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평상에서 죽부인(竹夫人)을 두고 수족(手足)을 쉰다. 그 가볍고 시원함을 취하는 것이다." 이는 조선 말기의 문신 이유원(李裕元)의 '임하필기'에 나오는 대목이다.
죽부인은 매끈하게 다듬은 대나무를 원통형으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여름 침구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에 끌어 안고 자거나 다리 사이에 끼우고 자면 무섭게 달려드는 삼복더위도 저만치 물리칠 수 있다. 찬 성질을 가진 대나무로 만든데다 안이 텅 비어 있어 통풍이 잘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풀을 먹인 삼베 홑이불을 씌우면 더욱 그만이다.
죽부인은 중국 당나라 때 더운 남방지역에서 널리 퍼져 한·중·일 삼국에 보편화되었다. 당나라 때는 무릎에 끼는 도구라는 뜻으로 죽협슬이라 불렀다. 그러다 송나라 때는 끌어 안고 자는 부인으로 의인화 해 죽부인이라 한 것이다.
부인이다 보니 아버지가 쓰던 죽부인을 아들이 쓰지 않았다. 또 스승이 쓰던 죽부인을 제자가 쓰는 것도 금기시했다. 남성 위주의 독특한 풍습인 셈이다. 그렇지만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여인네들도 여름철에 이를 애용하게 되었다. 이 경우 '죽남인'이라 부른다.
세간에는 죽부인과 관련된 여러 일화가 전한다. 그 중 하나가 5형제 얘기다. 옛날 노부부가 5형제를 두었는데 아직도 아버지의 혈기가 왕성했던 모양이다. 무더운 여름 밤에도 부인과 꼭 잠자리를 같이했다. 이를 본 5형제는 "저러다 또 아이가 만들어지면 큰일이다. 우리가 업어 키우고 똥·오줌까지 치워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지"라고 궁리를 했다.
그 끝에 가짜부인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을 아버지에게 드렸다. 아버지는 5형제가 만들어준 죽통을 안고 자보니 사람을 껴안고 자는 것보다 시원하고 잠이 절로 왔다. 덕분에 5형제는 효도를 하고 여섯째 동생이 생기지 않아 짐을 덜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름내내 손 때가 타도록 애용하던 죽부인도 찬바람이 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한쪽에 쳐박아 버린다. 그래서 옛 문인들은 변덕스러운 세태나 권력의 비정함을 이에 빗대기도 했다. 고려말엽 삼은(三隱)의 한 사람인 이색의 아버지 이곡(李穀)이 지은 소설 '죽부인전'이 대표적이다. 여성의 절개를 대나무에 비유하여 당시 퇴폐해 가는 고려 사회를 풍자한 것이다.
요즘은 에어컨과 선풍기가 너무 흔하다. 하지만 그것에 의지하지 않고 죽부인과 더불어 여름을 나 보면 어떨까.
/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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