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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 밭의 상념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이제는 성숙이요 품격이다. 고도성장을 해온 대한민국만의 얘기도 아니고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는 이 지역 거점대학만의 얘기도 아니다. 자그만 매실 밭 가다듬으며 곱씹어 보는 화두다.

 

나무 그루수가 늘어나면서 수확량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처음 열댓 그루에서 몇 십 킬로를 땄을 때만해도 그 양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쉰 그루가 넘어가고 오백 킬로 이상을 딸 수 있게 되자 그 양에 신경을 쓰게 되고 급기야는 천 킬로 수확이라는 꿈같지 않은 꿈까지 꾸게 된다. 무엇에 어떻게 쓸지 고민하지도 않고 무조건 생산량 늘리는 데 골몰하게 된 것이다. 그 일 톤을 넘기면 무슨 좋은 일이 생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 양을 넘긴지 몇 년 되었지만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해야 할 일만 늘어나 손과 발, 어깨와 허리까지 뻐근하다. 감히 전원생활까지는 아니래도 여유 있는 시골살림살이 정도는 기대를 했었는데 수확량 증가에 현혹되어 애초의 바람을 놓치고 말았다. 급기야 수확량이 급증한 올해에 이르러서는 즐거움이 아니라 무거운 짐이 되어 마음까지 억누르게 된다. 벗어나야 한다, 이 성장의 숫자놀음에서. 신새벽에 톱과 낫을 들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수확량 늘리기 위해 여기저기 심은 나무들이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기왕의 감나무를 위협하고 새로 심은 이팝나무의 성장도 방해한다. 무성한 가지와 잎은 채소에게 돌아갈 응분의 햇볕과 바람까지 가로막는다.

 

모든 성장에는 성장통(痛)이 따르게 마련. 고도성장으로 인한 공해, 상태파괴, 공동체 해체 등의 대가에 시달리는 대한민국이 그렇고, 실적 위주의 연구를 위한 연구, 취업을 위해 영혼까지 팔겠다는, 비인간화한 대학이 그렇다.

 

그래서 막 출발한 의욕 충만의 민선 6기 단체장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이제 성장의 경제지표가 아니라 품격의 삶의 질을 고민하자고. 관광의 일시적 성취가 아니라 문화와 생태의 지속가능성에 더 비중을 두자고. 무엇(목표)이 아니라 어떻게(방법과 과정)에 더 주목하자고.

 

말을 타고 달리는 인디언들은 중간에 자주 쉰다고 한다. 뒤처진 영혼이 따라붙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성장과 속도를 내세우면서 놓친 것은 무엇인지, 이제는 뒤돌아봐야 한다.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망가지기 전에, 진정 바람직한 사회나 대학, 지자체나 시골살림살이가 무엇인지, 되짚어봐야 한다.

 

매실나무 베어내며 가시에 찔린 상념들이 갈팡질팡, 아프게 서걱거린다.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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