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윤도(輪圖)와 장인

윤도(輪圖)는 ‘가운데에 지남침을 장치하고 가장자리에 원을 그려 24방위로 나누어 놓아, 방위를 헤아리는 데 쓰는 기구’다. 일종의 나침반인 윤도는 지관들의 전유물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주역을 바탕으로 풍수지리를 보는데는 윤도가 필수품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다양한 분야에서 윤도가 쓰이기 시작하면서 조선시대에는 사대부를 통해 일상용품으로까지 발전했다. 그들은 거울을 단 ‘면경철’, 부채 끝에 매다는 ‘선추’, 십장생 등 조각품으로 모양을 낸 대형 윤도까지, 예술성을 살린 소장품으로도 윤도를 생활 속에 들여놓았다.

 

1950-60년대만 해도 윤도는 꽤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현대식 나침반이 나오면서 윤도 자리에 값싸게 구할 수 있는 나침반이 들어서게 됐다. 일상이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되는 지금은 나침반 또한 쓰임새로서의 역할이 적어졌으니 이제 윤도는 더욱이나 낯선 존재가 됐다.

 

우리 지역에는 윤도를 만드는 장인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단 한명, 중요무형문화재 제 110호인 윤도장 김종대씨가 그다. 여러해 전 그를 만난 적이 있다. 그가 살고 있는 고창군 성내면 산림리 낙산마을은 윤도를 만드는 전통을 300년 넘게 지켜온 곳이다.

 

윤도는 대개 크기로 종류가 나누어진다. 윤도에 그어진 원이 만들어낸 한 칸을 ‘층’이라고 부르는데 1층부터 24층까지 그 쓰임이나 내용에 따라 종류가 구별된다. 윤도를 만드는데 에는 아무리 층(원의 수)이 적어도 4-5일, 24층짜리는 4개월이 족히 넘게 걸린다. 윤도는 대추나무로 만드는데, 그것도 200년 넘은 고목이어야 한다. 단단하고 갈라지지 않으며 각을 할 때 연하면서도 잘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200년 넘은 고목이 곧바로 글자를 파낼 수 있는 재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잘라진 채로 물속에 1-2년, 다시 은근한 곳에 말려서 3년 정도는 놓아둔 후에라야 비로소 칼을 댈 수 있게 된다. 윤도위에 글자를 새겨 넣는 각(刻)은 본을 뜨거나 연필로 글자를 쓴 위에 하는 것이 아니라 조각칼로 직접 파낸다. 깨알처럼 가는 글자를 수천자 새겨넣어야하니 아무리 숙련된 장인이라 해도 고행이 아닐 수 없지만 덕분에 예술적 가치가 높다.

 

윤도는 이제 더 이상 돈이 되지 않는다. 장인은 쓰임새를 다한 윤도의 가치를 예술품으로라도 살려내기 위해 나섰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이런 상황은 윤도뿐이 아니다. 안타깝지만 우리 전통공예가 처한 현실이다.

김은정
다른기사보기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사람들[줌] 임승종 중소기업중앙회 전북지역본부장 “어려운 기업 지원에 최선 다할 것”

정치일반전북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준비 착착…도–군 협의체 가동

정치일반전북 청년 인구 2050년까지 ‘반 토막’ 전망…정주 여건 근본 점검 필요

정치일반전북도, 제3금융중심지 연내 신청 ‘임박’

정치일반새만금항 신항에 크루즈 입항한다...해양관광 새 지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