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경(奔競)’은 분추경리(奔趨競利)의 준말로, 벼슬을 얻기 위해 상급자의 집에 분주하게 드나들며 엽관운동하는 걸 말한다. 하급관리가 상급관리의 집을 방문해 인사청탁을 하다 걸리면 곤장 100대에 3000리 밖 유배형에 처해졌다. 곤장 100대면 사형에 가까운 형벌이고, 유형 3000리라면 사실상 조선 땅을 떠나라는 형벌이다. 정종 원년(1399년)에 이런 지시가 있었고 성종 원년(1470년)에는 경국대전에 법제화되었다.
이보다 더 무서운 법이 장리처벌법이다. ‘장리(臟吏)’는 뇌물 횡령 등 부패 공무원을 일컫는다. 이 법이 무서운 이유는 비리 당사자뿐 아니라 가문 자체가 처벌 받기 때문이다. 부패 공무원으로 낙인 찍히면 아들과 손자 등 3대의 공직임용이 금지된다. 자손 대대로 공직사회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한 매우 엄한 법이다. 당시 엽관운동이 얼마나 성행했으면, 그리고 부패 공무원이 얼마나 많았으면 이런 가혹한 법률이 나왔을까 싶다.
지금 ‘김영란 법’이 국민지지를 받고 있는 것도 공직비리가 만연해 있고 수법 또한 교묘해진 탓이겠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추진한 이 법안은 100만 원을 초과한 금품을 수수하면 대가성과 직무 관련성을 따지지 않고 형사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애초 국회, 법원, 정부와 정부 출자 공공기관, 공공 유관단체, 국·공립학교 종사자가 대상이었지만 국회 정무위에서 언론사, 사립학교·사립유치원 종사자 등과 그 가족으로 확대해 논란이 일었다.
가족 연좌 따위의 시대착오적인 형벌이 오늘날에도 운위되는 게 놀랍다. 마치 조선시대 장리처벌법을 연상케 한다. 문제는 국회에 있다. 이 법안은 2012년 제안∼2013년 8월 정부안 국회 제출∼올해 1월8일 국회 정무위 통과 등 2년 넘게 진행돼 왔다. 허송세월해 놓고는 이제와서 적용대상과 처벌기준을 놓고 여야가 서로 손가락질을 해대고 있는 꼴이 영 보기에 좋지 않다. · 수석논설위원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