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민 객원논설위원
"문고장 정문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몇 개월째 붙어있는 경기전 동문의 안내표시. 고장이면 고처야지 왜 이렇게 방치하지?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아니 원래부터 전혀 고장이 아니다. 관리의 편의를 위해 고장을 빙자하고 있을 뿐이다.
사연은 이렇다. 경기전 입장을 유료화하면서 정문에서만 출입이 가능하게 되었다. 동문과 서문은 출구로서의 역할만 한다. 그래서 안에서는 열 수 있지만 밖에서는 열 수 없는 문을 달았다. 그 안쪽에는 잠그면 안에서도 열 수 없는 문이 또 하나 설치되어 있다. 이 문이 입장 마감시간이 되면 고장이 난다. 관리인이 제 때에 퇴근을 하기 위해 관람객이 빠져나가기도 전인데 고장을 핑계로 잠가버리는 것이다. 한 사람의 편리를 위해 많은 사람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불편한 진실' 지금 경기전에 가면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월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인천시 남구의 교육장을 비롯한 장학사(관)들이 워크숍을 겸하여 학생들 수학여행코스를 개발하겠다고 전주한옥마을을 답사하며 안내를 부탁해왔다. 전통문화관에서 시작하여 경기전과 전동성당에서 끝맺으려 했는데 동절기 입장마감시간을 그만 놓치고 말았다. 6시까지인 줄 알고 5시 조금 넘어 도착한 것이다.
교육장이 공무원증까지 내보이며 사정을 해봤지만 요지부동. 수학여행코스 개발을 위해 전주 출신 장학사 한 분이 진전만 보고 나오겠다며 통사정을 해도 쇠귀에 경 읽기! 시간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잘못을 벌충하겠다고 알량한 옛날 직책까지 내세우며 거들어 보았지만 '그런 분이면 원칙을 더 잘 지켜야지요!' 핀잔만 듣고 말았다. 수경행권(守經行權 원칙을 지키되 상황을 고려하여 수시처변한다!)을 전주의 정신이라 내세우며 방금 전까지 자랑을 해왔는데, 그 반대의 실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말았다.
역사적 의미나 상징보다는 관리의 편의성만 쫓게 되지 않을까, 유료화를 반대하던 사람들의 염려가 현실이 되어 나타난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그러고 보니 유료화하면서 보완하겠다던 다양한 콘텐츠는 아직까지도 확인할 수가 없다. 관람 분위기 조성도 안내관람의 시간대가 너무 뜸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입장객 관리를 위해 동입서출(東入西出)의 원칙만 깨지고 정작 의도했던 많은 것들은 아직도 모색중인가 보다. 효율성, 편의성도 중요하지만 경기전이 지니는 위엄에 걸맞은 관리가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 아닌가 싶다.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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