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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의 저주

지난 2006년 11월 15일 서울 남산 하얏트 호텔.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과 금호아시아나그룹 부회장이 웃으면서 대우건설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주식 72%의 매각대금은 6조4255억원. 국내 기업 M&A 사상 최대 규모였다. 하지만 2년여 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금호아시아나는 대우건설을 토해내야만 했다. 결국 막대한 손실을 입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경영책임을 둘러싸고 오너 형제간에 분쟁으로 번지면서 그룹이 둘로 쪼개지는 상황에 처했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였다.

 

지난 2007년 극동건설을 M&A 했던 웅진그룹도 사정은 마찬가지. 시장 평가금액의 2배가 넘는 6600억원에 극동건설을 인수했던 웅진그룹은 유동성위기를 겪으면서 결국 모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웅진코웨이 웅진식품 등 주력사는 매각해야만 했다. (주)건영을 인수했던 LIG그룹은 더 참혹한 결과를 빚었다. 그룹 해체뿐만 아니라 사기성 CP 발행으로 오너 일가는 법정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승자의 저주가 재계에 뼈저린 교훈을 남긴 것이다.

 

승자의 저주는 미국 석유개발회사인 애틀랜틱 리치필드사의 엔지니어인 카펜, 클랩, 캠벨 등 3명이 1971년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언급됐다. 1950년대 미국 석유기업들이 멕시코만의 석유시추권 공개입찰에 참여했는데 당시에는 석유매장량 측정 기술이 부족해 추정해서 입찰가격을 써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과열 경쟁으로 고가 낙찰기업들이 큰 손해를 보기도 했는데 이런 상황을 이들이 ‘승자의 저주’라고 명명했다. 이후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가 1992년 발간한 ‘승자의 저주’(The Winner’s Curse)라는 책을 통해 통용됐다.

 

최근 자치단체 금고 유치 경쟁에서도 ‘승자의 저주’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금고유치를 위해 금융기관들이 통 큰 베팅에 나서면서 실익없는 장사라는 분석이다. 올 초 26조원 규모의 서울시 금고를 수주한 우리은행은 향후 4년간 1200억원의 협력기금을 출연하기로 했다. 그나마 4년전 1700억원 보다 500억원이 줄어들었다. 지난달 인천시금고를 재유치한 신한은행은 470억원을 협력사업비로 제안했다.

 

도내서도 시·군금고 유치에 나선 농협은행과 전북은행의 경쟁이 과열되면서 자치단체들만 쾌재를 부르고 있다. 지난달 부안군 2금고에서 탈락한 전북은행이 정읍시금고 유치전에 올인하면서 20억원의 협력기금을 써넣어 농협을 제꼈다. 그러자 농협은행이 완주군금고 선정때 20억원의 협력기금을 제안, 12억원을 써낸 전북은행으로부터 1금고를 탈환했다. 장군 멍군이지만 서로 상처뿐인 승리인 셈이다.

권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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