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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녀에게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긴 기다림에 짧은 만남. 긴 한숨에 잠깐 동안의 웃음. 다시 끝 모를 이별, 한숨, 그리고 이어질 숨죽인 한스런 울음! 턱없이 아쉽지만 이런 장면이라도 기대하고 있었다. 광복 55주년을 기해서야 겨우 시작한 남북이산가족 상봉. 그동안 별별 핑계를 대며 중단하고 취소하고 연기하고 별짓을 다하다가 어렵게 다시 마련된 자리, 진정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려는 간절함을 조마조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민족 최대명절 직전의 날벼락! 도대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이 땅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되는 것일까? 이념이 무엇이고 체제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애타는 가슴에 못질을 해대는 것일까?

 

그들의 '벼랑 끝 작전'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거대한 국가 예산을 물 쓰듯 하면서 초법적 사찰도 마다하지 않는 막강 정보력의 국정원이 이를 전혀 예축하지 못했다는 점. 우리의 소중한 권리까지도 유보한 채 키워온 괴물 기구가 있는데도 우리는 왜 예측불허의 날벼락을 수시로 맞아야 하는 걸까? 이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북측의 동향을 살피고 있지 않았단 말인가? 그들의 속성을 알면서도 손 놓고 있었단 말인가? 국정원 개혁의 목소리가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판국에 또 무슨 해찰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북한의 이런 "반인륜적" 변심을? 그래야 대북 경계심을 더 조장할 수 있고 국정원 존립의 당위성도 확고하게 다질 수 있을 테니까. 조짐이 없지 않았다. 살얼음 위를 걷는 마음으로 조신해야할 판국에 국방장관을 비롯한 고위층인사들은 북을 자극하는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종북세력'을 발본색원 하겠다는 매카시즘의 칼날은 유신군사독재시절을 주눅 들게 할 정도다. 이산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을 고려하지 않고 철지난 이념타령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몰린다고 이런 가락에 장단 맞춰주고 싶었을까?

 

"군자는 자기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 했다. 소인배들이나 남의 탓 하며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 제대로 된 외교라면 상대의 반응이나 전략까지 헤아려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산가족상봉이 "인륜적"이라며 더 서둘렀어야 했고 기왕 합의를 했다면 더 성심을 쏟았어야 했다.

 

명절 끝 '직녀에게'나 흥얼거려야 하는 우리 꼴이 참 처량하다.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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