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나무가 아니라 숲을!

   
 

의과대학 실험실에서의 얘기다. 파리, 모기 등 곤충들의 다리를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그 절지동물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시험시간. 한 학생이 얼굴을 찡그리며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포기하고 일어난다. 백지답안지를 제출하고 나가려 하자 교수가 제지하고 나선다. “학생, 이름이 무엇인가?” 그러자 문을 향하던 학생이 돌아보지도 않고 바지를 걷어 올린다. “이 다리 보고 제 이름 알아맞혀보세요!”

 

인터넷에 떠도는 우스개얘기다. 그러나 쓴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함축이 읽히기도 한다. 시험을 위한 시험! 지나치게 미시적인, 그래서 부분만 보고 전체는 놓치는 분과학문의 한계를 돌아보게도 한다.

 

중등학교 국어시험 시에 관한 문제 중에는 그 시를 지은 시인도 풀지 못하는 게 있다. 그야말로 문제를 위한 문제, 시의 이해에 도움이 전혀 안 되는 억지 문제다. 하도 많은 시험을 치르다 보니 중복을 피하기 위해 어렵게 짜낸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이런 억지춘향을 감내해야 한다. 문제는 대학에 가서도 이런 엉터리 평가가 지속된다는 거.

 

미시적 분과학문의 폐해는 더욱 심각하다. 전체를 아우르지 못하는 절름발이 지식을 가지고도 당당히 전문가로 행세한다. 아니 존경까지 받는다. 4대강사업에 도움을 준 많은 교수와 전문지식인들. 흐르지 않는 물이 썩는다는 사실은 전문적 수련이 필요한 지식이 아니라 그냥 상식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복잡한 전문 지식과 논리를 내세워 이 평범한 상식마저 호도해버린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큰빗이끼벌레 문제만 해도 그렇다. 강물이 흐르지 못해 썩어서 생긴 것인데도 잘난 전문가들은 미시적 분석이 필요하다며 판단을 보류하고 있다. 4대강사업에 도움을 준 토목, 건축, 지질 전문가들도 여전히 자기 분야에만 매몰되어 그것이 초래한 총체적 부작용에는 애써 눈을 감아 버린다. 여전히 현미경으로 곤충 다리만 살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두렵다. 의욕에 찬 민선 6기 단체장들이 전임과 다른 성과를 급하게 내기 위해 엉터리 전문가들에게 기대는 꼴이. 오랜 세월 다양한 논의를 통해 겨우 방향을 잡은 사업까지 “원점에서 다시 살피겠다!”고 나댄다. 그 뒤에는 분명 그 논의에서 소외됐던 몇몇 전문가의 불만 섞인 문제제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웃자고 한 우스개얘기에 너무 죽자고 덤빈 것은 아닌가, 나무에 매달려 숲은 보지 못한 채?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사람들[줌] 임승종 중소기업중앙회 전북지역본부장 “어려운 기업 지원에 최선 다할 것”

정치일반전북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준비 착착…도–군 협의체 가동

정치일반전북 청년 인구 2050년까지 ‘반 토막’ 전망…정주 여건 근본 점검 필요

정치일반전북도, 제3금융중심지 연내 신청 ‘임박’

정치일반새만금항 신항에 크루즈 입항한다...해양관광 새 지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