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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건축기행] 공주 중동 언덕 위 붉은 벽돌 건축의 재발견 ‘충남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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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시 중동 구도심의 가파른 언덕길을 천천히 오르다 보면 거대한 건축물 하나가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계절마다 벚꽃과 단풍이 번갈아 물드는 언덕 위에 자리한 ‘충청남도역사박물관’이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붉은 벽돌 외벽과 육중한 기둥은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반세기 넘는 시간을 견뎌온 이 건물은 최근 충남도 우수건축자산으로 등록되며 지역 근대건축의 상징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우수건축자산은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지정되지 않는다. 건축물의 역사성과 예술성, 지역 경관과의 조화, 사회·문화적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선정한다. 충남도는 올해 처음으로 충남역사박물관과 아산 구정아트센터·온양민속박물관 본관, 당진 합덕 문화공감플랫폼 등 4곳을 우수건축자산으로 선정했다. 충남역사박물관은 상징적인 ‘제1호’ 자리를 차지했다. 반세기 넘게 공주 원도심을 지켜온 시간이 건축문화적 가치로 공식 인정받은 셈이다.

◇무령왕릉 발굴과 박물관의 탄생

충남역사박물관의 시작은 백제사 연구의 흐름을 바꿔놓은 역사적 사건에서 출발한다. 1971년 공주 송산리고분군 6호분의 배수로 공사 과정에서 백제 제25대 무령왕과 왕비의 합장릉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한국 고고학계는 물론 사회 전체에 큰 파장을 안긴 사건이었다. 무령왕릉 발굴은 백제사 연구의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그동안 문헌 중심으로 이뤄졌던 백제 연구가 실물 유물을 바탕으로 본격화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발굴 현장에서는 금제관식과 지석, 청동거울 등 수많은 국보급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정부는 갑작스럽게 출토된 유물을 보관하고 전시할 공간이 필요해 새로운 박물관 건립을 추진했다. 그렇게 1973년 공주시 중동 언덕에 국립중앙박물관 공주분관이 문을 열었고, 1975년 국립공주박물관으로 승격됐다.

무령왕릉 발굴 이후 백제 문화에 대한 관심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공주는 지방 도시를 넘어 백제 역사문화의 중심지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후 역사도시로서의 정체성을 본격적으로 구축해 나갔다. 당시 박물관 건립에는 백제 문화 복원과 국가 정체성 재정립이라는 시대적 흐름도 함께 반영돼 있었다.

충남역사박물관의 뿌리 역시 이러한 역사문화 흐름과 맞닿아 있다. 이후 2004년 국립공주박물관이 웅진동으로 신축 이전하면서 옛 건물은 역할을 마치는 듯했지만, 개보수를 거쳐 2006년 충남역사박물관으로 다시 문을 열며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됐다. 건물의 기능은 달라졌지만 공주 역사문화의 중심 공간이라는 역할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70년대의 미학, 건축물 자체의 가치

충남역사박물관을 설계한 이는 대한민국 1세대 건축가로 평가받는 고(故) 이희태 선생이다. 그는 혜화동성당과 절두산 순교성당, 남산 국립극장, 국립경주박물관, 부산시립박물관 등을 설계하며 한국 현대 공공건축의 흐름을 이끈 인물로 꼽힌다.

이희태는 당대 건축계 주류와는 다소 다른 길을 걸었다. 화려한 해외 유학 경력보다 스스로 현대건축을 탐구하며 자신만의 건축 세계를 구축했다. 특히 한국 전통건축을 현대 건축 언어 속에서 재해석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이어갔다.

그가 주목했던 건축물은 경복궁 경회루였다. 공주박물관 하부를 떠받치는 육중한 콘크리트 기둥 역시 경회루 석주를 현대적으로 변형한 형태다. 건물을 떠받치는 거대한 기둥 구조는 당시 공공건축 특유의 웅장함을 드러낸다.

건축물 곳곳에는 무령왕릉의 흔적도 녹아 있다. 건물 외벽을 감싸는 붉은 벽돌은 왕릉의 내부 구조에서 착안한 디자인 요소다.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아치형 창틀 역시 왕릉 입구 형상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관의 비례감도 인상적이다. 화려한 장식을 내세우기보다 절제된 선과 균형감을 강조한 건물은 1970년대 공공건축이 지녔던 시대적 미학을 보여준다. 정교하게 쌓아 올린 벽돌 외벽과 화강석 기단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은 색감과 무게감을 만들어낸다.

박물관 내부에는 1970년대 공공건축 특유의 구조와 분위기가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다. 붉은 벽돌과 화강석이 어우러진 내부 공간에서는 당시 건축 양식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이 건축물이 지닌 가장 큰 가치 가운데 하나는 ‘원형의 보존’이다. 여러 차례 보수와 리모델링을 거쳤음에도 건축물의 핵심적인 특징과 역사적 분위기를 비교적 온전히 유지하고 있다.

건축물 자체도 충남 근대건축의 흐름과 지역의 시간을 보여주는 역사적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공주 원도심 한가운데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벽돌 외관의 건물은 도시의 풍경과 함께 세월의 흔적을 쌓아왔다.

◇충남 선비정신의 뿌리

박물관 내부로 발길을 옮기면 충남을 지탱해온 유교문화와 선비정신의 흔적과 마주하게 된다. 충남역사박물관은 조선시대 충청도를 대표했던 유교 문화 유물들의 보고이기도 하다.

전시실에는 충남 지역 명문가들이 대대로 간직해온 고서와 서화, 생활유물 등이 다수 전시돼 있다. 화려한 연출보다 기록과 삶 자체에 집중한 전시가 특징이다. 묵향 짙은 선비들의 삶을 정갈하게 보여주는 공간에 가깝다.

충절과 예학을 중시했던 충남 선비문화의 특징은 유물 곳곳에 남아 있다. 선비들이 사용했던 붓과 벼루, 가족에게 보낸 편지글 등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고민을 보여주는 기록으로 읽힌다.

오래된 문집과 생활유물에는 당시 지역 사회의 문화와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역 명문가들이 남긴 기록물은 충남 지역 유교문화의 흐름과 선비정신의 전통을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받는다. 나눔과 정직을 중시했던 충남 선비들의 흔적은 오늘날에도 의미를 남긴다. 외부의 붉은 벽돌 건물이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왔듯, 내부의 유물들도 시간을 건너 현재까지 지역의 정신문화와 삶의 흔적을 전하고 있다.

◇지붕 없는 박물관,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공간

충남역사박물관의 매력은 건물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다. 박물관을 둘러싼 야외 공간과 산책로까지 이어질 때 비로소 이 공간의 풍경이 완성된다.

박물관 주변 산책길은 인근 중동성당과 3·1중앙공원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오래된 성당과 붉은 벽돌 박물관, 공원의 나무들이 어우러지며 공주 원도심만의 독특한 역사문화 경관을 만들어낸다.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가을이면 단풍이 언덕길을 물들인다. 시민들은 그 길을 따라 천천히 산책하며 역사를 일상 속 풍경처럼 마주한다. 아이들은 야외 마당에서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관광객들은 오래된 건축물이 만들어내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도시의 시간을 느낀다.

최근에는 야외 공연과 문화행사, 교육 프로그램도 꾸준히 열리고 있다. 오래된 건축물은 과거를 보존하는 공간을 넘어 시민들의 삶과 호흡하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충남도는 이번 우수건축자산 지정을 계기로 보존과 활용을 함께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우수건축자산으로 지정된 건축물은 원형을 유지하는 범위 안에서 일부 규제 완화 적용을 받을 수 있어 보다 유연한 유지·관리가 가능해진다.

◇시간을 품은 붉은 벽돌 건축

역사는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50여 년 전 공주 중동 언덕 위에 세워진 붉은 벽돌 건물은 이제 충남 전체의 건축적·문화적 자부심으로 자리 잡았다.

무령왕릉 발굴의 기억과 백제 문화의 흔적,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의 시간이 그 공간 안에 켜켜이 쌓여 있다. 공주 원도심의 풍경 속에 자리한 충남역사박물관은 오늘도 자리를 지키며 지역의 역사와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대전일보=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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