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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숙한 영혼의 푸념

   
 
 

“자신의 고향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은 미숙한 초보자다. 모든 땅을 자신의 고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강인한 자다. 그러나 전 세계를 타향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완벽한 자다. 미숙한 영혼의 소유자는 그 자신의 사랑을 세계속 특정한 하나의 장소에 고정시킨다. 강한 자는 그 사랑을 모든 장소에 바치고자 한다. 완벽한 자는 그 자신의 장소를 없애버린다…. 현명한 사람은 한 발짝, 한 발짝 고향에 이별을 고하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12세기 프랑스 철학자 위그(Hugues de Saint Victor)의 말이다. ‘공부’(Didascalicon)에 관한 충고로 끊임없는 정진과 부단한 노력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미 이룬 것에 만족하지 말고 중단 없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탐구하라는 스콜라 철인다운 금언이다.

 

공부와 연구를 뒤로 한 채 고향에서 매실이나 줍는 사람 뜨끔하게 하는 일침! 새벽 두 시간 땀범벅이 되어 매실을 따는데 고작 20kg. 시중가격으로 3만 몇 천원. 한 시간 특강을 해도 그 몇 배를 받을 수 있을 터,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닌데 후유 맥이 풀린다.

 

작년 재작년 kg당 3000~4000원 할 때도 일품이 아까워 필요한 양만 땄었다. 올해는 열매가 땡글땡글 풍년이다 보니 값은 더 떨어져버렸다. 애초 팔려고 벌인 일이 아니라 해도 손에 힘이 모아지지 않는다. 매실 좀 따가라고, 아니 털어놨으니 주워 가라고, 페이스북에 사정을 해봐도 거들떠보는 이 없다. 괜히 초라한 몰골만 드러내고 말았다. 교환가치만 소중하게 여기는 자본세상의 세태를 탓해보지만, 절로 나오는 한숨 멈출 수가 없다.

 

농사를 전문으로 하는 친구에게 하소연 삼아 늘어놓자 저주와도 같은 푸념이 되돌아온다. “7~8월에는 양파 썩는 냄새가 넘쳐날 것이다. 올해는 쌀에서도 양파 냄새가 진동할 것이다.” 지난겨울 날이 따뜻해 양파 하나가 500g 이상으로 크게 들어 어지간한 것은 수확을 포기했단다. 흉년이면 흉년이라 걱정, 풍년이면 풍년이라 걱정이라더니 농촌살림이 똑 그렇다!

 

“올해 담근 360kg의 매실청, 140kg의 매실주, 누구와도 나누지 않겠다!” 고향을 좋아하는 미숙한 영혼, 되지도 않는 오기 아니면 앙심 품어본다. 그래도 복숭아만큼 토실토실해진 매실 아까워 장아찌라도 담아야겠다고 새벽부터 분주하다. 고향이 족쇄라더니 거기 심은 매실까지 멍에가 되어 오그라든 심신을 옥죈다.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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