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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종이 신문을 읽고 있는 나와 당신-기성세대에게 고함

종이 신문으로 이 칼럼을 읽고 있는 독자는 아마도 대부분 중, 장년층이상 그러니까 기성세대일 것이다. 반면 2~30대 젊은 세대에게 신문이나 책, TV, 심지어 극장에서 보는 영화까지 올드 미디어는 흥미롭지 않고 시간낭비일 뿐이다. 이들은 20시간짜리 드라마를 30분 남짓 요약본으로 보고 영화를 소위 ‘짤(긴 콘텐츠의 핵심만 잘라 짧게 편집한 영상)’로 감상하는 것을 선호한다. 학생들과 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보면 ‘그런 장면이 나왔어요?’로 마무리되고 만다. 솔직히 전체 이야기와 극적인 장면 몇 개에 불과한 ‘짤’이 한 영화, 드라마의 전부라면 뭔가 씁쓸하고 괜히 서운하지만 이건 비단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만이 아닌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종이 책장을 넘기며 소설을 읽고, 4시간 넘는 영화를 보고 뿌듯해하며, 온 가족이 모여 하나의 콘텐츠를 시청하고, 방송사 시상식을 보는 것으로 한 해를 마감하던 시대는 이미 끝난 것이다. 더 나아가 부당한 폭력과 권력에 저항하기 위해 광장에 모였던 다급했고, 간절한 신념들도 점차 과거의 유산이 되어가고 있다. 예전처럼 분노해야하고 함께 행동에 나서야 할 일들은 여전히 현실에서 차고 넘치지만, 우리는 침묵을 선택하고 인터넷 뉴스 댓글창과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텍스트로만 표출한다. 이런 미디어에는 전문가처럼 보이는 글재주와 과거 유산에 대한 그리움, 현재에 대한 냉혹한 비판의 글이 가득하다. 젊은 세대들은 원래 자신들의 놀이터였던 이 곳을 버리고 조용히 짐을 싸 어른들은 모르는, 새로운 미디어로 옮겨갔다. 남은 건 컴퓨터와 인터넷을 글로 배운 기성세대뿐이고 그 공간에는 미래와 젊은 세대를 걱정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런 우리를 젊은 세대는 이렇게 바라본다. 풀기 어려운 숙제를 잔뜩 미뤄둔 채로 작디작은 권한조차도 포기하지 않는 세대. 혼내고 가르치려고만 하면서, 매너는 없고 막무가내로 말만 많은 세대. 정의와 민주주의의 수호자처럼 굴다가 스스로의 모순과 탐욕으로 무너지는 세대. 애초부터 돈과 권력만 좇는 세력으로만 기능하는 꼴통 세대. 자본과 부동산을 독식하고 더 불리려 젊은이를 상대로 사기 치는 세대. 무엇보다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대...... 이런 기성세대가 주축이 되어 수립한(지지했든 아니든) 윤 정부가 들어선 지 400일이 넘었다. ‘아님 말고’ 찔러대기 식 말잔치 혹은 고도의 막말 전략이 반복되고 있다. 상징적으로 보이지만 이 프로세스에는 미래에 대한 숙고와 배려, 공감이 전혀 없다. 이런 식이다. 술자리든 어디서든 누군가의 가십/의견을 듣는다 > 지난 정부 탓인지 판단한다 > 공식 석상에서 강하게 말한다 > 반응을 살핀다 > 사고 쳤음을 깨닫는다 > 부정한다 > 우리 편 중 책임질 사람을 정해놓고 질책한다 > 외부 공격 대상을 특정하고 화력을 집중한다 > 편을 갈라 우리 편은 챙겼으니 됐다고 평가한다 > 공론화(?) 과정을 수행한 카리스마 넘치는 개인기를 자화자찬한다 > 후폭풍은 무시하고 잊힐 때까지 모른척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국민 대다수가 노동자이고 G7을 꿈꾸면서도 선진국의 노동조합이나 복지, 소비자 권력에는 무관심한 나라를 기어이 만들고 말았다. 젊은 세대들을 자본과 착취의 틈에 끼워 넣고 MZ니 뭐니 이름 붙여 무시한다. 좋은 일자리는 독차지하고, 젊은이들은 도전정신으로 창업해야 한다고 내몰더니 결코 그 상점의 고객은 되지 않는다. 우연히 들러 핀잔과 잔소리만 늘어놓는다. 그런 우리에게 젊은 세대는 한마디 대꾸도 없고 소통을 포기한다. 여러분이 있는 곳이 조직이든 회사든 어디든 젊은이를 보라. 맘대로 떠드는 입을 다물고 그들의 목소리를 먼저 듣고, 작은 것부터 점차 큰 것까지 그들이 결정내릴 수 있도록 하자. 우리에게 염치란 게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반드시 그래야 한다. /박형웅 전주대 실감미디어혁신공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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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26 17:44

도쿄에서 만난 사람들

일본의 피아니스트 도고 노리코 씨는 혼자서 한국어를 익혔다. 뿐더러 한국어로 음악회 진행을 도맡아 한다. 노리코 씨는 무엇보다 음악을 통한 한국과 일본의 문화 교류에 진심이다. 지난해 12월 한국슬로푸드협회 주최 송년음악회에서 한국말로 해설하고 연주하는 최초의 일본인 피아니스트로 큰 관심을 모았다. 「행복한 응접실 김사은입니다」 방송에 노리코 씨가 전화로 출연한 것이 인연이 되어 5월 13일 도코 시부야 미타케살롱에서 열린 『한일, 일한 국제교류 콘서트』 취재차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 도쿄에 출장을 다녀왔다. 한국의 신정혜 피아니스트, 일본의 도고 노리코 피아니스트가 출연하는 연주회다. 노리코 씨는 기획과 피아노 연주는 물론 사회도 맡았다. 김포 공항에서 하네다 공항까지는 피아니스트 신정혜 씨와 음악회 관계자 등 네 명이 함께했지만 귀국할 때는 나 혼자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도쿄 아사가야에 있는 호텔 로비에 도착했을 때, 딱 봐도 에너지가 뿜뿜 넘치는 여성이 도고 노리코 피아니스트임을 직감케 했다.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전화 통화와 똑같은 하이톤으로 반겼다. 한국어가 유창하다. 별도의 통역 없이 노리코 씨가 일정에 대해 콕콕 찍어 브리핑해 주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동안, 뛰어난 미모에 실력을 겸비한 노리코 씨는 3대째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음악가로서 탄탄대로를 달리던 20대 초반에 ‘자율신경 실조증’이라는 큰 병을 앓아 연주활동을 포기해야 했던 아픔이 있다. 힘든 시기를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한국 드라마였다고.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어를 배웠고 언젠가 한국어로 연주회 사회를 보는 꿈도 꾸었다. 큰 호평을 받으며 연주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고 한국어로 연주회 진행을 하는 꿈은 드디어 현실이 되었다. 노리코 씨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한일 교류가 왕성하다. 공연일인 5월 13일 토요일에는 비가 내렸다. 빗속을 뚫고 시부야에 있는 미타케 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간간히 한국어도 들렸다. 노리코 씨와의 친분으로 연주회를 찾은 사람들이다. 40대 여성은 전주출신이라고 소개하고 “유튜브에서 봤다.”며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일본의 유명한 연구요리가 조선옥 씨는 김제출신이다. 도쿄 조선옥요리연구원을 운영하면서 한국의 음식은 물론,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그녀는 스스로 “요리하는 예술가”라고 자부한다. 역시 문화라는 접점에서 노리코 씨와 인연이 되었다. 이번 출장에서 일본 도쿄에 있는 명문대학 ‘릿쿄대학교’ 출신의 연극배우 니노미 아사토씨와 만난 것도 의미가 크다. 20년 전 윤동주 선생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에서 윤동주 역할을 맡아 윤동주에 대한 애정이 깊다. (윤동주 시인은 1942년 릿쿄대학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1학기를 마치고 교토에 있는 도시샤대학으로 편입했다.) 릿쿄대학에서는 윤동주 시인을 기리며 해마다 <윤동주 추념제>를 지내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주었다. 그는 “윤동주 선생이 어려운 시절에 어쩌면 그리 아름다운 시를 쓸수 있는지 감동했다.”라고 말했다. 일본 화가 니시하마 사치코 씨는 “음악회가 입체적이어서 좋았다.”라고 ‘한국어’로 말했다. 요코하마에서 온 우메하라 씨 역시 한국어로 “음악을 통해서 좋은 교류가 되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인터뷰를 한 사람들 대부분 한국어로 응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일본 도쿄의 심장부 시부야에서 일본인과 한국인이 소통하고 문화로 교감하는 특별한 연주회였다. /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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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19 15:07

고구려와 보덕국, 후백제

고구려는 도읍에 두 개소의 성을 두었다. 고구려 왕은 평상시 평지성에 머물러 있다가 유사시 전쟁이 일어나면 산성으로 이동하여 장기전에 대비하였다. 고구려 두 번째 도읍 지안에서 평지성인 국내성과 산성인 환도산성이 가장 유명하다. 후백제의 도읍 전주도 평지에 왕성과 산봉우리에 산성을 두어 고구려의 도성체제를 그대로 닮았다. 후백제 도성은 반달모양으로 인봉리 추정 왕궁 터만 유일하게 도성 안에 위치한다. 전주 인봉리는 관아가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서쪽을 바라보았다는 구전의 내용도 충족시켰다. 전주 동고산성이 아홉 차례 발굴조사로 후백제 피난성으로 검증되었고, 견훤왕은 통상시 인봉리에 머물다가 비상시 전주 동고산성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장수 침령산성은 고대 축성술 전시장이다. 장수군 장계분지 서쪽 산봉우리에 그 터를 잡고 500년 이상 산성이 운영되었다. 금강 최상류에 지역적인 기반을 둔 봉화왕국 반파가야가 산성의 터를 처음 닦고 신라가 4배 이상 확장한 뒤 거점성이자 전략상 요충지로 삼았다. 후백제는 치(雉)와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아 고구려 산성의 성벽을 연상시킨다. 장수 합미산성은 후백제 축성술의 랜드마크이다. 성돌은 방형 혹은 장방형으로 잘 다듬고 그 길이가 상당히 길어 견치석(犬齒石)으로도 불린다. 성벽은 줄을 띄워 줄쌓기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들여쌓기와 품(品)자형 쌓기 방식으로 쌓았다. 성벽이 90% 이상 잘 보존되어 국사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고구려 백암성 못지않게 아주 튼튼하다. 남원 교룡산성은 축성술의 최고봉이다. 아직은 산성의 터를 처음 닦은 주체가 파악되지 않았지만 성벽의 하단부가 고구려 산성의 성벽처럼 축성술의 압권이다. 모두 두 개소의 집수시설도 거의 빈틈이 없을 정도로 잘 쌓아 돌의 마술사를 떠올리게 한다. 전 세계인들이 최고로 인정하는 잉카제국 도읍 쿠스코 로레토 거리의 건축술 못지않다. 고구려의 축성술과 후백제의 도성체제 전달자로 보덕국(報德國)이 가장 유력하게 떠오른다. 고구려 유민들이 익산시 금마면 금마저(金馬渚)에 세운 나라가 보덕국이다. 674년 신라는 고구려 부흥운동을 이끈 안승을 보덕국 왕으로 임명하였고, 684년 보덕국 사람들이 봉기하자 이를 진압하고 남원경 등 남부의 여러 지역에 나누어 이주시켰다. 보덕국 등장 이후 전북에서 축성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익산 오금산성은 달리 보덕성으로 그 축성술이 후백제까지 그대로 계속된다. 순창군 동계면 합미성 등 후백제 산성에서 일관되게 관찰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전주로 향하는 교통의 중심지와 전략상 요충지, 철산지를 방어하기 위한 후백제의 국가전략이 투영되어 있다. 전북 동부는 대규모 철산지로 후백제 국력의 화수분이었다. 장수 명덕리 대적골 제철유적 발굴조사로 그 역사성이 검증되었다. 그러다가 후백제 멸망 5년 뒤 남원경이 남원부로 이름이 바뀌면서 중앙에서 지방으로 그 위상이 낮아졌다. 보덕국 사람들이 전북에 전해준 고구려의 축성술도 후백제 멸망과 함께 그 맥이 끊겼다. 전주 동고산성, 장수 합미산성 등 전북에서 고구려 백암성 성벽을 쏙 빼닮은 산성들은 보덕국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전북과 인연을 맺은 보덕국 사람들이 고구려의 축성술과 도성체제를 전북에 전수(傳授)해 주었고, 후백제가 한층 더 승화시킨 것이 아닌가 싶다. 고고학 자료로 보덕국은 고구려와 후백제를 연결시켜준 매개자였다. /곽장근 군산대 역사학과 교수

  • 오피니언
  • 기고
  • 2023.06.12 15:35

[지난 주 '핫클릭' : 6. 4~9] 이차전지 특화단지 새만금 지정 당위성은 '국가 균형발전'

△6월 4일~ 6월 9일 호국보훈의 달 6월 둘째 주, 전북일보 홈페이지 방문자들은 김윤정 기자의 '이차전지 특화단지 새만금 지정, 균형발전 당위성 부합'을 가장 많이 클릭했다. 이 기사는 우리나라 미래 산업을 지탱할 이차전지 산업을 선점하기 위해 전북 새만금을 비롯해 울산·경북 포항·충북 청주 오창 등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가운데, 새만금이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측면과 이차전지 밸류체인을 형성하는 관련 기업의 집적화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두 번째로 많이 본 기사는 이환규 기자의 '일본산 참돔이 국내산이라고?⋯군산 수산 활성화에 찬물'이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으로 수산물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원산지를 속여 판매하는 행위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세 번째는 육경근 기자의 '흔들리는 교권, 전북 교원단체 뿔났다'로 학교 교육력 회복을 위한 전라북도교원단체 총연합회 등 지역 교원단체의 목소리를 전했다. 이들은 "교육활동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교사와 학생 간 물리적, 정서적 접촉이 수반되는 경우가 많은데, 아동학대 신고만으로 직위해제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교육적 방임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정윤성 화백의 기린대로418 '가수 영탁 없었으면 아태마스터스대회 어쩔 뻔', 박정우 기자의 '임실군, 전북도 공모 2023년 전북형 치유관광지 선정', 김선찬 기자의 '남원시, 5000세대 규모 은퇴자마을 조성한다' 등이 주목을 받았다.

  • 기획
  • 이용수
  • 2023.06.10 13:44

지역 경쟁력의 원천은 사람, 인재를 모시자!

전북일보에 여섯 번 글을 쓸 수 있어 행복했다. 전주에서 나고 자라 초중고를 마치고 20대에 고향을 떠나 40여년을 서울과 수도권에서 살았다. 대학에서 도시를 공부하면서 또 박사학위 뒤 서울연구원에서 13년 도시정책을 연구하면서 늘 전주와 전북을 마음에 담고 살았다. 수도권 대학으로 직장을 옮긴 뒤에는 이곳 대학으로 오는 꿈을 꾸고 도전했지만 이루진 못했다. 4년 뒤 정년을 맞으면 남은 삶은 고향에서 더 행복하고 더 보람 있게 살고 싶다. 마지막 글은 <사람> 이야기로 마무리 하려 한다. 지역 발전의 요체는 무엇보다 사람이다. 인구가 아니라 인재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지역을 지켜온 인재들을 귀하게 모시고, 더 많은 인재들을 지역으로 초대해야 한다. 지난해 일본 도쿠시마현 가미야마정에 출장을 다녀왔다. 인구 6천명 남짓의 작은 산골마을에 오래전부터 인재들이 몰려왔고 올해 4월에는 고교 3년, 전문대 2년의 5년제 고등전문학교가 문을 열었는데 200명 정원에 교육비는 무료다. 가미야마 사람들은 <창조적 과소>를 지향한다.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시대에 인구수를 유지하거나 늘리려는 노력은 허망한 일이니, 인구가 아닌 인재 초대에 목표를 두었다는 뜻이다. 이런 비전으로 1990년대부터 국내외 예술가들을 초대했고, 대도시에 본사를 둔 IT기업의 위성사무소를 유치했으며, 창업과 취업을 꿈꾸는 청년과 중장년을 꾸준히 영입했고, 마침내 똑똑한 청소년들을 초대하기 위해 정규 학교까지 세웠으니 소멸 위기의 작은 지역이 할 수 있는 <인재 초대>의 모든 노력을 다 해낸 쾌거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정현종 시인의 절창처럼 사람의 초대와 인재의 방문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개발 프로젝트보다, 기업의 유치나 프랜차이즈 입점보다 훨씬 더 강력한 지역 경쟁력의 원천이 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인재들이 우리 전북으로 올까? 먼저 할 일이 있다. 바깥 인재의 초대에 앞서 지역 내 인재들부터 보살피고 섬겨야 한다. 여기서 창업하거나 취업해 열심히 일하는 청년들이 행복한지 묻고 미흡한 게 있다면 무엇이든 해결해주자. 아이 낳아 키우는 30~40대 젊은 부모들이 겪는 불편과 불안도 알아내어 행복하게 아이 낳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자. 고향을 지켜온 중장년들이 은퇴 뒤 자존감 있게 여생을 보내도록 세심하게 지원하자. 지금 여기 사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초대의 말에 힘이 실리고 진정성 또한 커질 것이다. 인재 초대의 또 하나 선결조건은 <집>이다. 빈집 등 유휴공간들을 활용해 인재들이 와서 머물고 살 양질의 집을 많이많이 마련해야 한다. 전남 화순군이 신혼부부들에게 월 1만원 임대료의 아파트를 제공하듯 전북을 삶터로 꿈꾸는 청년과 중장년,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집을 제공하면서 초대한다면 아주 효과적일 것이다. 전북에 오면 한 지역에 고립되지 않고 전북 어디든 편히 오갈 수 있도록 대중교통 연결을 혁신해주는 것도 인재 초대의 선결과제다. 지역의 경쟁력을 재는 지표는 과연 무엇일까? 인구수일까? 소득이나 고용과 관련된 경제적 지표들일까? 아니다. 진정한 경쟁력 지표는 그곳에 사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의 수일 것이다. 전북에 사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전북에 살고 싶은 사람들의 수도 늘 것이다. 여기 사는 게 행복한 사람들, 그들이 전라북도 경쟁력의 요체다. 인재를 모시자. 무엇보다 사람으로 전북을 키우자!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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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29 15:33

자기 착취를 통한 성과주의가 만든 피로사회

‘일이 많아져서도 아니고, 스트레스가 늘어난 것도 아닌데 요즘 왜 이리 계속 피곤하지?’ 만성 피로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병원에 가고, 약을 먹고, 운동도 해 보지만 원인을 모르니 잘 낫지 않는다. 만성질환으로 굳어진다. 피로, 피곤함, 두근거림, 우울증,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등은 모두 현대인의 만성질환이다. 철학자 한병철은 저서 <피로사회>에서 현대인들은 이러한 질환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 유발자라고 진단하며, 이는 스스로를 착취하며 성과를 달성하는 피로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으로 본다. 보통 착취는 누군가-타자가 나를 향할 때 성립해왔지만, 지금은 우리 스스로가 자신에게 착취를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극도의 ‘성과주의’ 때문이다. 예전에는 ‘성과’를 강요하는 주체가 바깥에 있었다면, 현대에는 그것이 욕망이든, 되고 싶은 자아든지 내 안에 있다. 스스로 성과 목표를 설정하고 도달하지 못하는 자신을 꾸짖고 더 높은 목표를 세우고 돌진하는 식의 굴레에 갇혀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착취를 통한 성과 달성 방식은 생산성 향상에 최적이다. 노동자를 감시하는 장치도 필요 없고, 능률 향상을 위한 경쟁 유발 전략도 필요 없다. 개개인을 스스로의 경쟁자로 만들어 놓기만 하면, 과거의 자신보다 성과를 올리기 쉽고, 낙오한다고 해도 그것은 개인의 결함-무능력, 게으름-때문이니 스스로를 탓할 것이다. 시스템은 개인의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만 지급하면 된다. 누가 왜, 얼마나, 더 많이 받았다더라 등의 정보는 철저히 숨긴 채로. 이래야 자기 착취 구조를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해야 되는지 알려주지 않으므로, 항상 그 이상의 목표를 스스로 세워야 한다. 결국 이렇게 만들어진 성과 주체들은 감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열심히 일한다. “우리 ㅇㅇ맨은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당연히 인공지능을 활용해 효율적으로 일합니다.” 식으로 툭 던지면, 현대인들은 스스로의 시간을 투자해서 그런 사람이 기꺼이 되려고 한다. 운동도 열심히 해서 감기에 걸리지도 않아야 하며, 몸매 관리도 열심히 해야 한다. 그걸 우리는 자기관리 라고 부른다. 내가 세운 내 기준은 저 멀리 높고, 이를 쟁취하는 과정이 삶이고 기쁨이라는 생각. 이 틈을 만성 피로와 공황, 우울증이 파고든다. 자기를 착취하는 줄도 모른 채, 스스로 세운 성과 목표를 달성하고 보상받는 동안 정신과 몸은 망가지고 만다. 목적을 상실하고 성과만 존재하는 자기주도 학습, 스스로 달성 목표를 세우는 기술, 성과에 따른 공정한 보상에 대한 찬미 등에만 매몰된 성과주의사회는 초경쟁사회의 세련된 버전일 뿐이다. 그렇다면 만성 피로가 나를 덮치기 전에, 불안감과 초조함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바로 ‘멍 때리기’를 실천하는 것이다. ‘휴식’이나 ‘느리게 살기’가 아니다. 이런 방식은 성과 달성을 위한 재충전 시간이거나 바쁘게 살기의 반작용이므로 결코 자기 착취 구조를 깨지 못한다. ‘멍 때리기’는 많은 전문가들이 실제로 제시하는 꽤 효과적인 치료법이다. 여기에 걷기를 추가한다면, ‘사색하는 산책’ 솔루션이 만들어진다. ‘멍 때리며 걷기’의 핵심은 아무 생각 없이(최대한), 목적지를 정하지 말고, 무작정 걷는 것이다. 강변이든, 골목길이든, 공원이든, 운동장이든 어디든 상관없다. 평소에 익숙하지 않은 곳, 익숙하지 않은 시간이면 더 좋다. 계획하지 않고, 측정하지 않고, 방해받지 않고(휴대폰을 끄라는 뜻), 음악도 듣지 않고, 주변의 소음과 변화를 온 몸으로 느끼면 된다. 산들바람과 새소리, 물소리, 새벽의 먼지 냄새, 계절의 변화가 우리를 시간을 초월한 존재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는 사이 달콤하게 보이던 성과 목표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우리 존재를 천천히 조금씩 채워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박형웅 전주대 실감미디어혁신공유대학 교수

  • 오피니언
  • 기고
  • 2023.05.22 17:34

화장실 문화

문화라는 말을 여기저기 가져다 쓰면서도 높은 교양과 깊은 지식, 세련된 생활, 우아함, 예술적 요소와 어울려 쓰기를 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정작 오늘 주제인 ‘이것’과 연관 지을 수 있을지 주저하는 바가 적지 않았는데 이 또한 문화에 대한 나의 편견일지도 모른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이것’은 바로 화장실 문화다. 1993년 예술의 전당 개관식 즈음, 조간지 칼럼에 화장실 관련 글이 실렸다. 여성기고가는 여자 화장실 칸수가 적다는 현실적인 상황을 작파하고 이를 우려했는데 연주회 중간 휴식시간에 화장실을 찾은 여성 관객들이 크게 불편을 겪었다고 밝혔다. 당시 이 칼럼을 읽고 화장실 문화를 지적한 기고자의 용기에 큰 박수를 보냈던 것이 생각난다. 공연장의 화장실 상황은 개선되었겠으나 주변에서도 여성 화장실 칸수가 적어서 당황한 일을 적잖이 경험했을 것이다. 내 경우도 난감한 상황이 있었다. 회사 상사들을 모시고 서울 출장 가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실에 잠시 들렀다. 일행 네 분은 남성이었고 여자는 나 혼자였다. 하필 그 시각 관광버스가 들이닥치더니 여자 화장실을 순식간에 점령했다. 남자분들은 미리 나와서 기다리는데 나 혼자 여자 화장실 긴 줄에 갇혀서 전전긍긍했던 일을 떠올리면 오래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낯 뜨겁다. 이것도 경험인지라, 이후에는 눈치껏 화장실을 사용하는 요령이 생기긴 했다. 최근에 아들로부터 들은 얘긴데, 어느 휴게실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볼 일이 너무 급한 나머지 남자 화장실을 사용했다고 한다. 여자 화장실은 길게 줄을 섰고 남자 화장실은 여유 있게 비어있으니 급한 대로 남자 화장실로 뛰어간 것이다. 이 얘기를 듣고 유럽의 화장실이 생각났다. 남녀 구분 없이 줄을 서서 화장실이 비는 순서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내 경험에 실용적이지만 그다지 위생적이지는 않은 것 같았다. 급한 사람에게 양보하는 미덕도 화장실 문화일 것이다. 인식이 개선되면서 여성 화장실 칸수도 늘어나고 장애인, 가족 화장실도 잘 운영되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공공시설 화장실은 아쉬움이 많다. 전주 시외버스 터미널 여자 화장실의 경우 화장실의 전체 면적은 넓은데, 정작 화장실 내부는 협소하기 그지없다. 캐리어와 같은 부피가 큰 짐을 소지한 승객이 이용하기에는 형편없이 부족하다. 개선되면 좋겠다. 대학교, 관공서의 경우 기존 화변기를 양변기로 교체하는 곳이 꽤 늘었다. 위생적이고 편리해서 반기는 사람이 많다. 문제는 화변기를 양변기로 교체했을 때 내부 면적은 같은데 실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은 크게 줄어든다는 점이다. 양변기가 떡하니 공간을 차지한 곳에서, 정작 사용자는 몸을 그로테스크하게 꼬아서 협소한 공간에 구겨 넣어야 하는 비참한 심정은 나같이 덩치가 큰 사람만의 비애일까. 칭찬하고 싶은 화장실도 있다. 전주에서 익산으로 출근하면서 21번 국도 공덕교차로 졸음 쉼터를 애용한다. 자동차가 늘어나고 잦은 사고로 정체가 심한 도로여서 예상보다 출근길이 길어지곤 하는데, 쉼터에서 잠깐 바람도 쐬면서 컨디션 조절하기 좋은 곳이다. 화장실에 들를 때마다 관리가 잘 되어있어서 고마운 마음이 든다. 화장실은 죄가 없다. 화장실을 만든 사람의 생각, 화장실을 사용하는 사람의 태도가 화장실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화장실 청소하는 분들께 더욱 고개를 깊이 숙여 감사인사를 한다. 화장실 문짝 함부로 여닫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더 문화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 /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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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15 16:45

전북 도자문화 메카였다

우리나라에서 오직 초기청자만을 굽다가 문을 닫은 중국식 벽돌마가가 전북에 있다. 진안 도통리와 고창 반암리로 모두 다 후백제 영역에 속한다. 진안 도통리는 벽돌가마가 참담하게 파괴된 뒤 길이 43m의 진흙가마를 다시 앉혀 우리나라에서 그 길이가 가장 길다. 후백제 멸망 이후 유통 문제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가마터의 문을 닫았다. 고창 반암리는 후백제 멸망으로 벽돌가마가 파괴되자 도공들이 병풍산을 넘어 용계리로 이동했던 것 같다. 고창 용계리는 길이 38m, 31m, 14m의 진흙가마가 서로 중첩되어, 도공들이 도전과 끈기로 진흙가마를 완성시킨 산실이다. 12세기 초 진흙가마의 원리를 완벽하게 터득한 도공들은 줄포만을 건너 부안 진서로·유천리 일대로 이주한다. 부안 유천리는 천하제일의 부안청자를 탄생시킨 명소이다. 흔히 상감청자로 상징되는 부안청자는 전북 도자문화의 최전성기를 대변한다. 구리로 문양을 그린 동화청자도 부안 유천리만의 자랑거리이다. 당시 국보급 도공들의 지혜와 고령토가 하나로 응축된 부안청자는 우리나라 도자문화의 아이콘이자 최고의 걸작품이다. 1350년부터 남해안과 서해안에 왜구가 출몰하기 시작한다. 왜구의 피해가 무자비하고 극악무도해 도공들이 호남정맥을 넘어 전북 동부로 대거 이동한다. 이 무렵 진안 반송리, 순창 심초리 등 섬진강유역에서 고려 말기 청자가 홀연히 등장한다. 전북 동부의 풍부한 백토가 도공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 보약 같은 자양분이었다. 진안 도통리를 떠난 도공의 후예들이 400년 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진안군 백운면 반송리와 성수면 중길리에 정착한 도공들이 그들의 끼를 맘껏 발휘해 중국식 벽돌가마에서 초기청자를 구운 진안고원을 도자문화의 중심지로 다시 가꾸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건강했던 가마터가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 몹시 애통하다. 백두대간 품속으로 이주한 도공들도 있다. 남원시 운봉읍 공안리 도요지로 왜구의 피해가 얼마나 잔인했던가를 헤아릴 수 있는 곳으로, 전북에서 유일하게 백두대간 동쪽에 위치한다. 어느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가마터가 모조리 사라져 안타깝다. 전북도자사의 역사책과도 같은 도요지가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그 보존대책이 절실하다. 조선 건국으로 전북의 도자문화가 한 단계 더 도약한다. 한국도자사에서 15세기를 분청사기, 16세기를 백자 시대라고 한다. 부안청자의 상감기법으로 무장한 도공들이 섬진강유역을 분청사기 메카로 일구었다. 기형과 색깔을 강조한 고려청자와 달리 분청사기는 해학과 풍류를 강조했다. 그때 남원은 광주, 고령과 함께 도자문화의 자웅을 겨루었다. 전북 일원에 도요지가 골고루 산재해 있지만 임실 학정리·필봉리 등 가장 핵심적인 유적이 섬진강유역에 모여 있다. 임진왜란 때 심당길, 이삼평 등 최고의 도공들이 남원부에서 포로로 붙들려가 일본 도자문화의 서막을 열었다. 우리나라 도자문화의 애환과 흥망성쇠를 간직한 전북 동부는 엄밀히 표현하면 도자문화의 극치이다. 당대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가장 잘 웅변해 주는 것이 도자문화이다. 전북은 도자문화의 메카로 초기청자부터 백자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고 풍성하다. 전북의 도자문화에서 부안청자만을 기억하는 것은 한그루의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최소한 도자기전쟁 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의 영혼이 담긴 가마터만이라도 꼭 찾아야 한다. /곽장근 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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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08 18:22

그곳과 그들이 여전히 아름다운 이유

샌프란시스코에 처음 가본 건 1995년이었다. 서울연구원 시절 해외 도시들의 구릉지 경관관리 사례조사를 위한 출장이었다. 가을 햇살을 받고 반짝반짝 빛나던 샌프란시스코의 도시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건물들은 지형과 어울렸고 서로서로 조화로웠다. 언덕 위 고층건물들도 흉하지 않았고, 언덕에서 바다를 보는 시야를 가린 건물도 없었다. 당시 서울에는 보광동, 옥수동의 구릉지에 들어선 덩치 큰 아파트가 보기에도 흉했고, 강변 쪽의 아파트로 인해 뒤쪽 언덕 위 주택들은 종일 해를 볼 수 없었다. 한강을 바라보던 시야도 차단되고, 고층에서 훤히 내려다보여 사생활 침해까지 심각한 상황이었다. 서울과 달리 언덕 위 건물들이 서로 피해주지 않고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구릉지 경관관리 비결이 궁금했는데, 시청 담당자를 만나 얘길 듣고 관련 자료들을 받아 꼼꼼히 공부한 뒤 이유를 알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는 1972년 ‘도시디자인계획(Urban Design Plan)’을 세웠고 도시경관 관리의 원칙과 방법들을 여기에 담았다. 언덕과 바다가 만들어내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도시형태가 훼손되지 않도록 도시 전역에 일일이 최고높이를 지정했고, 높이 규제에 더해 건물의 전면폭과 대각선길이까지 제한했다. 여기저기 불쑥불쑥 솟는 고층건물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물론이고 병풍처럼 시야를 가로막는 덩치 큰 건물까지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2002년 북경에서 반년 연구년을 보내면서 북경의 역사도시 보전을 위한 엄격한 높이규제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난개발이 횡행했던 1960년대와 70년대를 반성하며 1982년부터 시작했던 역사도시 보호 노력은 매우 엄중했는데, 자금성 가까이에는 새로 정해진 높이기준보다 높아 윗부분을 잘라낸 건물도 여럿 목격했다. 2006년 말 국립싱가포르대학에서의 한달 연수도 싱가포르의 개발과 보전정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마리나베이 같은 신개발지역은 고층개발이 허용되지만 오랜 역사를 간직한 원도심 지역은 높이규제는 물론 건물의 형태까지 엄격히 규제한다. 우리가 감탄하는 아름다운 도시들은 모두 다 똑같다. 아름다운 도시경관은 결코 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엄격한 규제의 결과다. 용적률을 완화해주면 그만큼 많이 지을 수 있게 되고, 개발이익은 상승한다. 개발압력도 당연히 커진다. 끝없이 사익을 추구하는 민간 개발의 속성은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용적률과 높이를 규제하고 건물의 형태까지 제한하는 것이다. 파리도, 런던도, 프라하도 예외는 없다. 그곳과 그들이 여전히 아름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센티브 조닝(incentive zoning)’은 1961년 뉴욕에서 시작된 도시계획 수법인데, 공익에 기여하는 민간 개발에 용적률 보너스를 주는 게 핵심이다. 시애틀시도 이 제도를 도입했고 이후 폭발적인 개발붐을 맞게 된다. 30층을 넘지 않던 도심부에 이런저런 보너스를 받은 건물들이 60층까지 올라갔고 개발밀도도 껑충 뛰었다. 과도한 개발을 우려하던 시민들이 가만있지 않고 나섰다. 매년 개발총량을 제한하고 용적률을 낮추며 최고 높이를 규제하는 ‘시민대안계획’을 1988년 11월에 마련했고, 1989년 5월 시민투표에서 62%의 찬성으로 가결되어 시애틀 도시계획으로 정식 채택되었다. 시애틀이 여전히 아름다운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아름다운 시민들이 있어서다. 용적률 상향으로 고민이 많을 전주시민들에게 꼭 전하고픈 이야기다.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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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01 17:41

내 ‘돈’은 그들의 돈과 완.전.히. 다.른., 소중한 것

사기꾼 한명이 수백 명의 인생을 담보로, 2700채의 집을 지어, 돈을 쓸어 담다가 붙잡혔다. 이런 부동산 사기꾼들에게 ‘빌라왕’, ‘빌라왕자’, ‘빌라의 신’, ‘건축왕’, ‘원조 빌라왕’ 등의 별명을 붙여준 언론의 어휘력과 뒤떨어진 감수성에 기가 막힌다. 새로운 봉건 빌라 국가가 탄생하고 몰락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마을, 특히 청년이 많이 사는 동네가 이들의 주 무대이다. 왕들은 여러 명이 동업하는 방식으로 통치력을 발휘한다. 지도를 촥~ 펴 놓고는 건축회사, 투자 컨설팅, ~하우징, ㅇㅇ주택 대표들과 함께 찜한 곳을 나누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서로 신용을 만들어준다. 이들 패거리들은 값싼 신축 빌라를 만들고, 보증금과 빚을 담보로 새 빌라를 무한정 만들어 ‘세’를 받아먹는다. 결국 보증금보다 집값이 싸지고, 빌라가 경매로 넘어가는 깡통주택이 되면서 돈을 떼이는 사람들이 폭증한다. 이들 대부분은 청년들이고, 독거노인이다. 전셋돈이 전 재산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어렵게 모은 인생 첫 목돈을 사기꾼에게 맡긴 채, ‘그래, 이렇게 묶어두지 않으면 (방탕한) 나는 돈을 막 다 써버리고 말거야’라며 죄 없는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탓하며 살아왔다. 그런 그들이 지금 벼랑 끝 죽음에 몰려있다. 힘든 몸 누일 공간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들의 보증금은 ‘돈’이 아니고, ‘돈’으로 바뀐 그 ‘무엇-인생의 어떤 모든 것(달리 묘사할 단어가 없다)’이다. 누군가는 이들의 무지를, 전 세계 유일한 우리나라 전세 제도를, 중개인과 탐욕에 눈먼 자들을 탓한다. 과연 그게 진짜 이유일까? 모든 것은 ‘갓물주('신'을 뜻하는 영단어 '갓’과 '건물주'의 합성어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한다는 뜻)’에서 시작했기에 여기서 끝내야 한다. 아이들의 장래 희망이 ‘건물주’인 국가라면, 빌라왕이든 상가왕이든, 황제든 뭐가 등장해도 이상할 게 없다. 어린 아이들이 건물을 소유하고, 세를 받아, 불로소득으로 즐기는 인생이 최고라는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되었을까? 부모도, 선생님도, 좋아하는 연예인도, 검사, 판사, 대통령, 정치인, 그들의 배우자, 가족까지 총동원 되어 열심히 추구한 결과다. 이런 세상에서는 투기를 해서라도 ‘돈’은 무조건 많아야 하고, 다들 그렇게 사는 거 아니냐며, 너희들도 그러고 싶으면서 못 해놓고 왜 나한테만 그러냐며, 당당히 따져 묻는 자들이 권세를 누린다. ‘갭투자’라는, 마치 최신의 투자 기법인 것 같은 신조어를 만들어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투기를 조장하고, 영리한 투자라며 부채질하는 자들. 그들에게 매달 노동을 통해 모아가는 적금은 멍청한 짓이고, 그렇게 모인 전셋돈은 먹잇감일 뿐이다. 감옥에 잠깐 들어갔다 나오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갓물주다. 그런가하면, 대기업 사원 중에는 월급을 100% 용돈으로만 쓰는 부류도 있다. 이들은 집을 사거나 미래를 위해 돈을 모을 필요가 없어서-부모나 조부모가 이미 이들 소유의 집과 돈, 건물을 마련해놨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은 부모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 재산까지 결국 내 것이 될 테니, 지금 자신이 번 돈은 소비와 자기 계발에만 계획적으로(?) 사용한다. 미래 역시 이들의 것인 셈이다. 부동산에서 시작해, 주식∙가상화폐 등으로 이어지는 투기 광풍은 대부분 보통 사람과 공동체를 훼손하고도, 여전히 ‘내가 지금 들어갈 타이밍을 내가 놓치고 있지 않나?’라는 집단 불안감을 퍼트린다. 위험 신호는 한참 전부터 시끄럽게 울리고 있는데, 국가는 침묵하고 있다. 국가는 국민들에게 돈을 어떻게 벌고, 쓰는 게 공정한지 친절하게 알려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노동 이외의 재산, 불로 소득, 상속 재산에 대해서는 기업, 개인 할 것 없이 철저하게 감시하고 높은 세금을 물리고 징수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벌어도 벌어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끝도 없는 빈곤감과 피로, 주위를 둘러보면 샘솟는 박탈감, 경쟁심에서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박형웅 전주대 실감미디어혁신공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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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24 17:27

1박 2일

경민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의정부 베이비부머 행복캠퍼스에서 생애설계교육 특강을 맡았다. 목요일과 금요일 오후 두 시부터 네시까지, 이틀에 걸쳐 진행하게 되어 휴가를 내고 1박 2일의 일정으로 다녀오게 되었다. 경기도는 용인을 비롯하여 포천, 화성, 의정부, 양주, 안성, 양평 등 7곳에 베이비부머 행복캠퍼스를 운영하고 있다. 1955년~1974년 출생한 중장년의 미래를 위한 종합서비스 공간으로 재사회화 교육, 취업, 창업 관련 전문교육 등의 교육과정과 상담, 소통, 휴식, 동아리 활동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경기도에서만 일곱 군데를 운영한다니 그 규모가 부럽다. 의정부 경민대학교 베이비부머 행복캠퍼스는 시니어플래너, 인지재활 놀이상담사, 부동산 경매재테크, 커피바리스타 등 4개 반을 운영하며 4주 생애설계과정과 8주 기술과정 100여 명이 수강하고 있다. 교육비는 전액 무료다. 강사나 사회자로서 연단에 서서 첫인사를 하면 대충 분위기가 파악되고 행사의 맥이 잡힌다. 청중의 수준과 결이 느껴진다. 배움에 대한 열의가 있고 인생 후반기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실천의 의지가 엿보인다. 하기야 자의든 타의든 어떠한 교육기관을 찾아오기까지 목적의식과 용기가 있으니까 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강의를 듣는 의정부 시민들의 품격 높은 태도는 강사인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50+, 신중년 중장년, 베이비부머 명칭은 달라도 어쨌든 동시대를 호흡하는 사람들이기에 무작정 애정이 간다. 나는 「나의 삶을 스토리텔링한다」라는 주제로, 각자의 삶을 ‘나도 PD’라는 인식으로 당당하고 멋지게 기획, 구성, 연출하여 살아가자고 말했다. 많은 분들이 큰 박수로 피드백해 주어 이 또한 감사했다. 엘리베이터에 탄 여성분이 수줍게 “오늘 강의 잘 들었습니다. 참 좋았어요..”라고 말씀해 주셔서 내 책을 한 권 드린 것을 인연으로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그분은 65세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다른 과정에 등록하셨다고 한다. 나의 강의에 대해 “머릿속에서 다음 문장을 미리 만들어 놓고 말하는 것 같다.” “겸손하고 청중을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졌다.”라고 평가하셨는데 그 말에 깜짝 놀랐다. 강의에 임하는 나의 마음이 전해져서 반가웠다. ‘누군가는 진심을 알아준다.’는 생각이 확신이 되어 행복했다. 그분은 또 “나이 들수록 수입이 없으니 지출을 줄여야 한다.”며 “30분 이내에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에서 일과를 해결한다고 하셨다. 이 말씀만 들어도 생애 후반을 어떻게 살 것인지 목표가 분명한 분 같아 감동되었다. 짧은 시간에 오히려 내가 더 배우는 것이 많았다. 가까이 살면 자주 뵈면서 마음으로 배우고 싶은 분이다. 이튿날 강의도 성황리에 마쳤다. 강의실에 도착하여 마시는 아이스티가 시원한 음료인데도 마음이 훈훈해진다. 어딜 가든 참 다정하고 속 깊은 사람이 많다. 이 나이, 이 시점에서 공감할 수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어 기쁘다. “나의 삶을 스토리텔링하자”라고 말했지만, 그날은 정작 내 인생에도 잊을 수 없는 스토리로 남았다. 간혹 삶의 경계에서 지치고 힘이 들 때 그날의 선명한 기억을 떠올리면 맑은 눈빛과 다정한 손길, 격하게 공감하며 고개 끄덕이던 따뜻한 분들이 생각날 것이다. 꽃송이 분분하고 빗방울 살포시 맺히던 의정부와 서울 북촌의 그곳에서 행복했던 순간순간들이 산소 방울처럼 떠오를 것이다. 그 교훈만으로 앞으로 살아갈 날이 든든하여 행복하다. /김사은 전북원음방송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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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17 16:57

전북 동부 철산지였다

흔히 무쇠를 가진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라는 격언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국력의 원천은 철(鐵)이다. 고고학에서도 제철유적을 최고의 생산유적으로 꼽는다. 예전에 철을 생산하던 제철유적은 오늘날 포항제철과 그 의미가 같다. 한반도에서 700여 개소의 제철유적이 학계에 보고됐는데, 전북 동부에 300여 개소의 제철유적이 모여 있다. 인간의 지혜와 자연의 철광석이 하나로 응축된 제철유적은 전북 문화유산의 백미이다. 어떠한 제철유적도 원료인 철광석과 연료인 숯, 첨단기술 등 세 가지의 핵심조건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한다. 전북 동부는 핵심조건들을 모두 다 갖춘 대규모 철산지였다. 전 세계적으로 철산지는 대부분 나라의 중심이자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전북 동부는 철광석의 매장량이 무궁무진하다. 백두대간과 금남정맥, 금남호남정맥을 따라 철분의 함유량이 월등히 높은 흑운모 편마암이 폭 넓게 산재해 있다. 2015년 철광석에서 뿜어낸 검붉은 녹물이 고고학자와 첫 인연을 맺어 주었다. 지금도 제철유적의 긴 잠을 깨우는 지표조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그 수가 더 증가할 것으로 확신한다. 어디서나 철산개발에서 핵심요소는 첨단기술이다. 용광로의 내부 온도를 1500° 이상 올려야 철광석이 녹는데, 그 과정이 첨단기술이다. 그런데 용광로를 만들려면 좋은 흙이 있어야 하는데, 산죽은 대체로 양질의 흙에서 자생한다. 전북 동부는 천혜의 산죽 군락지로 산죽이 있다는 것은 그 부근에 제철유적이 존재한다는 행운의 시그널이다. 전북은 경기도, 충청도보다 철기문화의 시작이 훨씬 앞선다. 전북혁신도시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고고학 자료로 검증됐다. 전북의 철기문화가 육로가 아닌 바닷길로 전북에 전래됐음을 말해준다. 중국 제나라 전횡의 망명 또는 고조선 마지막 왕 준왕의 남래와 무관하지 않다. 새만금은 철기문화가 만경강유역으로 전래되는데 통로이자 마중물이었다. 기원전 3세기 경 전북혁신도시 등 만경강유역을 최첨단과학단지로 일군 선진세력이 한 세기 뒤 철광석을 찾아 전북 동부로 대거 이동한다. 지리산 달궁계곡 마한 왕의 달궁 터와 장수군 천천면 남양리 지배자 무덤에 잠든 사람들이 그 주인공이다. 초기철기시대부터 후백제까지 천년 동안 철산개발로 전북 동부를 고대문화의 용광로로 만들었다. 전북 동부에 기반은 둔 마한세력이 가야문화를 받아들여 가야 소국으로까지 발전했다. 봉화왕국 전북가야가 문헌 속 기문가야와 반파가야로 비정됐는데, 매번 두 나라는 한 묶음으로 등장한다. 기문가야가 동북아를 아우르는 최고급 위세품을 거의 다 모았고, 반파가야 고총에서는 단야구와 말발굽이 나와 당시 철산개발을 유물로 실증해 주었다. 기원전 1500년 전 튀르키예 히타이트에서 철기문화가 처음으로 시작됐다. 히타이트에서 전북 동부까지 이어진 철기문화의 전파 경로가 전북의 아이언 로드이다. 전북 철기문화를 다룬 문헌이나 이야기가 거의 없어서 고고학자들이 고단한 발품을 팔아야 했다. 이제 막 전북 동부 제철유적의 역사성을 검증하기 위한 발굴조사도 시작됐다. 인류의 역사 발전에 공헌도가 가장 큰 것이 철이다. 전북 동부는 엄밀히 표현하면 철이다. 전북에서 꽃피운 마한의 요람도 익산 백제도 전북가야 봉화도 통일신라 남원경도 후백제 전주 천도도 전북 동부 제철유적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전북 철기문화의 탁월성을 홍보할 전북철박물관의 건립과 아이언 로드 복원도 모색됐으면 한다. /곽장근 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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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10 18:16

파리, 서울, 순천, 전주 시장의 비전

시장은 도시의 운명을 좌우한다. 좋은 시장을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장이 어떤 비전을 갖고 무슨 일을 꾀하는지 늘 지켜봐야 한다. 그것이 도시의 진짜 주인 시민의 책무다. 파리, 서울, 순천, 전주, 네 도시 시장이 최근 벌이고 있는 일들을 통해 이들의 비전을 읽어보자. 안 이달고 파리시장은 2014년에 처음 당선되어 6년 임기를 마친 뒤 2020년 재선에 성공했는데, 재선 당시 내걸었던 공약들이 가히 혁명적이다. 파리12구 베르시-샤랑통 지역 초고층 6개동 건설계획 백지화 및 파리 제3의 도시숲 조성, 파리시 전역 주행속도 30킬로미터 제한, 시내 노상주차장 4분의 3을 없애고 보도, 자전거도로, 녹지로 전환 등 상상을 초월한다. 지하철이 지나가는 도로 지상부에 자전거도로를 조성하는 ‘벨로폴리탄’ 사업비는 3천4백억원인데 이 돈으로 지하철은 2킬로미터, 트램은 7킬로미터를 건설할 수 있지만 자전거도로는 170킬로미터를 만들 수 있다. 대중교통의 주역이 지하철과 트램에서 자전거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간이 필요하면 새로 짓는 대신 공공건물을 야간과 주말에 개방해 쓰게 한다. 서민주택 공급 방식도 획기적이다. 코로나로 운영이 어려워진 에어비앤비 3만호를 매입해 공공임대로 전환하고, 빈 건물들을 주택으로 리모델링해서 사회주택 비율을 25%까지 올릴 계획이다. 샹젤리제 거리의 차도를 대폭 줄이는 ‘샹젤리제 정원화’까지 야심찬 혁신을 이어가는 안 이달고 시장의 비전은 무엇일까? 기후위기 시대에 맞게 사람을 위한 개발보다 ‘생태’를 중시하고, 약자들과 ‘연대’하며, 도시와 사람의 ‘건강’을 최우선에 두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세운상가 일대를 보면 피눈물이 난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비전은 무엇일까? 역사도시 서울의 변하지 않는 모습에 참을 수 없다면 그의 비전은 서울의 옛 모습을 다 지우고 새롭게 바꾸는 것일 게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닮은 새빛둥둥섬, ‘런던아이’를 닮은 서울링, 함부르크 ‘하펜시티’를 닮은 여의도 수변개발 등 다른 도시 모방은 계속될 것이고 서울의 정체성은 훼손될 것이다.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개막되었다. 2006년 선거에서 당선된 노관규 시장은 순천의 비전을 ‘정원’의 도시, ‘생태수도’로 설정한 뒤 2013년 첫 번째 국제정원박람회를 성공시켰고 2년 뒤 순천만은 우리나라 제1호 ‘국가정원’이 되었다. 자연이 남겨준 순천만 습지를 도시경쟁력의 원천으로 인식하고 자연과의 공생을 도시발전 전략으로 삼아 시민과 함께 생태수도 순천의 정체성을 지키고 키워온 쾌거를 이번 박람회가 잘 보여줄 것이다. 우범기 전주시장의 비전도 궁금하다. 올해 초 오목대 주변 향토수종 40여 그루 벌목 소식에 놀랐는데, 최근 야구장이 철거되고 전주천과 삼천의 나무 1200 그루가 잘렸다는 기막힌 소식을 접하며 생각해보니 그의 비전은 ‘오직 개발’인 것 같다. 큰일이다. 전주는 그런 도시가 아니다. 역사, 문화예술, 인문의 도시이고 슬로시티 아닌가. 사람들이 전주에 오고 전주를 사랑하는 이유가 개발 때문일까? 이름처럼 하늘의 섭리를 따라 뚜벅뚜벅 나아가는 순천이 부럽다. ‘온전한 도시’라는 최고의 이름을 가진 전주가 지금 매우 위태롭다. 나무 다음에 또 무엇이 잘려나갈까. 도시는 시장 맘대로 주물러도 되는 떡이 아니다. 망가진 도시는 고치기 힘들다. 막아야 한다. 주인들이.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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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03 15:25

우리의 미래, ‘생존 최우선’의 신인류

현생 인류의 윤택한 삶은 과거 고통에서 이어진 부조리한 현실 극복 의지, 개선 노력의 결과이다. 힘든 노동을 대체하기 위한 지능, 굶주림에서 벗어나려는 처절한 의지, 인간됨의 잣대에 맞지 않는 야만과 폭력으로부터의 저항까지. 결국 인류는 ‘우리 삶은 (과거보다, 지금보다) 더 나아야 한다’의 집단 의지로 지금에 와 있는 것이다. 진보와 발전에 대한 믿음, 편하고자 하는 순수 욕망이 지금의 인류를, 문명을 만들었다. ‘더 나은 삶’이 희망이고 인간의 존재 이유(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이 분야의 대표 국가이자 증명 사례다.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쟁에서 가장 빠르고 드라마틱하게 ‘눈부신 발전’에 도달한 국가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와 비슷한 국가에 비해 ‘새로 태어나는 사람’은 가장 적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가장 많다. 대한민국은 전 인류에게 ‘눈부신 발전’에만 몰두하면, ‘행복’이라는 가치가 사라지고, 결국 인구 소멸로 멸종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사례이기도 한 것이다. 과학기술과 문명이 진보를 가져온다는 믿음으로 달려온 인류는 21세기의 시작부터 바이러스 펜데믹과 전쟁, 기후위기, 극도의 빈부격차로 신음하고 있다. 성장을 위해 인류가 잔인하게 파헤쳤던 지구는 인간에게 더는 내주지 않고 인간이라는 종을 멸종시켜버리겠다고 맘먹은 듯하다. 과학기술이 이 문제 역시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해서, 인공지능에게 물어보았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인류의 미래는 매우 다양한 시나리오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인류는 기후 변화, 인구 증가, 자원 고갈,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갈등 등의 다양한 문제를...(중략)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만, 기술의 발전과 혁신, 지속가능한 발전, 국제적인 협력과 평화 등을......” 영화 <그녀(2013)>와 <칠드런 오브 맨(2006)>은 인류의 미래를 동전의 양면처럼 비춰준다. 전자는 기계와의 사랑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매력 없는지를, 그럼에도 우리 미래는 꽤 괜찮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후자는 멸망이 예정된-바이러스로 인해 더 이상 새로운 인류가 태어나지 않는 디스토피아를 다룬다. 소수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통제 권력과 저항 세력 사이에서 기적처럼 태어난 최후의 인류를 보호하려는 아찔한 줄타기가 이어진다. 영화는 자연스레 각자도생에 빠진 젊은 세대와 창피한 줄도 모르고 부의 축적만이 유일 목표인 기득권이 투쟁하는 대한민국의 미래와 겹쳐지고, 영화 <다음 소희(2022)> 속 현실로 연결된다. 기득권은 젊은 세대들을 상대로 온갖 사기를 치면서, 노력과 성실의 가치를 모른다며 무기력과 좌절감의 가스등 켜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생명을 빼앗는다. 전주에 사는, 계약직 콜 센터 수습직 고등학생 소희와 그 다음 차례가 될 또 다른 소희의 죽음은 이래서야 다가올 인류 미래 따위는 좋을 리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발전이나 진보’가 아닌 ‘생존 최우선’의 인류가 반격을 시작한다. 먹고, 자고, 입는 모든 생산과 소비 영역에서 잉여와 착취를 통한 이윤창출이나 가성비 우선이 아니라 지구에게 온전한 방식이 무엇인지를 먼저 따지는 인류. 자본과 시장을 믿은 결과가 인류 전체 재산의 절반 이상이 1%의 소수 개인의 몫이 된 상황에 저항하는 인류. 기득권의 탐욕과 권력욕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인류. 인류 역사의 진보와 발전에 따른 부작용을 몸소 감내해야 하기에, 그래서 모든 것을 새롭게 시도해야만 하는 인류. 진보보다 생존이 우선인 인류. 바로 이들이 우리의 미래이자 현재다. /박형웅 전주대 실감미디어혁신공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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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27 17:30

“50+ 나도 PD다”

대학졸업 후 일 년여 남짓 서울 생활 접고 전주에 정착한 지 35년, 털끝만큼도 서울 생활 동경하지 않고 지방의 풍요로움을 만끽하며 성실한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한다. 두 어번 직업이 바뀌기는 하였으나, 내 고장에 대한 애정은 변함없으며 이곳의 땅과 물과 바람을 사랑한다. 내가 하는 일의 시작은 지역이며 지향점 역시 지역의 이웃과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것이기에 나의 관심은 온통 지역으로 천착된다. 지역방송의 라디오 PD로서 이왕이면 좋은 말, 좋은 생각을 더하고 실천을 독려하고 있다. 분별하지 않고 시비를 가리지 않아서 또한 내 적성에 맞는 것 같다.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사유와 성찰을 돕는 일도 중요하다. 올해 1월 2일부터 전북원음방송 로컬프로그램 <행복한 응접실 김사은입니다> 제작 진행을 맡아 새롭게 기획한 코너 중 '50+ 나도 피디다'라는 방송은 전주시 평생학습관에서 실시하는 '50+ 어른학교' 프로그램가운데 시민라디오 교육 수료생이 만드는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이다. 시민들의 참여를 위해 원음방송의 문을 열었다. 매주 화요일 전주평생학습관의 라디오 커뮤니티 1기 2기 회원들이 다양한 지역 소식을 가지고 찾아온다. '행복한 응접실 김사은입니다' 생방송과 함께 유튜브로도 제공된다. 나는 PD로서 구성 제작 진행의 과정에 되도록 관여하지 않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담아드리고자 한다. 인터뷰 녹음 과정이나 편집이 다소 서툴기는 하더라도 이 역시 진정성에 무게를 두고 숨소리까지도 귀 기울였다. 전주시평생학습관 낭독프로그램을 통해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CD를 제작하여 전달한 사연을 시작으로 설 명절을 앞두고 환경미화원의 노고와 애환을 담은 ‘엄동설한 달빛아래 선 거리의 천사’, 생활지원사, 작은 도서관 등 알찬 소식이 쏟아졌다.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상식 현장 취재도 다녀와서 수상소감도 생생하게 전했다. 노송동 얼굴 없는 천사 편을 방송할 때는 ‘다소 진부한 소재가 되지 않을까?’라는 나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새롭고 감동적인 내용이 펼쳐졌다. 동장님 인터뷰에는 (라디오임에도) 뭉클함이 전해졌다. 인근 주민들의 자긍심은 매우 높은 편인데 특히 세탁소 주민은 “천사의 마을에 살고 있으니 나도 좋은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깨끗한 돈이 들어올 때마다 이웃 돕기에 쓰려고 따로 모은다.”라고 말해 큰 감동을 주었다. 아, 이렇게 착하고 순한 이웃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지난 14일 방송에서는 새 학기를 시작하는 자녀를 둔 다문화 가정에 대한 내용이 전파를 탔다. 마냥 신나기만 할 것 같은 신학기, 말도 설고 문화도 어색한 다문화 가정 특히 어머니의 애환이 새롭게 다가왔다. 특히 외국인과의 재혼가정이 늘어남에 따라 중도에 입국한 아이들은 적응하기가 더욱 쉽지 않은데, 이 부분에서 다문화가족 지원센터 방문팀의 역할이 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표면적인 사회문제를 심층적이고 다각도로 접근하고 풀이하는 능력은 커뮤니티 회원 개개인이 갖고 있는 사회적 역할에서 기인한다. 현장요원, 자원봉사 등 다양한 형태로 각자가 처한 사회적 현상을 인식하고 이를 방송으로 담아내고 있기에 어떤 점에서는 더욱 깊이가 있다고 본다. 순수하고 진정성이 있다. 따뜻하고 정겹다. '50+ 나도 피디다' 어떤 내용이 전개될지, PD인 나도 궁금해진다. /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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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20 18:49

후백제 국제외교와 초기청자

중국 청자의 본향이 오월이다. 우리나라 역대 왕조 중 오월과 가장 돈독한 국제외교를 펼친 나라가 후백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청자 연구에서 후백제는 거의 초대를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문헌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요사이 전북에서 검증된 고고학 자료로 초기청자를 논의하는 과정에 후백제가 가끔 거론된다. 흔히 푸른 빛깔의 자기를 청자라고 한다. 청자는 인간이 만든 가짜 옥으로도 비유된다. 청자의 푸른색은 태토 속 3.4% 내외의 산화철이 굽는 과정에 환원된 것이다. 중국식 벽돌가마에서 구운 월요 청자는 대부분 황갈색을 띤다. 절강성 북쪽 소흥, 여요 일원에 밀집 분포된 월요는 당나라 때 월주요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 우리나라 청자의 제작 기술도 그 출발지가 오월 월주요였다. 한나라 때 처음 시작해 당나라, 오월을 거쳐 북송시대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청자를 생산했던 곳이다. 당나라 절도사 전류가 세운 오월은 월주요를 지배했던 나라로 항주에 도읍을 두었다. 978년 송나라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월주요의 후원으로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다. 2012년 필자는 중국 절강성 일대로 청자 국외답사를 다녀왔다. 처음 찾은 상림호 월주요 벽돌가마는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각 속에 가마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벽돌가마는 장방형 벽돌로 대부분 가로 쌓기 방식을 적용하여 아주 정교하게 만들었다. 벽체는 3~5단 높이로 남아있었고, 가마는 길이 40m 이상 이었다. 절강성 청자 답사는 후백제와 오월을 재회시킨 브릿지였다. 항주만 입구 영파는 해상 실크로드 출발지로 본래 이름은 명주였다. 명주와 전주를 이어주던 바닷길로 40여 년 동안 국제외교를 펼친 나라가 후백제이다. 필자는 영파박물관 주관 ‘천봉취색(千峰翠色)’ 월요 청자 특별전에서 청자를 본 순간 진안 도통리를 떠올렸다. 2014년 진안 도통리 청자 요지 첫 발굴조사가 시작됐다. 다행히 문화재청과 전라북도, 진안군 발굴비 지원으로 큰 성과를 거두어 진안군 최초로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다.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 중평마을 모정 아래에서 그 존재를 드러낸 중국식 벽돌가마는 상림호 월주요에서 본 벽돌가마를 그대로 옮겨온 것처럼 쏙 빼닮았다. 안타깝게 진안 도통리 벽돌가마는 끔찍한 모습이었다. 무슨 이유로 최첨단 국가산업단지가 참혹하게 파괴됐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후백제 멸망을 암시하는 변고(變故)가 아닌가 싶다. 만약 고려가 만들고 다시 부쉈다면 그것은 난센스(nonsense)이다. 후백제 멸망으로 벽돌가마를 운영하던 국보급 도공들은 전쟁 포로가 되어 진안 도통리를 떠났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황갈색을 띠는 가장 이른 시기의 청자를 초기청자라고 부른다. 천하제일의 상감청자로 유명한 부안청자보다 200여 년이 앞선다. 진안 도통리 벽돌가마에서 구운 초기청자는 최상급으로 진안청자라고 새 이름도 지었다. 고창 반암리에서도 중국식 벽돌가마에서 초기청자가 쏟아져 후백제와 초기청자의 연관성을 더더욱 높였다. 중국 월주요 청자 제작 기술은 반도체를 능가하는 최첨단 과학의 집약체이다. 고려는 오월과 국제외교가 거의 확인되지 않지만, 후백제는 40년 이상 오월과 혈맹적 국제외교를 펼쳤다. 진안 도통리 벽돌가마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도 잇따라 후백제를 가리켰다. 그렇다면 후백제와 오월 국제외교의 결실로 청자문화가 곧장 후백제로 전래된 것이 아닌가 싶다. /곽장근 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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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13 18:18

'전북특별자치도’, 대중교통 혁신부터!

‘전라북도’는 이제 곧 ‘전북특별자치도’로 이름이 바뀐다. 이미 과반인구를 앗아가고도 계속 몸집을 키우는 공룡 수도권에 대항하려면 비수도권 지역도 덩치를 키워야 한다는 논리로 ‘대구경북’, ‘광주전남’, ‘충청’이 ‘메가시티 전략’을 전개하고 있고, 제주 강원 전북은 자치권을 강화한 정부 직속 ‘특별자치도’로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덩치를 키우는 ‘메가시티 전략’은 비수도권에 또 다른 공룡을 만들 수 있어서 걱정스럽다. 그보다는 작은 지역들의 연결을 강화해 하나의 생활권을 이루고 함께 상생하는 ‘소도시연합’이 더 좋은 전략이다. ‘전북특별자치도’가 소도시연합의 희망을 보여주는 첫 사례가 되길 바란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대중교통 혁신'이다. 오고 가기 편한 전북을 만들자. 자가용이 없는 청년들도, 운전이 힘든 어르신들도 대중교통으로 어디든 편히 오갈 수 있게 하자. 관광도 생활도 대중교통으로 너끈히 가능한 전북을 만들자. 대중교통이 자가용보다 더 빠르고 더 유리해진다면 전북은 아주 ‘특별’한 곳이 될 것이다. 기대지 않고 스스로 우뚝 서는 ‘자치’의 성지가 될 것이다. 누구나 와서 살고 싶은 희망의 땅이 될 것이다. 사람도 도시도 생명력의 핵심은 원활한 흐름에 있다. 몸 구석구석 막힘없이 피가 흐르듯 이동이 편해야 지역도 살아난다. 문제는 이동수단이다. 기껏 한두 사람 태우면서 도로와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탄소를 내뿜는 자가용은 이를테면 ‘탁한 피’에 비유할 수 있다. 반면에 도시공간을 적게 점유하면서 많은 사람을 실어 나르는 철도, 버스, 트램, BRT 같은 대중교통은 ‘맑은 피’와 같다. 기후위기와 탄소제로를 생각해도 대중교통이 답이다. 시민 대다수가 자가용 전기차를 타는 도시와 친환경 대중교통을 애용하는 도시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환경친화적일까? 제안한다. 전북도청과 14개 시∙군 대중교통 담당자들이 함께 팀을 이뤄 전북의 대중교통 현황을 진단하고 혁신방안을 찾길 바란다. 외부 전문가에게 맡기지 말고 전북을 가장 잘 아는 공무원들이 주체가 되어 답을 구해보자. 전북에 사는 도민들, 전북을 자주 오가는 교류인구, 전북에 체류 중인 생활인구, 전북을 애틋하게 가슴에 담고 사는 관계인구 모두에게 귀를 열고 의견을 구한다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좋은 사례들도 많다. 전국 최초로 완전 공영제를 실현한 신안군 공영버스를 타고 섬 여행도 해보고, 서울과 경기 등 준공영제 개혁 사례들도 열공하자. 건설비가 많이 드는 지하철이나 노면 트램보다 가성비가 훨씬 좋은 ‘BRT’와 수요응답형 대중교통 ‘DRT(Demand Responsive Transit)’도 이미 국내 여러 도시에서 운영 중이다. 지난해 출간된 책 <앙제에서 중소도시의 미래를 보다> 저자들은 자꾸만 활력을 잃어가는 일본 지방 도시들과 달리 여전히 생기 넘치는 프랑스 앙제를 비롯한 작은 도시들의 차이점을 낱낱이 찾아내고, 핵심 원인으로 ‘대중교통’을 꼽았다. 대중교통이 살아야 지역이 산다. ‘대중교통’에 ‘자전거’와 ‘보행’까지 더해 ‘대자보’ 녹색교통 3총사가 편안한 이동을 보장하는 ‘대자보 전북’을 만들자. 한 가지 더 제안한다. 도지사를 비롯한 시장, 군수들부터 대자보 출퇴근을 생활화하자. 자가용만 타면 대중교통의 불편을 모른다. 문제를 몸으로 겪고 알아야 고칠 수 있다. 특별한 자치도 전북, 대중교통 혁신에서 시작하자.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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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06 15:12

인공지능 ‘챗GPT’와의 진솔한 대화

이런 상대가 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도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딱 좋아할 만한 소재로 매끄럽게 대화를 이끌어간다. 내가 그만두기 전까지 이 흥미로운 대화 상대는 결코 지칠 줄 모른다. 내 취향에 맞춰 이야기를 끌어가면서도, 본인만의 개성을 확실히 드러낼 줄 안다.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대화 형 인공지능 서비스 ‘챗GPT’(ChatGPT; 사전 학습된 자연어 대화 생성 모델) 이야기다. 이 소프트웨어는 마치 인간처럼, 혹은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능숙하고 성숙한 대화를 ‘생성’할 줄 아는 인공지능이다. 출시된 지 불과 1년 만에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곧’ 가져오게 될지를 생각하게 했다. 컴퓨터가 체스나 바둑으로 인간을 이겼을 때보다도 더 극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대화’에 특화된 기계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있어 대화는 참으로 중요하다.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지적 수준을 알게 되고 사회성과 태도, 세상에 대한 가치 판단 요소 등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대화’는 인간성과 지성의 상징이다. 대화는 이야기이고, 좋은 이야기는 정보와 지식이 논리적으로 구조화되어 있으면서도 세밀한 감정 표현이 담겨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말을 지나치게(?) 잘 하는 사람을 경계하기도 한다. 보이스피싱이 바로 창의적이면서도 논리적인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사람들을 속이는 범죄이다. 챗GPT 역시 인터넷을 통해 인간을 학습했고, 학습한 능력을 대화로 풀어낸다. 과학자들은 여기에 숟가락 한 스푼 정도의 ‘예절-인간이 불편하게 생각할 만한 것들을 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추가했다. 그 결과 꽤 그럴싸한 대화가 가능해졌다. 더 나아가 논리력을 발휘해 논문을 쓰고, 창의력을 동원해 시와 소설을 쓰고, 영상 대본을 작성하고, 블로그 글을 쓰고, 피싱 사이트를 뚝딱 만들어 사기를 치고, 주식 투자 가이드를 하는 일까지 담당하고 있다. 검색어에 대응하여 같은 답에 서로 다른 느낌만 주는 미러 사이트를 몇 백 개씩 만들어내서 인터넷 검색 결과를 오염시키기도 한다. 이쯤 되니, 전문가들은 이 인공지능 모델을 약장수, 사기꾼, 허언증 환자, 표절머신 등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만약 누군가가 어떤 책의 목차와 요약본을 보고, 인터넷에서 수많은 리뷰와 독후감, 평론을 읽은 후에 마치 책을 다 읽은 것처럼 자랑하고 다닌다고 해보자. 이 사람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면 과연 대화는 어떻게 흘러갈까? 챗GPT는 마치 우리 주변에서 보지도 않은 책을, 영화를, 드라마를, 듣지도 않은 음악을, 하지도 않은 스포츠를, 사지도 않은 물건을 샀다고, 했다고 하는 사람처럼 누군가의 경험과 지식을 긁어모아서 잘 조합한 결과만을 제공한다. 정교한 알고리즘이 진솔한 대화에 담겨야 하는 숙고와 가치판단, 진실성, 새로운 가능성의 자리를 대체한다. 냉정해지자. 인공지능은 가짜 뉴스가 진실을 호도하는 이 세상에서 팩트 체크가 가능한 수준이 될 때야 비로소 우리가 믿을 만한 물건이 될 것이다. 그러니 아직은 큰 걱정이나 기대를 갖지 말고 한번 경험해보자. 놀랍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바보 같고, 능력 있지만 쉬운 걸 제대로 못하는 최신의 비싼 기계. 덕분에 우리 현실은 가짜, 표절, 기계 창작물 등으로 한바탕 혼란스러울 듯하다. 만만치 않은 상대니 다들 정신 바짝 차리자. 여기에 더해 다음 데뷔 순서를 기다리는 인공지능들이 오디션을 막 마치고 긴 줄을 서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박형웅 전주대 실감미디어혁신공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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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27 16:27

“비행기 타고 가요”

모스크바 1세종학당은 러시아에 한국문화를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특히 원불교 모스크바 교당 부설 원광교육센터가 주최하는 「한러친선 문화 큰 잔치」는 30여 년의 역사를 통해 매년 8천여 명이 다녀가는 러시아의 주요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양질의 한국어 교육은 물론, 사물놀이, 탈춤, 한국무용, 태권도 등 한국의 전통문화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모스크바 교당 권은경 교무님이 한국에 다니러 오셨다기에 원음방송 로컬 프로그램 「행복한 응접실 김사은입니다」 인터뷰 요청을 했다. 원광교육센터에서 펴낸 한글 듣기 교재 발간을 위해 몇 년 전 합력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특히 모스크바 1세종학당의 일은 남일 같지가 않았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흔쾌히 방송에 참여한 권은경 교무님은 전쟁의 여파로 비행시간만 20여 시간 넘게 걸려 한국에 왔다고 소식을 전했다. 코로나 19로 세종학당의 활동이 위축되지는 않았는지 매우 궁금했다. 바이러스 때문에 다소 제약이 있기는 했으나 그 가운데도 랜선 한국어교육과 연주 등 꾸준히 활동을 해왔다는 말과 함께 현지의 뜨거운 열정을 소개했다. 가장 인기 있는 팀은 역시 사물놀이라고 한다. 사물놀이에 매료된 러시아 청년 스베타씨는 홀로 한국을 찾아 농악의 메카인 진도에서 공부를 하고 모스크바에 돌아가서 지도를 하고 있다고. 최근 결성된 탈춤반도 관심이 많다고 하니 한국 전통문화 전반에 큰 관심이 있는 듯하다. 최근에는 가야금 병창 반을 만들려고 하는데, 현지에 있는 가야금이 두 대뿐이어서 가야금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행복한 응접실 김사은입니다」 러시아 세종학당 인터뷰는 온-에어뿐 아니라 유튜브로 제작되어 소구 되고 있다. 이 소식을 접한 전통문화마을 김진형 이사장님은 주변에서 가야금을 수배하다가 남원에서 활동 중인 전북무형문화재 김죽파류 가야금산조 보유자 송화자 명인에게까지 연락을 취한 모양이다. 송화자 명인과 남원교당 박지상 교무님의 지원으로 모스크바에 가야금 두 대를 보내기로 일사천리 진행되었다. 남원교당 역시 ‘남원춘향도령 원화어린이예술단’을 운영하며 러시아 모스크바, 독일 레겐스부르크 등 해외 공연을 다녀온 저력을 과시한 바 있다. 가야금은 확보되었으나 이번에는 수송이 문제다. 사려 깊은 송화자 명인이 담양 범음국악사 대표인 허무 명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허무 명인이 남원으로 와서 모스크바까지 안전하게 운송할 수 있도록 손수 포장해주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눈물이 났다. 꽃 한송이 피우는데도 우주의 기운이 함께 한다고 하는데, 가야금 두 대를 모스크바에 보내는 일에 이렇게 많은 분들의 정성과 공덕이 있었던 것이다. 튼튼하게 포장된 남원의 가야금이 비행기 타고 모스크바로 날아갔다. 송화자명인은 “우리나라 가야금 소리가 세계 속에 울려 퍼지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나는 더 나아가 우리나라 가야금 소리가 전쟁을 멈추고 인류의 화합을 촉진하는 평화의 소리로 울려 퍼지기를 염원한다. 세종학당으로 간 가야금 두 대의 공덕이 모스크바로부터 어떤 기적을 불러일으킬지, 누가 알겠는가. 문화는 살아있는 것이니까. /김사은 전북원음방송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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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20 15:28

새만금과 세계 잼버리 대회

올해 8월 1일부터 12일까지 세계 스카우드 잼버리 대회가 새만금에서 열린다. 전 세계에서 참가할 5만여 명의 청소년들이 펼치는 젊음의 향연이다. 과연 새만금은 세계 대회를 치를 만한 곳인가? 한마디로 잘 준비된 곳이다. 우리 조상들은 새만금의 흥망성쇠를 유적과 유물에 수놓았다. 이제껏 고고학자가 발품을 팔아 둘러 본 새만금은 글로벌 인문학의 보물창고이다. 선사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새만금의 해양교류사는 차고 넘친다. 새만금은 해양문화의 용광로를 방불케 할 정도로 국내외를 통틀어 압권이다. 조선시대 다소 지치고 벅찼는지 바다를 지키는 수군기지와 유배지로 그 역할이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인문학이 거의 초대를 받지 못하고 대부분 국책사업 소식으로만 새만금이 회자되어 안타깝다. 흔히 고고학에서는 강과 바다를 옛날 고속도로라고 부른다. 금강과 만경강, 동진강 물줄기가 군산도에서 한 몸을 이룬다. 새만금이 해양문물교류의 관문으로 융성하는데 결정적인 밑거름이 됐다. 신석기시대 전국의 빗살무늬토기를 거의 다 모아 명품 백화점을 만들었다. 그 잠재력이 어디서 나왔는지 꼭 풀어야 할 새만금의 미스터리이다. 새만금은 또한 패총의 왕국이다. 한반도에서 학계에 보고된 600여 개소의 패총 중 200여 개소가 새만금 일원에 모여 있다. 세계적으로 패총의 밀집도가 월등히 높은 곳이다. 고고학자들이 패총을 찾아 세상에 알렸지만 한 개소의 패총도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너무 아쉽다. 솔직히 패총은 새만금의 역사책이자 타임캡슐이다. 마한의 핵심세력은 해양세력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말무덤이 가장 많은 곳이 새만금 일원이다. 말무덤은 마한의 왕무덤을 의미한다. 새만금을 무대로 해양세력이 번창했음을 수많은 말무덤들이 반증한다. 고창 봉덕리, 군산 미룡동 등 마한의 지배자 무덤에서 동북아를 아우르는 최상급 위세품이 쏟아져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마한이 구축해 놓은 해양 네트워크로 백제와 후백제는 해양왕국으로 더욱 번성했다. 백제가 공주, 부여에 도읍을 둔 200여 년 동안 새만금은 해양문물교류의 관문이었다. 후백제는 군산도를 통과하는 사단항로로 중국 청자의 본향 오월과 국제외교를 당당히 펼쳤다. 이 무렵 군산도가 대규모 항만시설을 갖춘 국제항구로 개발됐을 개연성이 높다. 고려는 군산도를 국제외교의 큰 무대로 삼았다. 1123년 송나라 황제 휘종이 고려에 국신사를 파견하자, 고려는 군산도 군산정에서 김부식 주관으로 국가차원의 영접행사를 열었다. 새만금 최대의 국제행사였다. 군산도에 숭산행궁과 숭산별묘를 두어 제2의 개경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여기서 숭산은 개경의 진산 송악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옛 지도와 문헌에는 군산도에 왕릉이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군산대학교 고고학팀이 왕릉을 찾았지만 한 차례의 발굴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군산도 왕릉은 숭산행궁, 군산정과 함께 새만금 해양문화유산의 백미이다. 부안 계화도, 군산 방축도 등 10여 개소의 봉수가 집중 배치되어 새만금은 내내 전략상 요충지를 이루었다. 새만금은 해양문화유산의 메카였다. 중국에서 전래된 철기문화와 도자문화가 새만금을 경유하던 바닷길로 전북에 곧장 전래되어 전북에서 화려하게 꽃피웠다. 해양왕국 백제와 후백제, 고려도 새만금을 무대로 국제외교를 왕성하게 펼쳤다. 새만금 해양문화유산의 국제성과 역동성을 잘 살려 세계 잼버리 대회가 성대하게 개최되길 염원한다. /곽장근 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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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13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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