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출판기념회

출사표(出師表)란 ‘군대를 일으키며 임금에게 올리는 글’이라는 뜻이다. 중국 삼국시대 때 위나라 땅을 수복하지 못하고 죽은 촉나라 황제 유비는 “반드시 북방을 수복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 유언을 받들어 위나라를 토벌하러 떠나는 재상 제갈량이 황제 유선 앞에 나아가 바친 글이 출사표다.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출사표가 잇따르고 있다. 군대를 일으킨다는 뜻의 출사는 출마이고, 출사표는 출마선언문 쯤 되겠다. 출사는 곧 후보의 세(勢) 과시와 비슷한 뜻일 텐데, 요즘엔 출판기념회가 그 대체 수단이다.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의 ‘군사’들이 모인 출판기념회가 있는가 하면 채 100명도 모이지 않은 출판기념회도 있다.

 

선거를 앞둔 후보의 책 출판은 인지도 향상과 선거비용 조달 수단이다. 책을 펴내는 걸 상재(上梓)라 한다. 출판하기 위해 인쇄에 붙인다는 뜻이다. 책값을 넣은 겉봉투에는 대개 ‘축 상재’라 적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축 필승’이나 ‘축 발전’ ‘건투를 빈다’는 표현들이 많다. 전투적인 수사다. 책 낸 주인공한테 승리를 기원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출사표다.

 

출판 행사는 인지도가 낮은 정치신인한테는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다. 하지만 인지도 걱정이 없는 현역 정치인에게는 돈 창구다. 합법적으로 악용되는 현상을 차단하지 않으면 비리창구로 진화할 것이다.

 

책을 발간했다면 어떤 이유로 출마했는지의 ‘왜’(why) 와 향후 어떤 경영능력을 보여줄 것인지의 ‘어떻게’(how to)에 대한 해답이 제시돼야 한다. 제갈량이 쓴 장문의 출사표에는 나라를 걱정하면서 ‘왜’와 ‘어떻게’에 대한 처방과 간곡한 당부가 담겨 있다. 책을 내는 건 민낯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두려움 때문에 책 발간을 접은 이도 많다.

 

성실한 책 주인에겐 미안한 얘기이지만, 요즘 출판기념회에 등장하는 책들을 놓고 비판이 드세다. 단 한 페이지도 본인의 생각이 담기지 않은 책도 있다. 대필 발간, 짜깁기 출간 탓이다. 이걸 갖고 출판기념회를 여는 게 참 뻔뻔하다.

 

이런 사람이 지역을 맡는다면 어찌될지 끔찍하다. 그런데도 눈도장 찍으려는 사람들로 넘친다. 비리의 기미를 보는 것 같다. 공천권을 쥐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판기념회를 여는 것은 더 꼴불견이다. ‘쩐탐(錢貪)’이 심하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이경재
다른기사보기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사람들[줌] 임승종 중소기업중앙회 전북지역본부장 “어려운 기업 지원에 최선 다할 것”

정치일반전북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준비 착착…도–군 협의체 가동

정치일반전북 청년 인구 2050년까지 ‘반 토막’ 전망…정주 여건 근본 점검 필요

정치일반전북도, 제3금융중심지 연내 신청 ‘임박’

정치일반새만금항 신항에 크루즈 입항한다...해양관광 새 지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