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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병과 스티븐 호킹 박사

미국의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명문 구단 뉴욕 양키스(New York Yankees)에는 4번 선수가 없다. 1920년대와 30년대 양키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전설의 타자 루 게릭(Henry Louis Gehrig 1903~1941)을 기리기 위해 구단이 등 번호 4번을 영구 결번((Retired Number)으로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루 게릭은 10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메이저리그가 배출해낸 수많은 스타 선수 중에서도 단연 손꼽히는 선수다. 1923년 스무 살에 입단한 그의 평균 타율은 3할 4푼, 1939년 은퇴할 때까지 493개의 홈런과 연속 2130경기 출장이라는 기록을 세운 그를 팬들은 ‘철인’이라 불렀다.

 

그런데 1938년 갑자기 그의 타율이 3할 이하로 떨어졌다. 피곤하고 팔다리에 힘이 없어지는 이상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증상이 더 심해져 더 이상 야구를 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이듬해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근육이 마비되어 음식을 삼키지도 못하고 더 이상 걸을 수도 먹지도 못하게 되는 이 병의 이름은 ‘근위축성측색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뇌와 척수에 있는 운동신경원이 손상되는 질환이니 운동선수로서는 더욱 치명적인 병이다. 원인이나 과정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고 치료법도 없는 이병이 처음 보고 된 것은 1869년이지만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39년 루 게릭이 이 병을 앓게 되면서 부터였다. 루 게릭은 투병한지 3년 만에 사망했는데, 이후 이 병의 이름은 ‘루게릭병’으로 불리게 됐다.

 

운동세포나 근육은 파괴되지만 의식은 또렷해 더 큰 고통을 안게 되는 이 병은 발병 3~5년 사이에 대부분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적적으로 수명을 연장한 사람도 있다. 천재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다. 호킹 박사는 1963년, 스물한 살 때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그 역시 근육이 마비되고 걷지 못하고 음식을 먹지 못하는 고통을 비켜갈 수 없었으나 혼자 숨 쉬는 일조차도 어려운 극한 상황에서도 천재적인 연구능력으로 우주의 생성과 운영의 원리를 비롯한 놀라운 이론들을 내놓으며 과학의 대중화를 이끌어냈다.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한 채 컴퓨터 음성 재생 장치와 모니터, 적외선 통신 등을 이용해 의사소통을 하면서도 루게릭병과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학문적 업적 못지않게 저술과 강연회, TV 프로그램 등 다양한 통로로 대중들을 감동시켰다.

 

놀라운 정신력으로 세계의 수많은 물리학자들을 키우고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했던 시대의 영웅, 호킹 박사가 지난 14일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루게릭병이 그에게 온지 55년. 기적이다.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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