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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가게와 포장

우리나라에는 흔치 않지만 유럽이나 일본에는 문을 연지 100년이 넘는 오래된 가게가 적지 않다. 한 자료를 보니 일본에는 노포(老鋪)라고 불리는 100년 넘는 가게가 2만 7천 300개나 된다. 사실 100년 동안 대를 물려온 가게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브랜드가 된다.

 

도쿄에 있는 ‘긴자’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번화가다. 1872년 대화재로 잿더미가 된 이 거리를 일본 정부는 일본 최초의 근대화 거리로 재건했다. 도쿄의 첫 백화점이 들어선 곳이기도 한 긴자는 내로라하는 백화점과 세계적인 유명브랜드 샵들이 몰려있어 가장 화려하고 비싼 거리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렇다고 긴자에 화려한 가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굳이 골목길이 아니더라도 호화스러운 건물 사이에 오래된 가게들이 건재하다.

 

화방 ‘게코소’도 그 중 하나다. 1917년 문을 연 게코소는 올해로 꼭 100년이 됐다. 10평이나 될까 말까 한 이 작은 가게는 낡고 고색창연한 건물의 1층에 자리 잡고 있는데, 가게 안 역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 100년 세월이 그대로 묻어난다.

 

세계 최초로 코발트블루 컬러를 만드는 기술을 발명해냈다는 이 가게는 이미 건축가나 미술을 전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곳인데, 물감 뿐 아니라 스케치북과 지우개 붓 등 스물여섯가지 고유한 형식과 재질의 문구류를 만들어 특허를 딴 곳이기도 하다.

 

여행길에 이곳을 들렀다. 비좁은 공간에 놓인 아름다운 색깔의 물감과 화구, 온갖 문구류가 마음을 끌었다. 물감을 비롯해 대부분의 문구류는 장인이 직접 손으로 만드는 것이라는데 이것저것 구경하는 재미가 컸다. 다 쓸 때까지 말라붙지 않는다는 지우개며 심플한 디자인에 굵기가 다양한 연필을 샀다. 계산을 하고 포장을 부탁했더니 잠시 머뭇거리던 주인아저씨가 몇 장의 종이를 찾아 올려놓았다. 모두 제각각인 전단지들이었는데 구겨지거나 찢겨진 그 전단지를 손바닥으로 쫙쫙 펴서 종류별로 포장을 해주었다. 음식점 쇼핑몰 등 포장한 전단지의 내용이 다양했다. 함께 넣어준 비닐 팩 역시 재활용이었다. 작은 물건 하나라도 예쁜 포장지로 정성껏 싸주는 나라가 일본이 아니던가 싶어 잠시 의아했지만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나중에 이 가게에서는 합리적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포장과 할인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소비자를 위한 진정성이 읽혀졌다.

 

생각해보니 우리에게도 그런 가게들이 있었다. 학교 앞 문방구와 동네 골목을 지키던 구멍가게들. 그런데 우리는 이 소중한 것들을 너무 빨리 쉽게 잃었다. 이 오래된 가게가 준 감동이 크다.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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