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말에 이런 게 있다. '용어감즉살, 용어불감즉활'(勇於敢卽殺, 勇於不敢卽活). 용기에는 두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감'(敢)이고, 다른 하나는 '불감'(不敢)이다. 감은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이를 무릅쓰고 해내는 용기다. 불감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절대로 하지 않는 용기를 말한다.
'살'(殺)은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달라붙어 결판을 내는 식이다. 그런 용기가 필요할 땐 사즉생의 각오로 싸워야 할 것이다. '활'(活)은 인내심을 갖고 이익을 도모하는 용기랄 수 있다. 결국 통찰력과 리더십에 달린 문제랄 수 있겠다.
토지주택공사(LH) 이전 무산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전라북도는 5대 투쟁 방침을 밝히고 LH를 통째로 경남에 넘긴 정부를 맹공하고 있다. 당연하다. 매주 수요일 청와대 앞 시위와 도민 서명운동, 혁신도시 반납, 헌법소원, 행정소송 등이 그것이다.
아울러 국토부 주최 회의 불참과 지방세 보전도 거부, 전북에 올 국민연금공단도 보이콧하겠다는 태세다. 국민연금 기금(330조원) 운용도 전북을 위해 협조하겠다는 이사장도 문전박대했다. LH 돈(7000억)으로 보상을 마친 혁신도시도 반납하겠다고 한다.
'누구 목을 따와도 시원치 않을 것'이라는 감정은 충분히 이해된다. 그렇다고 도지사가 강경분위기에 포위돼 실효도 없는 투쟁을 껴안고 가는 건 참다운 용기가 아니다. 노자의 가르침에 빗댄다면 감(敢)의 용기가 필요할 때엔 그렇게 하지 않더니, 불감(不敢)의 용기가 필요할 때에 감(敢)의 용기를 내세우는 꼴이다.
전북은 지금 정부나 청와대하고 소통할 비선 하나 없는 고립무원의 처지다. 당장 6조원 규모의 내년 예산을 따내려면 정부 부처한테 혀 짧은 소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 욕 하는 단체장에게 장관이나 청와대 쪽에서 예산을 챙겨주겠는가.
이런 메카니즘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김 지사가 실효가 담보되지 않는 투쟁을 천명하고 나선 건 이해되지 않는다. 김 지사 스타일에도 맞지 않는다. 허공에 대고 소리 지르는 일은 결국 정치인 자신을 위한 정치투쟁에 불과하다. 청와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김 지사는 지금 당장이라도 정치투쟁을 정치인들한테 맡기고 전북의 실리 챙기기에 나서야 한다. 이게 노자가 말하는 불감의 용기다.
/ 이경재 논설위원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