 판을 쳤었다. 일본인의 질서의식은 일본 에도시대부터 만들어진 의식구조였다.

 

일본도 조선처럼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계급이 철저하게 존재했었다. 그러나 조선은 신분 이동이 가능한 예외조항이 있었다. 임진왜란때는 모자라는 군인(軍人)을 충당하게 위해 노비들에게도 무과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심지어 시험장에서 활을 10번을 쏘아 1번을 과녁에 맞추어도 합격시켜 양민이 되게했다. 또 속오군(束伍軍)에 노비들이 입대를 하면 양민이 될수도 있었다.

 

양민은 과거시험에 합격하면 관리로 등용되어 상류층이 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과거 일본 에도시대의 사농공상(士農工商) 제도는 고착적(固着的)이었다. 사무라이는 영원히 사무라이며 자손에게 세습되었다. 물건을 만드는 공인(工人)이나 장사하는 상인(商人)은 대대로 공인이거나 상인이어야 했다

 

그러나 조선과는 달리 일본은 농민이나 공인, 상인을 멸시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존재가치를 일정 부분 인정해주었다. 임진왜란때 일본에 잡혀간 조선의 도공(陶工)들을 우대해 주기도했다. 조선의 백성들은 끝없이 신분상승을 위해 혈투를 한 반면, 일본인들은 자기 신분에 만족하고 분수를 지키는 것을 중요시했다.

 

그러면서 천민은 농민을 존경하고 농민은 사무라이에게 충성을, 사무라이는 영주에게 영주는 막부의 쇼군에게 충성을 해야했다. 이것이 일본의 충성의 계층화이며 충성의 질서이다. 이번 대재앙에도 그들의 질서의식이 망가지지 않은 것은 오래전부터 내려왔던 생활속의 질서의식이었다고 본다.

 

/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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