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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3·1만세운동

96년전 3월은 만세운동과 시가행진이 들불처럼 일어난 시기이다. 1919년 3월1일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뒤 자주독립 만세운동은 방방곡곡에서 한달 내내 계속됐다. 전북의 첫 만세운동은 옥구교회 신도 70여명이 시위를 벌인 3일이었다. 좀 늦은 이유는 서울과 연락이 제대로 안된 데다 독립선언서의 전달이 늦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북의 만세시위로는 임실 오수시장 시위와 익산시장 시위, 남원 덕과면 식목일 만세시위를 3대 시위로 꼽는다. 이중 가장 큰 규모는 장날인 20일 오수시장 시위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20∼30명이 모였으나 점차 불어나 2000여명으로 늘었다. 그러자 일본 경찰은 이기송, 이만의 선생을 연행해 구속시켰고, 흥분한 군중들은 구속인사 석방을 요구하며 경찰관 주재소를 습격하고 면사무소를 점거했다. 일본군 헌병대와 경찰은 총기를 난사하며 강제 진압에 나섰고 많은 애국지사들이 연행됐다. 당시 전주 이씨 효령대군파 집성촌인 임실군 오수면 둔덕리 문중 인사들의 만세시위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된다. 한 집안에서 16명이나 되는 인사들이 일본 경찰에 잡혀가 고문과 옥살이를 했다(전북향토문화연구회 회보 3월호)

 

광복 70주년 기념 ‘3·1만세운동 전국학술대회’가 17일 오후 1시부터 충절의 고장인 임실군청에서 열린다. 김종수 군산대 교수(사학과)는 발제 ‘호남지역의 3·1운동’에서 “호남의 3·1운동이 타 지역보다 소극적이었다는 일반적인 인식은 일제의 잘못된 통계에 의한 것으로 시정돼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조선총독부 발표 3·1운동 가담자 수는 전북 3710명, 전남 2868명으로 충북(3만2730명) 충남(4만명)보다 훨씬 적고 만세 횟수(3월1일∼4월10일)도 전북 39회, 전남 44회로 충북(56회) 충남(75회)에 비해 매우 적다. 이같은 조선총독부 통계는 실제보다 축소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 예로 전북의 실제 만세시위는 184회(김남수의 ‘전북지방의 3.1운동에 대한 연구’), 전남은 90여회(한규무의 ‘광주전남 기독교인들의 3·1운동 참여와 동향’)라는 사실을 들었다.

 

올해로 광복 70주년을 맞는다. 전북일보와 임실군, (사)소충·사선문화제전위원회가 학술대회를 열어 잘못된 기록을 바로 잡고 의미를 되새기는 건 큰 의미를 갖는다. 아울러 이 나라가 풍찬노숙하며 목숨을 내놓고 지켜온 선열들의 희생 위에 서 있다는 사실도 한번쯤 반추해 볼 일이다. · 수석논설위원

이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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