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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체육 비사] ⑥조석인 전 도체육회 사무처장

"북 선수 승리 판정, 빨갱이란 말도 들었죠"…전북 복싱계의 대부

조석인(74) 전 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전북 복싱계의 대부로 일컬어진다.

 

이리체육관을 개관, 무려 50년동안 도장을 운영하면서 신준섭, 송학성, 강월성, 김광선, 유종만, 박덕규 같은 기라성 같은 선수를 지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를 전북 복싱계의 대부라고 하기엔 뭔가 좀 부족해 보인다.

 

도 체육회 사무처장, 대한복싱연맹 전무이사, 국제심판, 대한체육회 이사 14년 재임 등 숱한 이력을 보면 전북은 물론, 전국무대에서 그가 뚜렷한 족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국제심판을 할때 겪었던 일화 하나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뚜렷히 남아있다. <편집자 주>

 

조석인 전 처장은 서울 태릉에서 국가대표 복싱팀 코치와 감독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인생 역정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은 선수나 지도자가 아닌 '심판'으로서 겪게 된다.

 

78년 12월 제8회 방콕아시안게임때의 일화다.

 

국제심판 자격으로 참가한 첫 대회에서 조 전 처장은 운명의 장난처럼 북한 선수와 필리핀 선수의 권투 시합 심판을 맡게 됐다.

 

당시만 해도 워낙 남북간 대결 구도가 심하던 때여서 심판을 꺼렸으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링 주변을 오가는 '보도' 완장을 찬 북한 기자들의 매서운 눈초리가 퍽이나 사납게 느껴졌음은 물론이다.

 

북한 선수인 구형조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의 유명한 선수였고, 필리핀 선수 또한 실력이 뛰어나 관중이 꽉 들어찬 빅 매치였다.

 

3라운드 경기를 지켜본 뒤, 북한 선수가 확실히 앞섰다고 판단한 조 전 처장은 아무런 생각없이 북한 선수의 승리를 판정한 채점표를 넘겼다.

 

팽팽하긴 했으나 분명히 북한 선수가 유리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잠시후 믿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다.

 

당연히 심판 5명의 전원일치라고 여겼던 경기가 전광판을 보니 3대 2로 나왔던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각 심판들의 점수가 공개된 바, 캐스팅 보트를 쥔 조 전 처장의 판정으로 인해 북한 선수가 이길 수 있었던 점이 확인된 것이다.

 

당시만 해도 각종 국제대회에서 남북은 항상 경쟁관계였고, 패배가 확실한 경기는 남북 어느 한쪽에서 아예 경기를 포기해버릴 만큼 라이벌 의식이 강했다.

 

남북 선수단이 경기장 주변에서 만나더라도 상대를 핏발선 눈으로 바라보는 시기였다.

 

한국선수단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림과 함께 한쪽에선 '빨갱이'라는 말이 들리기도 했다.

 

현장에 있던 김성집 선수촌장의 얼굴이 일그러졌음은 물론, 그토록 가깝던 김택수 대한체육회장조차 다음날 김포공항에서 방콕으로 향하면서 "조석인 심판 어딨어, 당장 소환해"라고 했다고 한다.

 

순수한 스포츠 무대에서 심판의 소신에 찬 결정이 정치적 상황에 의해 전혀 의도하지 않은 쪽으로 확대해석된 것이다.

 

방콕 주변에선 중정 직원이 24시간 밀착감시를 했고, 귀국해서도 20일 가까이 집에만 머물며 꼼짝도 못했다고 한다.

 

나중에 들으니 관계자들끼리 회의를 거듭해 "더 이상 문제삼지 말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면서 그는 이후 국제무대에서 훨씬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 부산 아시안게임을 비롯, 국제무대에서 조우할 때마다 북한 체육인들은 조 전 처장을 극진히 예우했다.

 

남한 출신 심판이라면 당연히 북한 선수에게 불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판정하던 시대 상황속에서 공정하게 심판의 양심을 지킨 때문이다.

 

88서울 올림픽때 결승전 심판을 보는 행운이 조 전 처장에게 주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91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 출국 직전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달려가 통곡하며 장례를 치르고 곧바로 러시아로 향한 일화도 있다.

 

아직도 집 주변 도장을 오가며 후배를 지도하는 그는 "평생 체육을 하면서 느낀 것은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점"이라면서 "체육도 전문 분야인 만큼 비전문가들이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는 풍토가 개선돼야만 전북체육이 발전한다"고 충고했다.

 

 

위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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