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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시성(諡聖) 동정부부 - 조상진

조상진 논설위원

전주에서 남원 방면으로 빠져 나가는 좁은목 약수터 건너에 승암산이 있다. 전주천을 끼고 우뚝 솟은 이 산은 옛부터 중바위라 불렸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턴가 치명자(致命者)산이란 이름으로도 불린다. 여기서 치명자는 순교자(殉敎者)란 뜻이다.

 

이 치명자산 해발 300m 산정에는 유항검과 동정(童貞)부부의 묘가 있어 순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세계 교회가 '순교의 진주'라 찬탄하는 이 묘지는 초창기 한국 천주교사의 수난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국 천주교 전래의 맨 앞자리에 있던 호남지역은 전주 초남(初南·현재 완주군)에 사는 부호 유항검이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으로 부터 1785년 전도를 받고 천주교의 첫 씨앗을 뿌리게 된다.

 

그러던 중 당시 전라도였던 진산(珍山)출신의 윤지충 등이 어머니 상을 당해 유교적 제례를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이들은 전라감영으로 압송돼 풍남문밖(전동성당 터)에서 참수형(斬首刑)을 당했다.

 

그런 속에서도 유항검은 주문모 신부를 초청하고, 고산 진산 영광 용담 등에서 포교를 계속하였다. 그러다 1801년 대대적인 신유박해가 일어났다.

 

전주에서는 유항검 일족 등 100여 명이 처형되고 400여 명이 유배를 당했다. 유항검의 아들 유중철(요한), 며느리 이순이(루갈다) 등도 형장으로 끌려갔다. 이들의 시신은 살아 남은 노복과 친지들이 은밀히 거두어 재남리 바위백이에 가매장되었다. 그 후 1914년 전동성당 보두네 신부와 신도들이 치명자산 산정에 모시게 된 것이다.

 

이순이는 장안의 명문가였던 이윤하의 딸로, 유중철과 당시 습속상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으나 동정부부였다. 인간의 본능을 뛰어 넘은 두 사람의 순결한 믿음은 이순이의 옥중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이들은 5년간 오누이처럼 지내며 유혹을 뿌리쳤던 것이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는 얼마 전 로마교황청에 유항검과 동정부부 등 125위에 대한 시복시성(諡福諡聖)을 건의했다. 시복시성은 순교자 등에게 신앙의 모범을 본받을 수 있도록 복자(福者)나 성인의 품위에 올리는 예식이다.

 

이에 앞서 1984년에는 한국인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 등 103위가 시성에 추대된 바 있다. 이들의 시성 추대로 전주가 천주교의 중심지였음이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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