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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전 유료화

 

경기전 관람료 유료화가 빠르게 정착되고 있단다. 전주시가 유료화 시행 한달 성적표로 발표한 결과다. 숱한 논란과 우려를 딛고 시행을 강행했던 전주시로서는 다행이다 싶었을 법하다. 전주시는 '빠른 정착'의 공을 국보로 승격된 태조어진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으로 돌리고 있다. 보도된 내용으로만 보면, 유료화를 두고 제기됐던 논란 자체가 그야말로 기우였거나 의미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전주시는 그동안 무료로 운영됐던 경기전 관람객 수에 대한 정확한 분석자료조차 없다면서도 관람객들이 유료화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기준을 온전히 관객수 집계에만 의지한 결과다. 유료화에도 경기전 관람이 인기인 것은 전주한옥마을이 세계적 관광명소가 되면서 관광객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고, 조선왕조 발상지가 갖는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생생히 느끼려는 관람객들이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란 뻔 한 해석까지 덧붙였다. 아전인수식 해석도 그렇지만, 불과 한 달동안의 관람객 숫자만으로 유료화 성공 가능성을 자신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쯤 되면 관람객 인식조사도 없이 이런 성과를 내놓을 수 있는 용기는 또 어디서 나오는지도 궁금해진다.

 

경기전은 전주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이라면 놓칠 수없는 답사지다. 지난달에는 '태조어진'이 국보로 승격돼 그 의미는 더 커졌다. 그래서다.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는 '태조어진' 구본 발굴의 과제가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경기전의 태조 이성계 어진은 1409년 전주부의 요청으로 경주 집경전본을 모사해 1410년에 전주부에 봉안한 것이다. 이 태조 어진은 이후 1763년 한차례 수리과정을 거쳤지만 1872년 그 소임을 다하고, 현재 경기전에 봉안된 태조 어진이 새로 제작됐다. 여러 사료들은 이 어진 구본(舊本)이 경기전 안에 묻혀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견이 있기도 하지만 연구자들은 '경기전 구본은 신본을 모신 후에 세초하여 본 전각의 북쪽 섬돌 가에 매안했다'는 「조선왕조실록」기록을 주목하고 있다. 조선시대 태조 어진은 왕의 존재 그 자체였다. 구본의 의미 또한 그만큼 각별하다. '태조 어진' 전주 봉안 600주년이었던 2010년에는 어진 구본 발굴 작업 논의가 제법 진전되었지만,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발굴 자체에 대한 논란이 분분한 탓이다. 역사유물은 발굴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역사적 실체를 확인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역사를 존중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경기전 유료화 목적이 역사를 존중하는데 있다면 이런 과제부터 푸는 일이 우선이다.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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