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학교 졸업식의 분위기는 숙연하고 비장했다. 뜻도 모르고 감흥도 없는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이라는 졸업가 합창이 이어질 때쯤이면 교실 한 켠에서는 어느 여학생의 코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그 소리는 마음과 마음을 타고 전해져 어느덧 교실을 울음바다로 바꿔놓았다. 이런 가운데서도 정신을 놓지 않은(?) 남학생들은 애써 까불고 장난치며 분위기를 이겨보려고 하지만, 그 심상치 않은 기운에 눌려 슬그머니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당시의 시골에서는 도시와는 달리 학교를 졸업한 뒤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도회지로 떠나야 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누구는 식모살이를 하러 간다고 하고, 누구는 당숙네 일을 도우러 간다고 했다. 서로의 처지를 알지만 입 밖에 꺼내기는 두려웠다.
졸업식은 나름 성대했다. 가족들만의 단출한 행사였던 입학식과는 달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 이모와 고모, 삼촌네 조카까지 일가친척이 모두 나와 축하해줬다. 흐릿한 사진 한 장을 건지기 위해 세찬 바람 속에서 기다렸다가 차례대로 완장 찬 사진사 앞을 지나는 일도 거르지 않았다. 사진 찍기가 끝나면 중국집으로 향했다. 짜장면 한 그릇씩이 기본이고 거기에 탕수육이 더해지면 모두가 행복했다.
오늘날의 졸업식은 많이 다르다. 졸업이 하나의 매듭이라기보다는 상급학교로 가는 징검다리이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다시 만날 수 있으니 이별을 슬퍼할 이유도 없다. 몇 년 전까지 기승을 부렸던 밀가루 뿌리기와 교복 찢기, 알몸공연 등 폭력적인 모습들도 많이 사라진 듯하다. 딱딱하고 지루한 행사 대신에 흥겨운 문화축제나 이벤트 형식으로 졸업식을 치르는 학교도 많다. 학교에서 배우고 익힌 것을 서로 뽐내며 맘껏 끼를 발산하기도 한다. 참석자들까지 모두가 행복하고 부담없는 졸업식이다.
옛날 시골학교 졸업식의 안타까운 모습은 이제 대학으로 옮겨온 듯하다. 긍지와 자부심의 상징이던 학사모 쓰기가 두려워 아예 졸업식에 얼굴을 내밀지 않는 졸업생들도 적지 않다. 졸업식에 나오더라도 행사장에 참석하기보다는 슬그머니 왔다가 쉬쉬하며 가기도 한다. 삼포세대, 오포세대, 칠포세대, N포세대라는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미래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의 졸업식이 다시 예전처럼 환한 자리가 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성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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