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봉의 妖精" 국제대회서 金 선사…86년 아시안게임서 부상 투혼…
1986년 10월 열린 제10회 서울아시아경기대회는 한국 체조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천금같은 대회이다.
세계 정상급 기량을 갖춘 내로라하는 일본과 중국 선수들을 모두 제치고 한국 체조가 무려 금메달 3개를 한꺼번에 거머쥐었다. 특히 여자 체조의 경우 국제대회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금메달을 차지한 사례는 이 때가 처음이다.
가장 먼저 금메달을 국민에게 선사한 선수는 전북 출신 서연희(당시 전북체고 1학년). 서 선수는 대회 한달전 오른쪽 다리에 깁스 치료를 받는 부상을 딛고 2단평행봉에서 고난도 기술로 짜여진 연기를 흠잡을 데 없이 소화해 내는 투혼을 발휘했다.
이어 서선앵이 평균대에서, 권순성이 평행봉에서 금메달을 따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민 모두가 아시안게임 속으로 흠뻑 빠져들며 환호했다.
당시 서 선수가 구사한 동작은 드가체프와 사카데잼보. 드가체프는 1977년 소피아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구소련 드가체프 선수가 처음으로 시도한 동작으로 뒤휘돌기에서 신체가 봉 위에 도달할 때 신체를 반대로 젖히면서 손을 놓고 다리 벌려 봉을 넘어 상체를 앞으로 숙여 다시 봉을 잡는 기술. 서 선수는 여기에 리버스 그립으로 시작하는 사카데잼보란 기술을 섞어 당시로선 최첨단 연기를 마무리했다.
서 선수가 체조에 첫 입문한 때는 익산초등학교 4학년 시절. 하지만 부모 반대로 8개월만에 운동을 그만두었다.
서 선수의 천부적인 재능을 눈여겨 지켜본 당시 체조감독과 교장은 부모를 찾아 설득했고, 이듬해 곧 바로 준국가대표인 상비군을 거쳐 이리여중1학년에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최정상급 반열에 오른 서 선수에게 가장 큰 시련은 88서울올림픽. 서 선수는 대회를 앞두고 무릎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입고, 세계를 무대로 기량을 선보일 기회를 포기해야 했다.
전북대 사범대 체육학과를 마친 서 선수는 졸업과 함께 선수생활을 정리하고 은퇴했다.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은퇴를 권유했어요. 아버지는 처음부터 제가 공부를 하길 원했거든요."
지도자의 길에 들어선 서 선수는 서울 수유여중과 유현초 코치, 대한체조협회 여자체조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1995년 국가대표 체조선수 출신인 안봉민씨와 결혼한 서 선수는 1997년 경희대 석사과정(스포츠 심리학 전공)에 입학하며 미뤘던 학업의 길에 들어섰다. "어릴 적부터 꿈이 교직이었어요. 그래서 다른 대학 모두 마다하고 사범대학에 입학했어요."
내친 김에 2007년 전주대 박사과정까지 수료한 서 선수는 대학 강의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현재 출강하는 대학은 전북대, 원광대, 군산대, 전주대, 전주비전대.
강의 과목도 다양하다. 석사와 박사과정에서 전공한 스포츠심리학을 비롯 체조, 맨손체조, 댄스스포츠, 스포츠에어로빅 등 다양하다. "제가 욕심이 좀 많거든요. 체조를 하다 보니 인근 분야에도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자기 관리는 생활 속에서 실천한다. "실기 강의를 통해 학생들과 에어로빅, 체조를 하다보면 운동량은 충분해요." 서 선수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할 당시 신체 조건은 키 156㎝에 48㎏. 38세인 현재도 161㎝에 50㎏을 유지하고 있다.
장래 희망은 교직. "어릴 때부터 꿈꾸어온 교단에 섰으면 해요. 이를 위해 박사과정 졸업 논문 작성을 서두르고 있어요."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젠 학문을 통해 이루겠다는 당찬 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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