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TV 드라마 보기가 무섭다는 말을 많이 한다. TV 드라마 속의 아버지는 자녀들 앞에서 항상 어머니의 눈치를 본다든가 어머니한테 혼나는 장면들이 흔하기 때문이다.
역사를 테마로 하는 사극(史劇)은 그런대로 아버지들이 선호 하는데 사극 속의 남자들은 권위와 더불어 영웅적 행동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가장(家長)으로서의 아버지 권위는 사실상 땅에 떨어진 지 오래이다. 어느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아버지를 그리라고 하니까 어떤 학생은 팬츠바람에 소주잔을 들고 있는 아버지를 그렸다고 한다.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온 아버지가 지쳐서 겉옷을 벗어 던진채 팬츠바람으로 소주잔을 들이켯을 것이다. 그 아들이 유일하게 접할 수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런 것이었다.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 아버지의 권위인 부권(父權)은 두 가지가 기초되어야 한다고 한다.
첫째는 아들이 아버지와 같은 가업(家業)에 종사하고 그 가업을 계승할 때이다. 이 때 아버지는 아들보다 풍부한 경험이 있기에 아들을 가르칠수가 있어 부권이 확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하는 아버지의 어엿한 모습, 그리고 인내하는 모습, 먹고 살기 어려운 상황에서 말없이 이를 감내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됨으로써 자연스럽게 부권이 형성된다고 한다.
둘째는 가족 구성원이 많아야 한다고 한다. 원래 권위란 그 권위를 추종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높아지는 법이다. 과거 우리사회는 대가족 제도였다. 그러나 근대화 과정에서 부권의 두 가지 기본조건이 모두 무너져 버렸다. 산업화로 아들은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없게 되었다. 핵가족화로 가정에서 아버지를 너무 가까이 접하게 됨으로써 아버지의 존재가 그렇게 훌륭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마르쿠제는 이제 아버지란 존재는 종족보존을 위한 정액(精液) 제공자에 불과하다고까지 극언했다. 땅에 떨어진 부권은 학교 현장에서도 나타난다. 과거의 학부모 회의는 없어지고 '자모회(子母會 )'가 대신하고 있다. 자모회란 학생들의 어머니 모임이라는 뜻이다. 자녀들의 교육권 향방이 어머니쪽으로 옮겨간 것이다. 부권 상실의 시대에 아버지들의 고민이 크다.
/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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