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1일과 6일, 2일과 7일, 3일과 8일, 4일과 9일, 이렇게 짝이 맞추어진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전국을 떠돌던 장꾼들은 어김없이 모여들었다. 색색이 곱디고운 꽃무늬 옷에, 반짝 반짝 윤나는 흰 구두, 모양도 다양한 시계며 아롱다롱 이부자리까지, 장꾼들은 신나게 판을 열고 손님을 기다렸다. 그곳은 소통의 공간, 인간다움이 회복되는 생생히 살아 있는 공간이었다.
사실 오일장의 시련은 그 이전에도 있었다. 1970년대쯤에는 새마을 운동으로 정부가 나서 5일장을 없애거나 축소시키겠다고 나섰었다. 지나친 소비를 조장하고 불공정 거래가 성행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농민들이 관습적으로 시장을 이용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으니 그로 인해 농업 생산성이 저하된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농촌의 퇴폐풍조를 조장하고 있다는 혐의(?)까지 받았던 오일장은 그러나 끝내 살아남았다.
위기에 처해있던 오일장에 도시사람들이 찾아왔던 시절이 있었다. 그들에게 5일장은 아련하고 그리운 추억의 풍경이었다. 그 풍경의 대부분이 사라진 뒤였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지친 현대인들에게 위안과 즐거움을 주는 그 공간의 의미는 유효했다. 그러나 현대화란 이름으로 옛것을 모조리 부수어 대형 마켓의 아류를 만들어내는 일이 지속되면서 그 아득한 그리움의 장날 풍경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은 줄기 시작했다.
오래된 시간을 담은 풍경이 사라지고 있다. 장날 풍경도 그 중 하나다. 소중한 것들을 기억으로만 만나게 되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