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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화(禍)

 

일제 강점기, 대중들을 말로 웃기고 울렸던 만담가가 있다. 만담이 독자적인 영역을 갖게 된 것도 그의 영향이 큰데, 그만큼 그의 만담은 풍자와 해학이 넘쳤다.

 

본명은 신흥식. 우리에게 신불출로 더 잘 알려진 그는 극작으로도 이름을 날렸고, 유행가를 부르는 성악가로도 활동했으며 극단 배우로 활동했던 다재다능한 예술인이었다. 그는 일제의 철저한 감시를 받으면서도 연극 공연 무대에서 대본에만 따르지 않고 자기 식으로 바꾸어 연기하곤 했는데, 한 작품의 마지막 대사가 독립정신을 고취했다는 이유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기도 했다. ‘다시는 서울 무대에 서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서야 석방되었지만 뜻을 굽히지 않고 서울이 아닌 변방의 무대에서 세태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연극 공연을 지속적으로 펼쳤다.

 

1905년 개성에서 태어난 그의 성장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스무 살 무렵 상경해 극단 연구생으로 예술 활동을 시작하면서 다재다능한 재능을 보였으며 그중에서도 만담에 탁월했다고 한다. 1947년 즈음 월북한 그는 만담가로는 이례적으로 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으로 활동했지만 1962년, 북한의 통제적인 문화정책을 비판했다며 모든 공직을 빼앗긴 뒤 생사 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1930년대, 그의 만담은 유성기 음반으로 제작될 정도로 대중들의 인기를 끌었다. ‘곰보타령’ ‘엿줘라타령’ ‘망둥이 세 마리’ 등이 대표작으로 남아 있는데 세태를 신랄하게 풍자하며 해학으로 승화시켜낸 그의 만담이 민중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만담에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던 그도 ‘설화(舌禍)’로 고초를 겪었다. 이른바 ‘신불출 설화사건’이다. 말로 살아온 그가 말로 화를 불렀으니 말의 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선거철이 되니 어김없이 여기저기서 설화가 작동한다.

 

며칠 전 전주를 찾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발언이 논란에 휩싸였다. 보도에 따르면 김 대표는 지원 유세 도중 유권자들을 향해 ‘여러분들(전북도민) 배알도 없습니까 전북도민 여러분 정신 차리십시오’라고 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전북도민들을 비하하는 훈계이고 호통이 아닌가. 논란이 뜨거워지자 새누리당이 해명에 나섰지만 그 해명이 더 화를 불러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탈무드에 ‘말은 한번 밖으로 나오면 당신의 상전이 된다’는 격언이 있다. 말이 부른 화는 말의 주인에게 가기 마련이다.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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