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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된 부자

프랑스와 영국이 벌인 백년전쟁(1337년~1453년)은 자그마치 116년 동안 지속됐다. 휴전과 전쟁을 거듭하면서 이어진 이 지루한 전쟁은 초기, 영국군이 대세를 이어갔지만 프랑스군이 다시 승기를 잡아 뺏겼던 영토를 되찾기 시작해 1453년 마침내 보르도까지 되찾으면서 전쟁을 끝냈다.

 

전쟁의 폐해는 컸다. 특히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영국군에게 함락됐던 도시들은 수많은 중세의 기사들과 시민들이 목숨을 잃고 정치적 보복과 식민 치하의 수난을 겪어야 했다.

 

프랑스 북부의 항만도시 칼레도 그 중의 하나다. 칼레는 1347년 영국군에게 함락됐다. 한때 에스파냐령에 놓이기도 했지만 프랑스가 다시 칼레를 되찾은 것이 1598년이니 어찌됐든 칼레는 251년이나 프랑스가 아닌 다른 나라 식민지로 통치를 받아온 셈이다.

 

칼레의 영웅 이야기가 있다. 백년전쟁의 시기, 칼레를 점령한 영국군에게 저항했던 여섯 명 시민들의 이야기다.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칼레 항을 포위해 점령했지만 칼레 시민들은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시민들은 불로뉴 백작이 지은 성채를 사수하며 서로를 의지해 1년 가깝게 영국군에 저항했다. 양식이 바닥나 더 이상의 저항이 불가능하게 되고서야 칼레 시는 영국군에 항복했다. 에드워드 3세는 항복을 받아들이면서도 무거운 조건을 내걸었다. 시민들을 공격하지 않는 대신 칼레의 유지 여섯 명 목숨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일에 누가 나설 수 있었을까. 가장 먼저 나선 사람은 유스타슈 생 피에르. 칼레의 가장 큰 부자였다. 그가 맨발에 동아줄을 걸고 나가겠다고 나서자 다른 유지들도 뒤를 이었는데 그 숫자가 여섯 명이나 되었다. 피에르는 가장 늦게 오는 사람을 빼자고 제안했다. 다음날,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피에르였다. 사람들이 그를 찾아갔지만 그는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바뀔 것을 염려해 자신이 먼저 목숨을 끊었던 것이다. 그의 희생정신에 감격한 여섯 명 유지들은 동요하지 않고 교수대에 섰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남았다. 에드워드 3세의 왕비가 간청한 덕분이었다.

 

‘갑질’의 상징이 된 대한항공 총수 가족이 줄줄이 조사 받고 있다. 한심한 광경이다. 영웅이 된 피에르와 여섯 명 부자 이야기가 더 새롭다.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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