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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의 진정성

이병주의 소설 '지리산'에서 일제 경찰의 습격을 피해 은신처를 지리산 칠선계곡에서 함양군 북단 괘관산으로 옮긴 보광당 등 도령들은 산을 개간하며 장기전에 대비한다. 뒤이어 지리산 거림골과 반천골에 숨어 살던 도령 등도 괘관산으로 이주, 보광당 주변에 거처를 만들고 개간 작업 벌인다. 이들이 당시 개간한 면적은 1만평이 넘는다. 농사꾼보다는 학생이 대부분이었던 도령들에게 개간작업은 매우 힘들었을 것이지만,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일한다. 지리산 풀뿌리로 연명하더라도 일제의 앞잡이가 되지 않겠다며 절규한 도령들에게는 개간의 고단함 조차 호사일 뿐이었다.

 

1945년 5월. 독일이 무조건 항복한 다음 날 괘관산의 도령들은 단합대회를 열어 단체를 통합했다. 통합 출범한 보광당을 이끌어갈 새 두령도 선출했다. 후보는 칠선골의 하준규 두령과 거림골의 차두령이다. 이어 거수 투표로 진행된 이날 통합 두령 선거에서 30명에 불과한 보광당의 하두령이 차두령을 누르고 새 두령에 선출된다. 거림골 도령 50명은 모두 자기편인 차두령에게 거수했지만, 무려 70표를 가진 반천골 식구들 대부분이 하두령에게 거수한 탓이다.

 

하준규가 반천골 식구들의 지지를 얻어낸 것은 당연했다. 칠선골의 보광당은 봄이 되자마자 맨 먼저 괘관산으로 이주, 개간 작업을 했다. 뒤늦게 이주한 거림골과 반천골 사람들은 개간일이 어려울 때마다 하준규를 찾아와 농기구를 빌려달라는 등 도움을 청했고, 하준규는 보광당 도령들 눈치보지 않고 농기구를 빌려주는 '동지애'를 보여주곤 했다. 평소 하준규가 보여준 리더십과 후덕한 모습을 보고 반천골 식구들이 이심전심으로 표를 몰아준 것이다.

 

전주시의회가 최근 전원회의를 열어 '전주·완주 통합 무산'에 따른 '전주·완주 상생 조례' 존폐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리고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존폐 여부를 처리키로 했다. 상생조례 폐지 쪽으로 가닥이 잡힌 분위기다.

 

사실 통합이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완주군민의 찬성표를 유도하기 위해 낯부끄럽게 만든 상생조례는 부적절했다. 과유불급이었다. 결국 통합이 무산되자 전주시 예산을 완주군를 위해 사용하는 조례 자체가 우습게 됐다. 이런 설익은 행태들이 전주 완주 통합을 가로막고 있는 진짜 걸림돌인지 모른다. 전주시가 진정 완주군 통합을 원한다면, 속보이는 당근을 내밀 것이 아니라 하준규처럼 평소에 진정한 마음을 내보여야 한다. 김재호 논설위원

김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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